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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환경과 장묘문화가 만든 시간의 마법

세계는 넓고 미라는 많다


[칠레에서 발견된 소녀 미라. 칠레는 미라의 발상지다. 고대 민족인 친초로인은 다양한 미라를 만들었는데, 온몸을 진흙으로 감싼, 7000년이 넘은 미라도 존재한다. 이 지역 미라 중 어린아이를 박제처럼 만든 미라를 ‘친초로 미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라’라는 단어를 들으면 붕대를 칭칭 동여맨 이집트 미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미라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넓다. 국립국어원은 미라를 ‘썩지 않고 건조되어 원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인간이나 동물의 시체’라고 정의한다.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건조’라는 단어가 걸린다. 한국이나 중국의 몇몇 미라는 피부가 촉촉하게 살아 있다. 얼음 속에 갇힌 채 썩지 않고 남아있는 미라도 마른 시체가 아니다. 학계에서는 미라를 ‘어떤 방식으로든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동물의 (특히 인간의) 시체’라고 생각한다.

자연 상태에서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는 역시 ‘건조한 환경’이 꼽힌다. 둘째는 시체가 차가운 환경에서 얼어붙어 썩지 않은 경우, 셋째는 한국의 미라처럼 공기(산소)가 차단된 환경에서 미라가 만들어지는 경우다. 드물게 진흙이나 물 속에 잠겨 늪지의 화학성분 등의 영향을 받아 썩지 않고 우연히 만들어진 미라도 존재한다. 이밖에 고대 이집트나 현대인이 만든 ‘인공미라’도 있다. 인위적으로 시체를 방부 처리한 것도 미라의 범주에 들어간다.

미라를 찾기 어려운 이유
사람의 시체가 미라가 되는데 필요한 조건은 꼭 한 가지다. ‘썩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조건이 쉽지 않다. 사람을 죽은 그대로 실온에 방치되면 어떻게 될까. 죽은 지 하루 만에 색깔이 변하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2∼3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해 물집이 생기고, 8일이 지나면 구더기가 번데기로 바뀐다. 주변 온도가 20∼30℃로 높은 환경이라면 시신은 12∼18시간 만에 급격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초창기엔 피부가 윤기를 잃고, 녹색 빛이 돌다가 점점 검어지고, 벌레들도 차례로 달려든다. 여름철, 온도와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시체는 2주에서 4주 사이에 완전히 뼈만 남게 된다.

1차 원인은 효소작용이다. 효소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세포 속에서 해로운 균을 죽인다. 하지만 죽고 나면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온 몸의 근육을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지독한 악취가 생기고, 이런 악취는 다시 주변의 벌레들을 불러 모은다. 시신이 썩지 않고 보관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미라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자연환경과 독특한 장묘문화가 겹쳐져 우연히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조 _ 마르면 썩지 않는다
가장 흔한 미라는 역시 ‘건조 미라’다. 혐기성, 호기성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세균은 생명체다. 수분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바짝 마른 시체는 썩기 어렵다.

한국미라 중에서 이렇게 바싹 말라버린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처음에 시신이 미라로 만들어 질 때는 어느 정도 건조과정의 도움을 받았을 걸로 보고 있다. 겨울철 차고 건조한 기후 때문이다. 가까운 중국의 미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국과 장묘 문화가 비슷하다. 목관 속에 시신을 넣고, 그 전에 염을 하는 점도 같다. 하지만 회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밀폐가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다. 습기가 많은 중국 창장(長江) 강 남쪽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미라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중국 후베이성 징저우 박물관에서 만난 등췐 학예사는 “무덤이 발견돼도 관과 옷만 남아있고 시신은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반대로 건조한 창장 강 북쪽, 특히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등에선 미라가 자주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목관에 넣어 시신을 매장하면 땅 속에서 그대로 건조돼 미라가 되는 식이다. 이런 미라를 중국인들은 ‘깐시(말라있는 시체)’라고 부른다.

자연환경 덕분에 건조미라가 많이 만들어지는 지역은 남미 안데스 산맥 서쪽 아타카마 사막이 꼽힌다. ‘삽으로 땅만 파면 미라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 매장된 시신 대부분이 건조한 기후 때문에 미라로 남은 경우다.
 
[페루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 손발이 가죽 끈으로 묶여 있다. 범죄자였을까, 전쟁포로였을까. 아니면 노예였을까.]
 
[중국 후베이성 징저우시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 중이던 여성 미라. 창장 강 이남에선 드물게 발견되는 ‘깐시’다. 보존을 위해 포르말린 용액에 담궈 두었기 때문에 피부는 다시 부드러워 졌지만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허리가 들려 있다.]

