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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남자와 아기별 바구니

외계행성 찾는 한국인 삼총사

하와이 하면 와이키키처럼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마우나케아(하와이말로 ‘하얀 산’이란 뜻)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화산은 하와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북태평양 하와이 섬에 해발고도 4200m로 치솟은 거대한 산이 바로 마우나케아다. 산 정상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이 앞다퉈 세운 천문대가 10곳이 넘게 몰려 있다. 구경 3~10m의 대형망원경들이 커다란 ‘눈’을 치켜뜬 채 저 멀리 우주로 향하고 있다.

세계 천문대의 메카 마우나케아에는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여념이 없는 한국인 천문학자 3총사가 있다. 일본 스바루천문대의 표태수 박사, 미국을 비롯한 7개국이 세운 제미니천문대의 송인석 박사, 캐나다, 프랑스, 하와이가 합작한 CFHT의 김삼 연구원이다.


제미니천문대 구경 8.2m짜리 대형망원경으로 우주 관측을 시작하는 모습. 제미니천문대는 쌍둥이라는 영문이름(Gemini)처럼 하와이 마우나케아뿐 아니라 칠레 안데스산맥에도 있다. 쌍둥이 망원경으로 전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망원경 거울에 금 칠한 이유

스바루천문대와 제미니천문대의 본부는 하와이 섬 동쪽에 위치한 도시 힐로의 ‘아오호쿠 플레이스’(별 보는 사람을 위한 거리란 뜻)에 있다. 표 박사, 송 박사와 함께 4륜 구동차를 타고 마우나케아로 향했다.

차로 구불구불 1시간 이상 달리자 낮은 구름을 뚫고 서 있는 마우나케아 산정이 눈앞에 성큼 다가서고, 저 멀리 갈색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산정으로 가는 중간기착지 할레포하쿠(하와이말로 ‘바위 집’이란 뜻)다. 이곳은 해발고도 2800m로 백두산보다 높다.

산정에 오르기 전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 누구나 이곳에 들러 20~30분간 머문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CFHT의 김삼 연구원이 먼저 와 있었다. 김 연구원은 CFHT 본부가 있는 하와이 섬 서북쪽 도시 와이메아에서 오는 길이다. 잠시 후 세 사람과 함께 산정으로 떠났다. 산정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지만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해발고도 4200m 마우나케아 정상에 도착하니 산정은 구름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산등성이마다 흰색이나 은색으로 빛나는 돔들이 여럿 보인다. 족히 10개는 넘어 보인다. 모두 대형망원경이 들어 있는 천문대들이다. 산정에서는 지상에서보다 산소가 40% 가량 부족하고 기압도 낮아 방문객들은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어지럼증과 두통이 찾아온다. 또 매우 건조해 눈이 뻑뻑하고 쉽게 갈증이 난다.

송 박사는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고 사탕이나 초콜릿, 물을 자주 먹는 게 좋다”며 산정 수칙을 들려준다. 때로 호흡곤란이나 구토를 일으켜 실려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산정의 찬 공기와 강한 바람에 견디기 위해 두터운 점퍼를 걸치고 스바루천문대, 미국의 케크천문대, CFHT, 제미니천문대를 차례로 방문했다. 스바루천문대 안으로 들어가자 높이 20m가 넘고 주경의 지름이 8.2m인 망원경의 모습이 웅장하다. 표 박사는 “거대한 주경으로 들어온 빛은 작은 부경에서 반사된 후 다시 카메라 같은 관측장비에 모인다”며 “부경에는 적외선의 반사율을 높이기 위해 금 코팅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생활하기 힘든 곳에 천문대를 건설한 이유는? 표 박사는 “마우나케아처럼 높은 곳일수록 우주에서 오는 빛을 흡수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나 수증기가 적어 천체 관측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밤에는 은하수가 장관이다. 마우나케아는 1년 365일 중 최대 270일 가량의 날씨가 맑다.
 

