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뒹구는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나서 발길이 멈춥니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는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이 그립고, 피곤함이 느껴지는 오후에는 설탕을 녹인 에스프레소 한 잔이 생각납니다. 커피를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쓰면서도 시큼한 맛과 달달하면서도 구수한 향기에 ‘힐링’이 되거든요.
커피 맛과 향 결정하는 로스팅
커피 콩(원두)의 조상은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 나무의 열매입니다. 전 세계 커피 품종의 대부분이 아라비카입니다. 지리적으로는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 있는 국가들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품종 몇 개를 섞은 것(블렌딩·blending)입니다. 모든 음식의 품질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원재료이듯, 커피의 품질도 60~70%가 원재료에 달려 있습니다. 즉, 원두의 품종과 재배지의 토양과 기후, 수확 후의 세척, 건조, 저장 및 운송 과정 중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동일한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풍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커피가 풍부한 맛과 향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두를 고온에서 볶는 과정(로스팅·roasting)이 중요합니다. 로스팅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원두에 직접 열을 전달해 볶는 ‘드럼 로스팅’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원두에 열을 직접 가해 ‘다크 로스트(짙은 갈색을 띠도록 원두를 볶는 것)’를 하기에 좋습니다. 약 220도의 뜨거운 바람으로 원두를 날리면서 볶는 ‘열풍 로스팅’도 있습니다. 이 방식은 짧은 시간에 원두를 볶아 향과 산미를 최대한 끌어냅니다.
커피 열매로부터 분리한 생두는 연두색을 띱니다.
생두를 건조시킨 원두는 수분을 10~12% 포함하고 있으며, 매우 단단하고 향기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두에 열을 가하면 원두가 익고 수분이 날아가면서 색깔이 변합니다. 처음에는 노란색을 띠지만, 차츰 연한 갈색을 띠게 되고, 이후 점점 짙어지다가 결국 검게 변합니다.
색깔이 변하는 동시에 가열한 원두는 점점 팽창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표면에 금(크랙·crack)이 가면서 터집니다. 이 틈으로 내부에 있던 기체가 바깥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원두 색깔을 보면 어느 정도 로스팅됐는지, 커피를 추출했을 때 어떤 풍미가 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깊고 풍부한 맛의 핵심은 ‘마이야르 반응’
로스팅기에 원두를 넣기 전에 먼저 200~250도로 예열을 시킵니다. 그리고 80도까지 식힌 뒤 원두를 넣고 다시 가열합니다. 약 5분이 지났을 때 로스팅기 내부는 165도까지 뜨거워지는데, 이때 원두는 노란색을 띱니다. 향은 쌀에 가깝습니다.
약 6분 30초가 지나면 로스팅기 내부가 180도까지 올라가며 원두가 갈색을 띠고 빵처럼 구수한 향기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 수분이 대부분 증발하면서 1차 크랙이 나타납니다.
이 원두를 커피로 추출하면 꽃이나 과일, 너트, 초콜릿처럼 달달한 향과 함께 시큼한 맛(산미)이 납니다.
원두에 든 아미노산의 아미노기와 당의 카르보닐기가 결합해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 내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반응은 커피뿐 아니라 맥주나 빵, 간장, 된장 등을 만들 때에도 일어나며, 깊고 풍부한 맛과 향을 내는 핵심 화학반응입니다.
로스팅을 지속하면 원두에 2차 크랙이 나타나면서 색깔이 좀 더 짙어집니다. 이 원두를 커피로 내리면 산미가 사라지고 달콤쌉싸름한 풍미가 납니다. 원두에 있던 당 성분이 카라멜화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두 안에 있던 향과 기름기가 서서히 방출되면서 에스프레소로 추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됩니다. 이 경우 커피 본연의 향을 유지하면서 커피의 단맛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습니다.
로스팅이 끝난 원두는 1~2주 내에 커피로 내려야 합니다. 원두 표면으로 빠져나온 기름이 공기와 만나 산화되면 풍미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니 갓 볶은 커피를 내려 감미로운 아메리카노를 즐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