[아이스맨 외치는 세계 미라 연구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다. 연구결과 외치는 5300년 전 화살에 맞아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외치가 처음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살인사건이 벌어진 걸로 착각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탈리아 사우스티롤고고학박물관 연구팀은 외치의 골격,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해 살아 생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냉동 _ 가장 완전한 보존
이집트의 파라오 미라를 제외하면 대중과 과학계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미라는 5300년 전 사망했던 ‘아이스맨 외치’일 것이다. 알프스 산맥에서 1991년 발견된 이 미라는 가장 오래된(最古) 미라다. 이렇게 긴 시간 썩지 않고 보관된 이유는 추운 기후 때문에 얼어붙은 시신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몽골 국경지대부터 러시아, 카자흐스탄에 걸쳐 이어진 ‘알타이 산맥’에도 수십 구의 냉동미라가 발견됐다. 이곳에서 발견된 ‘얼음공주 미라’도 사망 후 2000년이 지나도록 피부에 새긴 문신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알타이 고원에 살았던 파지릭 문화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산의 내장을 빼고 약초를 채운 후, 발삼(침엽수 분비물. 송진 등)을 발라 부패를 방지했다. 하지만 알타이 미라가 썩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 차가운 온도 때문이다. 알타이 산은 해발 3000m를 넘고, 고위도 지방이다 보니 일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영구동토’지역도 많다.

한국미라 역시 냉동과정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다. 수백 년 동안 보관된 이유를 냉동에서 찾기는 어렵지만, 처음 미라가 만들어질 때 꼭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겨울에 사망한 사람의 시체가 미라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3개월 장을 지냈기 때문에 여름에 죽은 시신이 온전한 시신 형태로 남기는 어렵다. 겨울에 사망하면 쉽게 시신이 썩지 못했고, 피부가 적당히 얼고, 다시 말라 가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장례를 마친 후 회곽묘에 넣어 매장하면서부터 차츰 미라로 바뀌었다.
 
[세계 고고학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마왕퇴’ 미라(왼쪽). 중국 30대 여성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중국 후난성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공기차단 _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밀봉’이다. 무덤 속에서 공기가 통하지 않아 썩지 않고 그대로 보관된 형태다. 한국의 회곽묘 미라와 중국의 일부 미라가 유일하다. 하지만 밀봉 미라가 만들어지는 조건은 다양하다. 같은 구조의 무덤이라도 어떤 시신은 완전히 썩어 뼈도 남지 않지만 어떤 미라는 냉동미라보다 보관 상태가 좋다. 단순한 밀봉만 해 둔다고 미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하나로 합쳐져야 미라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고, 연구방법도 다르다(2파트 참고). 어떤 학자들은 시체에 있는 지방이 강
염기성 물질과 반응해 지방산 염과 글리세롤을 생성하는 ‘비누화 현상’으로 밀봉 미라를 설명한다. 시체가 비누처럼 변해 썩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 후난성 창사 박물관에 전시된 마왕퇴 미라, 후베이성 징저우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168호묘 미라 등도 모두 같은 원리. 중국에선 무덤 속에서 마르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미라를 ‘쓰시(젖은시체)’라고 부르며 보통의 ‘미라’와는 구분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방부처리가 끝난 미라에 마지막으로 씌우는 데스마스크. 이집트 미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기도 하다.]
 
방부처리 _ 불멸에 도전하려는 의지
시신을 방부 처리해 만든 인공미라로는 이집트의 미라가 잘 알려져 있지만 인공미라는 현대에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는 ‘시신은 영혼이 머무는 안식처’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하면 육신을 최대한 오랫동안 잘 보관하느냐에 큰 의미를 둔다. 이와 달리 현대의 인공미라는 일정기간 인간의 시체를 생전과 똑같이 보관하는데 목적을 둔다.

요즘 인공미라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시체를 수조에 넣어 발삼향이 나는 방부액을 피부로 침투시킨다. 그 다음 부패하기 쉬운 뇌와 안구, 내장 등을 빼내고, 생체 수분량과 같은 70~80%의 방부액을 체내에 채워 넣고, 피부가 팽팽해지도록 몇 시간 동안 공기 중에 노출 시킨 다음 화장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혀 유리관에 넣는다. 이렇게 작업해도 생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매주 두 번 이상 방부제를 얼굴과 손 등 노출부위에 발라 주어야 하고, 2~3년에 1회 정도 다시 방부액에 담갔다가 꺼내야 한다.

이런 미라는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지도자를 오랫동안 남겨두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구소련의 스탈린, 베트남의 호치민, 북한의 김일성 등이 미라로 만들어졌다. 최근 미국에서는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주는 단체도 생겨났다.

미라는 차갑고, 건조한 자연환경 때문에 만들어진다. 조상의 육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 다양한 장묘 문화와 기후환경이 하나로 합쳐지며 만들어진다. 문화와 역사, 자연이 후세에 남겨 준, 마법과 같은 선물이다.

한국, 중국, 아시아, 유럽, 이집트, 남미 등.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라는 그 나라의 기후와 생활양식을 대변한다. 이들 미라를 연구하고, 조상들이 전해준 정보를 찾아내는 일. 미라로부터 얻은 고대의 정보를 통해 의학과 문화를 한층 더 풍요롭게 가다듬는 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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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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