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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힘들 때마다 나만의 ‘노동요’를 찾아 듣는 이유

내 귀에 치즈케이크, 음악

언제 어디서나 인류와 함께한 음악. 늘 곁에 두고 함께 해서 음악의 존재 이유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음악이 생존이나 번식과 별 관계가 없다며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음악에 열광할까.


누구나 안다.
세상에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는 걸. 공부도, 밥값도, 심지어 그 좋다는 연애도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지해야만 하는 인간관계는 또 어떤가. “주변 사람들은 털어버리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요가 선생님도 맨 마지막엔 손과 발을 힘차게 털도록 시켰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만큼은 쉽게 털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가.

➊ 아이유, 금요일에 만나요

좋아하는 부분 들을 때 측좌핵에서 도파민 분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기분이 나아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2011년 캐나다 맥길대 몬트리올 뇌과학연구소 연구팀은 음악을 들을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했다(doi:10.1038/nn.2726). 양전자단층촬영(PET) 결과, 좋아하는 음악이 재생될 때 실험참가자의 뇌기저핵의 줄무늬체라는 부위에서 도파민이 나왔다. 줄무늬체는 뇌섬엽, 안와전두피질과 함께 뇌의 보상계를 이루는 부위다. 즉, 밥을 먹거나 마약을 흡입하거나 성적인 자극을 받을 때와 동일한 원리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시간에 따른 변화도 관측했다. 그 결과, 좋아하는 곡의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기 전까지는 줄무늬체 중에서도 꼬리핵에서 도파민이 나왔다. 꼬리핵은 ‘연인들의 뇌’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사랑과 연관이 깊다.

이 결과에 따르면, 음악을 듣는 건 연애와 비슷하다. “이번 주 금요일, 오~ 금요일에 시간 어때요. 주말까지 기다리긴 힘들어. 시간아 달려라. 시계를 더 보채고 싶지만.” 하면서 연인을 곧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상승하듯이, 어떤 곡의 좋아하는 부분이 곧 나올 거라는 생각에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꼬리핵이 활동하고, 그 결과 기분이 서서히 좋아진다는 것이다.

➋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반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들을 때는 줄무늬체 중에서도 측좌핵이 활동했다. 측좌핵은 ‘쾌락중추’라고 불릴 정도로 강렬한 쾌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측좌핵에서 도파민이 나오면 눈물이 나고 소름이 돋거나,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슈베르트 왈츠(Op. 9, D 365, No. 14)의 한 부분.
멜로디 흐름이 비슷하지만 화음이 D에서 D플랫(b)으로 변조됐다.
이 같은 변화에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다양한 반전이 음악을 좋게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처음 들은 음악이 ‘노동요’로 승격하는 요소는 뭘까. 누구나 한 번쯤 처음 듣는 곡에 ‘아, 좋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좀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네가 너무 궁금해. 어느 쪽이 너의 진짜 얼굴인지. 미스터 미스터리, 초인종을 눌러볼까.” 이미 그 곡을 흥미진진하다고 여기고 있던 것이다.

➌ 안예은, 미스터 미스터리

최근 우리 국민은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판결문을 갖게 됐다. 바로 대통령 탄핵 선고문이다. 한 영화인은 SNS에 “시나리오는 헌재 판결문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고문에서 유추하건대, 흥미진진함이란 결국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온다. 이석원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는 저서 ‘음악하는 뇌’에서 “새 정보를 접할 때 흥미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놀라움, 새로움, 변화, 복잡성, 모호성을 든다”며 “음악과 감상자가 이른바 ‘밀당’의 게임을 벌이는 가운데 모호성은 극대화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흥미로울까. 영국 길드홀 음악연극학교 존 슬로보다 교수는 1991년, 음악을 들을 때 전율을 느끼는 경험과 음악 구조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doi:10.1177/ 0305735691192002). 그는 2015년 9월 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실험참가자 중 10명이 이명동음적 변화에서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명동음적 변화란, 음을 그대로 두면서 화음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명동음적 변화와 음 앞에 붙는 꾸밈음 등 소름을 느끼게 하는 음악 구조의 공통점은 바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소리가 변하는 것입니다.”


음악 = 실제 위협 없이 놀라는 간접 경험
감동을 느끼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납득할 만하다. 흔히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을 때 사람들은 전율을 느낀다. 지금은 스코틀랜드의 유명 가수가 된 수잔 보일(위 사진)이 2009년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처음 출연했을 때 청중이 느낀 전율이 바로 그런 것이다.
47세인 그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는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보일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첫 소절 “이제는 가버리고 없는 옛날, 나는 꿈을 꾸었답니다. 희망이 가득했고,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었을 때. 사랑이 결코 마르지 않는 꿈을 꾸었답니다.”를 부르는 순간, 청중은 환호하고 심사위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➍ 레미제라블, I Dreamed a Dream 中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 When hope was high and life worth living.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어떤 변화를 만났을 때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소름이 돋는 것은, 사실 위협적인 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하게 하는 진화의 결과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느끼려고 일부러 귀신의 집에 가거나 공포 영화를 찾아본다. 슬로보다 교수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실제 위험에 처하지 않고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의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슬픈 음악을 듣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일본 도쿄예술대와 이화학연구소(리켄) 뇌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2013년, 슬픈 음악이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doi:10.3389/fpsyg.2013.00311).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슬픈 곡이 매우 비극적이라고 인식한 데 비해 실제 그 곡을 듣는 도중에는 음악이 더 낭만적이고 덜 비극적으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한 것이다.