하와이 마우나케아 정상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이 세운 천문대가 10곳이 넘게 있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제미니천문대.


대형 서치라이트 옆에서 반딧불 찾기

송 박사는 세계적인 ‘외계행성 사냥꾼’이다. 지난해 7월부터 ‘우주망원경을 이용한 외계행성 탐색’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미국, 호주 등의 천문학자 10여명이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116개의 별에서 목성급 행성의 사진을 찍으려는 계획이다.

보통은 행성의 중력이 별의 움직임에 미치는 조그만 영향을 감지해 간접적으로 외계행성을 발견해 왔지만 송 박사팀은 직접 사진을 찍어서 외계행성을 찾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송 박사는 “이는 잠실야구장의 서치라이트 옆에서 반딧불 하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진촬영을 통해 최초로 외계행성이라고 학계에서 인정받은 ‘2M1207b’의 공동 발견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유럽남반구천문대(ESO)의 가엘 쇼뱅 박사팀이 칠레 북부에 있는 거대망원경(VLT)으로 지구에서 230광년 떨어진 갈색왜성 ‘2M1207’ 근처에서 어둡고 작은 외계행성 후보의 사진을 찍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단 한번의 관측으로 행성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별 주변에서 발견된 희미한 천체가 다 행성은 아니다. 아주 멀리 있는 천체가 우연히 함께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몇 개월 후에도 행성 후보가 별과의 상대적 거리가 변하지 않으면 별 둘레를 도는 행성으로 확증된다.

송 박사는 “사실 VLT의 정밀도가 떨어져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이 필수적이었다”며 “올해 4월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이 행성 후보를 관측해 2M1207b가 외계행성임을 확증했다”고 설명했다.

외계행성 2M1207b를 처음 촬영한 성과가 실린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지 논문에는 송 박사도 저자로 포함됐다. 학술적으로 2M1207b의 공동 발견자로 인정받은 셈. 관측 결과 2M1207b는 목성보다 3, 4배 큰 질량을 가진 행성으로 밝혀졌다. 송 박사팀도 조만간 좋은 결과를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현재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외계행성 후보 30여개를 구경 8.2m짜리 제미니망원경과 유럽남반구천문대의 VLT로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송 박사는 내년 초에 시작될 새로운 외계행성 프로젝트를 주도할 연구팀을 구성하고 있다. 새 프로젝트는 칠레 안데스산맥에 있는 또 하나의 제미니천문대에 설치된 차세대 적외선카메라(NICI)로 500여개의 별을 2, 3년에 걸쳐 총 50일간 관측해 외계행성을 찍으려는 계획이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된 어떤 외계행성 탐색계획보다 더 큰 규모이다. 현재 8개국 총 23명이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가스덩어리에 붙여진 성(姓)

