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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대한 별의 인큐베이터 옆에서

적외선으로 지켜보는 노정희

냉철한 과학자에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믿음이 좋을 때가 있다. 무리한 가설과 억측, 미신은 자칫 과학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그 믿음은 해가 되기도 한다. 좀 더 넓은 우주나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미시 세계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겐 말이다.

특히 컴컴한 암흑 저편에서 우주 생성의 기원을 찾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더 이상 보이는 것은 전부가 아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스피처 연구센터 노정희 박사(43)도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이다.

지난 2001년부터 노 박사는 지름 0.85m 적외선 우주망원경인 스피처팀에 합류해 별 탄생의 신비를 벗기고 있다. NASA가 지난 2003년 8월 쏘아 올린 스피처는 지구 주위를 돌면서 우주 저편에서 쏟아지는 적외선 파장을 수집하고 있다. 노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지구에서 약 540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의 삼렬성운(트리피드, Trifid)에서 별 탄생의 비밀을 밝힐 중요한 관측 결과를 얻었다.

노 박사는 스피처 망원경이 찍은 근적외선과 중간적외선, 원적외선 신호를 분석해 이 성운에 위치한 200여개의 초기 형태의 별을 찾아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삼렬성운은 30만년 된 큰 별 하나와 작고 차가운 먼지입자와 가스로만 이뤄져 있다고 여겨져 왔다. 스피처 적외선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상당한 파란을 불러왔다.

차갑고 어두운 먼지 안에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태아별에서 어느 정도 별의 형태와 행성계까지 갖춘 아기별까지 다양한 단계의 별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흡사 ‘별들의 인큐베이터’라는 비유까지 나왔다. 그녀를 포함한 적외선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올해 초 미국천문학회 연구성과 하이라이트로 선정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사실 태아별이나 초기 별 생성 과정은 오리온을 비롯해 다른 성운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삼렬성운은 비교적 나이가 적다는 측면에서 초기 별 형성 과정 탐구에 도움을 준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스피처연구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적외선 연구팀원들. 아킴 타페, 션 카레이, 톰 자렛, 빌 리치, 노정희, 세르지오 파자르드 아코스타, 데이비드 프레이어, 데보라 파짓 박사(오른쪽부터).


속살 드러내는 암흑 우주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 저편의 우주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삼렬성운처럼 먼지구름에 가린 부분들은 광학망원경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하니까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스피처 연구센터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적외선 영상과 도표를 훑어보던 노 박사가 말을 꺼냈다. 노 박사가 소속된 스피처팀처럼 적외선 파장을 이용해 천체를 연구하는 그룹은 꽤 있다. 대표적인 연구 그룹으로는 2MASS(Two Micron All Sky Survey)와 KI(Keck Interferometer), GALEX(Galaxy Evolution Explorer)등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 연구팀을 통틀어 노 박사팀은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스피처와 팔로마 천문대를 활용해 지상과 우주에서 입체적인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 궤도를 돌고 있는 스피처는 위치상 한정된 천체만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와는 달리 우주의 전방위를 관측할 수 있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고 0.75~1000μm인 적외선은 눈에 띄지 않는 천체가 보내는 일종의 메아리다. 디텍터(탐지기)로 수집한 적외선 영상은 차고 어두운 먼지층에 가린 천체나 항성보다 상대적으로 표면온도가 낮은 행성, 우주의 방랑자 혜성, 그리고 별의 마지막 단계인 초신성 폭발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차갑고 어두운 먼지 구름 속 천체는 다양한 범위의 적외선을 이용하면 관측이 가능하다. 삼렬성운 속 초기 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 박사팀은 삼렬성운의 적외선 측정 정보에서 수μm~수mm까지 다양한 신호를 포착했다.

“천체가 내뿜는 전자파가 근적외선에 가까울수록 밝게 보여요. 파장이 짧을수록 별에 가깝게 진화했다고 볼 수 있어요. 먼지 구름 속에 성장 단계가 다른 여러 별들이 존재한답니다.”

