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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미라"

현장에서 직접 본 한국미라의 모든 것

미라, 어떻게 꺼내나
쇠 끌로 소나무관 천판(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취가 진동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진한 소나무 향만이 물씬 배어 올라왔다.

이곳은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 미라를 관에서 꺼내는 현장이다. 기자는 2010년 5월 새로운 미라가 나올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렵게 발굴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취재를 허락 받았다. 미라가 들어 있는 나무 관은 전날 경기도 오산시의 한 산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발견됐다. 발굴단은 전날 포크레인 등으로 횟가루가 돌처럼 굳어진 틀을 부수고 안에 들어 있던 나무 관을 그대로 들어 구로병원으로 옮겨왔다.

오전 10시. 발굴단은 관 뚜껑을 열고 눈에 보이는 부장품을 하나 둘 씩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 후, 한 아름이 넘는 커다란 천 뭉치를 통째로 부검용 탁자 위로 끌어 올렸다. 시신을 염해 둔 천 덩어리였다. 휴식도 잠시, 발굴단은 미라가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옷을 하나 둘 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작업을 진행한 서경숙 교수는 “우리네 조상들은 예로부터 시신을 관에 넣을 때 먼저 ‘수의’를 지어 입힌 후, 평소 고인이 입던 옷을 여러 겹 다시 입혀 꽁꽁 묶어 둔다”고 설명했다. 주변도 옷가지 등으로 빈틈없이 채운다. 이런 과정을 ‘염 한다’고 부른다. 옷 한 벌 한 벌이 모두 수백 년 전 유산이라 역사학자, 특히 복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옛 무덤이 발견됐다고 하면 크게 기뻐한다.

옷을 한 꺼풀 벗겨 내면 모두 꼬리표를 달아 둔다. 떨어진 것이 있으면 일단 실로 꿰어 연결해 둔다. 이렇게 하면 본격적인 복원 작업 때 짝을 찾기 편하다.

작업이 시작된 시간은 오전 9시. 부장품을 한 겹 씩 벗겨낼 때마다 소나무 향은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사체(死體)에서 배어 올라오는 부패한 단백질 냄새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오전에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 속에서 작업하던 발굴단원들은 오후가 되자 지친 기색이 역력해져갔다. 취재에 열중하던 기자의 손놀림도 점점 느려져갔다. 잠시만 밖으로 나가 차가운 바람을 쐬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하지만 차마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눈앞에선 조선 초기에 사망한 미라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업은 오후 6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식사시간을 빼도 8시간 이상을 미라 옷을 벗기는 데 매달린 셈. 당시 발굴단은 “염해 둔 옷이 많고, 관의 규모가 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한국미라, 왜 안 썩었을까

모습을 드러낸 미라는 살아 있는 듯 했다. 의료진의 허락을 얻어 수술용 장갑을 끼고 미라의 피부를 눌러 봤다. 피부색은 비록 검게 변했지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인 듯 탄력이 느껴졌다. 의료진이 즉석에서 사망원인을 점칠 수 있을 만큼 보관상태가 좋았다. 미라를 살펴보던 김 교수는 안됐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만성질환으로 고생 끝에 죽었을 거라는 것이다. 의료진이 발굴과정에서 육안으로 살펴본 결과 20~30대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한쪽 폐가 비대해진 바싹 마른 체형으로 볼 때 폐병 등 만성질환을 앓 았을 확률이 높았다.

한국미라의 특징은 보관상태가 우수하다는 것이다. 2009년 나주에서 발견돼 화제가 됐던 ‘나주 미라’를 비롯해 출산 중 태아를 뱃속에 품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대전에서 발견돼 현재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 중인 ‘학봉장군 미라’ 등 기자가 취재한 모든 미라는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바짝 마르거나, 아니면 인공으로 방부제 처리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흔히 ‘한국미라는 관 속에서 공기가 차단됐기 때문에 썩지 않고 보존됐을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한다. 이 말은 사실일까.

관 속이 무균상태였다는 증거는 있다. 김한겸 교수팀은 기자가 해포과정에 참여한 미라를 비롯해 오산에서 발견된 두 구의 미라에서 채취한 자료를 이용해 세균을 배양해 봤다. 검사 결과 관 속에서는 6종의 세균이 극미량 발견됐다. 첫 번째 미라는 관 속의 물방울, 대렴(수의의 한 종류) 등에서 총 네 종류의 세균을 발견했다. 두 번째 미라에서는 직장(항문)과 천금위(시신을 마지막으로 덮는 천) 등에서 두 종류의 세균을 발견했다. 여섯 종류의 세균은 모두 흙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잡균으로 병원성 세균은 없었다.