행성은 별 탄생 초기에 별 주변에서 만들어진다. 별은 가스와 먼지가 뭉쳐 있는 성간구름에서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성간구름에서 물질이 뭉쳐서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원시별이 생긴다. 거의 동시에 원시별의 양쪽 극 방향으로 격렬하게 물질이 분출되고 원시별의 적도 방향에서는 원반을 따라 물질이 별로 끌려들어간다. 이후 먼지 원반을 거느린 젊은 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이 원반 곳곳에서 행성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표 박사는 별과 행성이 어떻게 탄생하며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진화해 나가는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별 탄생 과정에서 주변으로 물질을 강하게 내뿜는 현상을 대형망원경으로 관측해 이 현상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이 물질 분출 현상은 별 탄생 과정에서 별의 씨앗이 자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표 박사는 말했다. 그는 이 현상의 기원과 메커니즘을 연구할 목적으로 스바루망원경의 적외선장비를 사용했다. 주변 가스와 먼지를 뚫고 원시별 표면에서 가까운 곳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표 박사는 높은 분해능으로 관측한 결과 전혀 다른 속도를 갖는 두 종류의 물질 분출 현상이 있음을 알아냈다. 원래 물질 분출 현상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빠른 속도로 집중돼 분출되는 제트(jet)이고 다른 하나는 제트에 비해 느린 속도로 넓게 퍼져 나오는 바람(wind)이다. 그는 “기존 이론으로는 관측된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고속의 제트가 별 표면 가까이에서 뿜어져 나오고 바람이 별 주변의 원반에서 나온다는 가설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표 박사가 제시한 이 메커니즘은 천문학계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9월 4째주에 표 박사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관련 학회에 주요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2002년 그는 황소자리 원시별에서 방출되는 새로운 가스덩어리를 발견했는데, 이 천체현상의 이름에 그의 성(姓)이 붙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 천체현상에는 그의 성 영문인 ‘Pyo’의 머리글자가 다른 공동연구자의 성 머리글자와 함께 들어가 ‘PHK’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문학자들은 어린 별 주변의 먼지 원반에서 행성이 탄생한다고 믿고 있다. 상상도는 'BD +20307'이란 별 주변에서 지구 크기 천체가 충돌해 먼지가 만들어지는 모습.


반짝반짝 빛나는 별은 싫어

천문학자들은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별이 반짝거릴수록 상층 대기의 요동에 따라 별빛이 흩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우나케아 정상에서는 상층 대기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어 어두운 별을 관측하기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요동의 영향은 남아 있다. 그래서 마우나케아 천문대의 망원경에는 대부분 대기 요동 효과를 없애려는 적응광학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김 연구원은 “이는 지상에서도 우주공간에 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에 버금가는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케크천문대를 중심으로 레이저를 통해 적응광학 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 요동 효과를 알아내려면 관측하고자 하는 목표 천체 주변에 ‘가이드 별’이 꼭 필요하다. 레이저를 하늘로 쏘아 올리면 빛이 고도 90km 층에서 반사돼 돌아오는데, 이 빛이 가이드 별을 대신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지난 1년간 레이저 가이드 별을 연구해 왔다. 그는 “이 레이저 기술은 군사적 응용이 가능하다”며 “지상에서 적국의 스파이 위성을 식별하거나 공중에서 적의 미사일을 조준해 파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하와이 한국인 천문학자 3총사는 외계행성을 연구하는 데 힘을 모으려고 한다. 표 박사와 송 박사는 별 주위에서 행성이 탄생하는 먼지 원반을 관측하고 김 연구원과 송 박사는 외계에서 지구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연구해 지구형 외계행성을 찾는 데 일조할 계획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사는 외계행성이 우리 손으로 발견될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제미니천문대 위로 별들이 흘러가는 광경을 찍은 사진.


하와이 한국인 천문학자 3인방 - 김삼,표태수,송인석

표태수 박사와 송인석 박사는 서울대 85학번 동기이다. 표 박사는 천문학과 출신이고 송박사는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현재 하와이 마우나케아에서 거대망원경으로 우주를 연구하고 있지만 학문적 배경은 서로 다르다.

표 박사가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1년부터 스바루천문대에서 일해 온 반면, 송 박사는 2000년 미국 조지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지난해부터 제미니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제미니천문대는 다른 천문대와 달리 종신 연구원(tenure) 제도를 두고 있는데, 송 박사는 내년 종신 연구원에 임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 박사는 지난 7월 태양계 밖에서 지구형 행성이 존재한다는 간접 증거를 발견해 영국의 과학전문지‘네이처’에 발표했고, 표박사는 지난해 12월 목성의 가장 안쪽 위성 ‘아말데아’가 먼 바깥쪽에서 만들어진 후 현재의 자리로 이동했다는 증거를 찾아내 미국의 과학전문지‘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김삼 연구원은 한국과학재단 해외공동연구지원사업덕분에 지난해 6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넘게 CFHT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1월부터는제미니천문대에서 송 박사와 함께 연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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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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