연구팀은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달리 직접적인 위험이나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슬픈 노래 한 구절을 떠올려보자. “깊게 물들인 밤하늘은. 떠나지 못한 너의 모습이 잠든 나를 깨우고 나서 다시 입을 맞추고 사랑해 속삭이던 네 목소리가, 너의 향기가 매일 귓가에 들려온다. 넌 어디 있는데.” 만약 진짜 현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난다면? 슬픈 노래에 풍기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분위기를 절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➎ 장재인, 환청(feat. 나쑈)


감정을 불어 넣으면 실제로 피아노 음색이 달라진다
청중에게 이 같은 감미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연주자는 음악에 감정을 실으려고 노력한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한 방법이다. 2014년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심사위원들을 충격에 빠뜨린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를 떠올려보자. 그는 늘 건반을 친다. 노래뿐만 아니라 건반을 치는 모습 자체도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워해요. 슬프긴 해도 어쩔 수 없는 건, 내 마음이 그댈 향해 대체 움직이지를 않네요. 그대는 지금 어디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바보 같은 내 맘을 알까요.” 거의 옆으로 쓰러지듯 건반을 연주하는 모습이 이 곡을 더 돋보이게 했다.

➏ 이진아, 마음대로

음악과 몸의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노르웨이 오슬로대 음악학과 송민호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음악의 물리적인 형태인 소리와 이를 발생하는 물리적인 움직임이 양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예를 들면, 바이올린 연주자의 왼손가락의 움직임은 소리파형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는 “턱이나 박자를 세는 다리의 움직임은 어떨까요?”라고도 반문했다.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은 얼굴 정보 없이 소리만으로 가수가 누구인지 맞추는 프로그램이죠. 여기서 만약 음까지 소거한다면, 목소리 없이 행동만으로 누구인지 판별이 가능할까요?”

송 박사는 같은 학과 롤프 잉게 고도이 교수와 전문 연주자의 행동을 분석했다(doi: 10.1080/09298215.2016.1184689). 모션캡처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연주를 여러 번 반복하게 했다. 분석 결과, 전문 연주자는 소리에 아주 밀접한 손가락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턱이나 박자를 세는 다리의 움직임까지도 매우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송 박사는 “실제 연주와는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움직임도 반복된 훈련의 결과”라며 “실제로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한 정제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연주자가 이처럼 음악에 ‘감정을 넣는’ 행동을 하면 음악이 실제로 달라지기도 한다. 아주 옛날부터 전문 음악가들은 ‘피아노를 치는 타법을 바꾸면 음색이 달라진다’고 믿었다. 반면 음향학자들은 물리학의 관점에서 피아노의 음색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피아노 건반을 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으로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해머의 휘청거림이 근소하게 바뀌면서 음색이 달라질 가능성이 제기됐다(후루야 신이치, ‘피아니스트의 뇌’). 실제로 일본 지바공업대 정보 및네트워크과학과 히데오 스즈키 교수가 건반을 치는 방식에 따라 피아노의 배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다(doi:10.1250/ast.28.1). 배음이란 하나의 음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 음 가운데 기본 음보다 높은 정수배의 진동수를 갖는 음들로, 같은 음을 내도 플루트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다른 것은 배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비교적 고음인 경우 음량이 같아도 부드럽게 칠 때보다 강하게 칠 때 고주파수 배음이 크게 나타났다. 게다가 이 차이는 사람이 귀로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피아니스트이자 의학박사인 일본 조치대 이공학부 후루야 신이치 교수는 저서 ‘피아니스트의 뇌’에서 “감정들이 솟구치는 것은 곡 자체가 뛰어난 명곡이어서만이 아니라 연주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라며 “피아니스트가 음악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신체 사용법을 모른다면 비록 머릿속에 풍부한 음악이 떠오른다고 해도 실제 연주하는 음악은 애석하게도 표정이 빈곤한 것이 되고 만다”고 밝혔다.


음악은 우리의 삶을 위무하는 치즈케이크
소소한 기쁨과 때론 격한 감동을 주면서 삶의 일부를 지탱하는 음악. 현대인에겐 없어서는 안 될, ‘귀로 먹는 치즈케이크’가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을 처음 쓴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의도는 전혀 달랐다. 음악이 진화적으로 생존이나 번식에 밥과 달리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음악이, 단 음식을 좋아하도록 진화한 우리의 신경회로를 보다 효율적으로 자극하도록 제작된 치즈케이크 같다는 것. 그런데, 정말 그럴까. 2파트에서 확인해보자.
 


+더 읽을거리
이석원, ‘음악하는 뇌’
후루야 신이치, ‘피아니스트의 뇌’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이색 악기 패밀리(2016.10)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610N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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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자료출처

    캐나다 맥길대 몬트리올 뇌과학연구소,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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