적외선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노 박사가 설명하는 별의 생성과정은 이렇다. 별은 강력한 초신성 폭발을 통해 먼지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강력한 폭발력은 우주에 떠다니는 차가운 먼지와 가스를 모으게 되고 이들 성간구름이 집중되면서 중력이 발생해 점점 더 큰 핵 결집이 일어난다.

그 결과 더 큰 중력이 작용하고 핵융합이 일어나면서 성간구름 온도는 점점 올라가 태아별 단계로 들어선다. 이어 태아별 주위로 얇은 원반형 먼지 구름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띠 형태로 바뀐다. 이 띠는 다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와 같은 행성계를 형성한다. 이 같은 별 생성은 구름의 밀도가 높은 구름에선 보통 5만년, 낮은 곳에서는 100~1000만년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이런 노 박사의 연구 결과는 분자구름 안에서 물질이 서로 역동적인 힘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개 태아별이 경쟁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적외선으로 별 탄생 비밀 밝혀

스피처에 실린 3.6~8μm대 적외선 탐지기 IRAC과 24~160μm의 조금 넓은 영역을 관장하는 MIPs는 적외선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이 같은 별의 생성과 초기 진화 단계를 측정해낸다.

같은 적외선일지라도 해상도 차이는 있다. 원적외선 영역과 중간대 적외선, 근적외선이 측정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근적외선 영역에서는 완연한 형태를 갖춘 초기 별 모습을,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낮은 원적외선에서는 멀리 떨어진 은하나 낮은 온도의 성간물질, 외계 행성의 형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파장대 별로 나뉘어 있는 측정 장치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피처 연구센터 윌리엄 T. 리치 박사는 “스피처의 경우도 측정 파장이 다른 MIPs와 IRAC 탐지기를 설치해 좀 더 완벽한 형태의 적외선 영상을 얻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적외선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팔로마 천문대에 설치된 탐지기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1~3μm 부근 근적외선 신호를 포착한다. 천문대는 우주와 달리 기후 조건이나 환경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기 쉬워 에너지가 낮은 중적외선이나 원적외선보다 신호가 강한 근적외선 영역을 관측한다. 상대적으로 주변 복사에 영향을 덜 받는 우주궤도로 적외선 우주망원경을 쏴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 박사는 결코 “적외선만이 만능”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적외선 연구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가시광선과 X선, 전파를 이용한 타 연구 분야와 합쳐졌을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스피처에 실려 있는 두 대의 적외선 디텍터(탐지기)가 삼렬성운이 내뿜는 '체온'을 포착했다. 왼쪽부터 파장이 24~160㎛인 적외선을 촬영하는 MIPS가 찍은 영상. 3.6~8㎛ 적외선을 탐지한 IRAC 영상. 먼지구름이 에너지 크기(파장 길이)에 따라 파랑과 초록 빨강색을 띠고 있다.


별 탄생의 비밀 풀어낸다 - 노정희

“3~4일은 꼬박 밤을 새죠. 새벽녘 어스름이 질 때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다시 어둠이 하늘 저 끝에서 몰려드는 늦은 오후 일과를 시작하죠. 식사를 마치곤 마냥 하늘을 봐요.”

밤하늘이 좋아 훌쩍 유학을 떠나온 지 올해로 20년째인 노 박사에게 우주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로 가득 차 있다. 우주망원경 스피처로 연구하는 스케일 큰 연구자인 그녀지만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캘리포니아 팔로마 천문대를 찾는다.

연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노 박사는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파리 원자에너지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적외선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천문연구자라면 가질 법한 수준의 관심정도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당시 그녀의 전공이자 관심은 초신성.

우연찮게 대학원 시절 옆방 동료이자 이제는 평생 반려자가 된 리치 박사의 연구를 접한 그녀는 적외선의 매력에 쏙 빠져버렸다. 2001년 남편과 함께 스피처 연구센터로 옮겨온 그녀는 스피처 발사 전부터 지금껏 여러 성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초기별과 천체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별 생성 과정의 메커니즘을 좀 더 체계화시키는 것과 초신성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 역누팀이 스피처에 탑재하기전 IRAC 디텍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IRAC 디텍터는 3.6~8㎛ 적외선 영상을 촬영하는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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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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