세균 분석을 담당했던 이갑노 고려대 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미라를 발굴하던 중 나무 관이 충격을 받았거나, 해포 과정에서 공기 중에 있던 미생물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전에는 무균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한 명이 미라를 꺼낸 관 속을 면봉으로 닦아 유리병에 넣고 있다. 미라의 보관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미라나관, 부장품에 옷자락이 닿으면서 세균이 묻지 않아야 하므로 짧은 소매 옷을 입고 작업하고 있다.]





MRI· CT도 가능… 보존상태 우수
1년이 지나 다시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았다. 김한겸 교수팀 오산 미라를 꺼내 첨단기기를 동원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알려 왔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망원인을 밝혀보기로 마음먹었다는 뜻. 작업은 일반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밤에 이뤄졌다. 2011년 5월 6일 밤 10시경. 병원을 방문해 1층 영상의학과를 찾아가자 두 구의 미라가 나란히 누워 검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는 밤 10시 30분부터 5일 새벽 2시 30분까지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연구팀은 먼저 64채널 초정밀컴퓨터단층촬영기(MD-CT)를 이용해 미라 전신을 촬영했다. MD-CT 촬영 데이터를 처리하면 내장기관을 포함해 몸 전체를 3차원(3D)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 몸 곳곳을 X선으로 찍어 골격상태도 확인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논의 결과 포기했다. 1년이 지나는 사이 미라에서 수분이 적잖이 빠져나가 영상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국미라는 대부분 MRI 촬영이 가능하다. 한국, 그리고 중국의 몇몇 미라를 빼면 세계에서도 이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은 미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 교수팀은 2009년에도 기자가 취재하는 가운데 ‘나주 미라’를 정밀 검사한 적이 있다. 이 미라는 나주시 문화 류(柳)씨 문중의 선산에서 이장(移葬) 도중에 발견됐다. 가문에서 연구용으로 기증해 약 1년 간 내시경, MD-CT, X선 촬영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후 재매장했다. 하복부에 태반으로 보이는 막이 튀어 나와 있다는 점에서 출산 직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연구팀은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영상의학과, 치과 등 전문 의료진과 함께 분석해 사망 원인 등을 알아낸다. 미라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광호 원장(치과개업의)은 미라의 치아를 살펴보며 “CT영상을 이용해 치아의 마모도를 확인하면 미라의 사망연령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겸 교수는 “한국미라는 보존상태가 극도로 우수해 다양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겸 교수팀이 오산에서 발견된 미라 두 구를 동시에 검사하고 있다. 앞쪽에 있는 미라는 기자가 발굴에 참여했던 오산 6미라, 뒤쪽에 있는 미라가 오산 9미라다.]
 







[미라는 수백,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생활양식과 질병정보를 담은 과학기술 연구의 ‘보고’다. 고려대 연구팀은 국내 최고(最古) 미라로 꼽히는 학봉장군 미라를 연구해 조선 전기에는 애기부들 꽃가루를 각혈 약으로사용했으며, 당시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식생활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미라가 많지 않은 이유
한국엔 이름이 알려진 미라가 몇 개 없다. 김한겸 교수와 신동훈 교수팀이 조사했던 미라의 숫자를 모두 합해도 20여 구 정도. 이 중 언론에 공개된 미라는 10여 구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미라는 많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 하나만 작정하고 조사해도 수많은 미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미라가 발견되어도 연구에 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5월 4일 대전 쓰레기 매립장 조성공사 현장에서 미라 4구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발견됐지만 후손들은 그날 즉시 화장했다. 다만 복식과 부장품만 권영숙 교수팀이 수거해 복원하고 있다. 2003년 충남 태안군에선 300여 년 전 미라가 발견됐다. 피부색까지 보존된 미라였지만 후손들은 바로 화장을 했다. 2006년 전남 장성군에서 발견된 미라도 마찬가지다.

류용환 대전선사박물관 관장은 “매년 수십 차례 이상 미라가 발견되지만 연구용으로 기증되는 경우는 1년에 서너 구가 채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라가 발견되면 연구를 위해 2~3년 정도 잠시 연구기관에 보관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신동훈 교수는 “해마다 명절이면 연구 중인 미라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심심찮게 받을 만큼 국내 후손들은 조상의 육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여기에 나주 미라는 선례를 남겼다. 일정기간 연구용으로 활용한 뒤 후손들에게 돌려주어 재차 화장했다. 가문에서는 조상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고, 과학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 미라에 대한 연구결과를 정리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김한겸 교수는 “2009년 기증돼 MD-CT와 X선으로 조사한 정보를 분석 중”이라며 “1년 이상 연구하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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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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