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오지부터 신사의 나라까지 즐기는 운동 축구. 초창기 축구는 별다른 장비 없이 공 하나면 맨발로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축구공, 축구화, 축구복에 첨단기술 바람이 불고 있다.
축구공 - 골키퍼만큼 애먹는 공격수
“속도가 더 빨라지고 회전력도 훨씬 커져 이전보다 잡아내기 더 껄끄럽다.”
“잘 튀고 조금만 잘못 맞아도 엉뚱한데로 날아간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 열광(fever)과 신성(nova)의 합성어)가 처음 지급된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 골키퍼와 공격수의 반응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피버노바에 적응하는데 처음엔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피버노바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피버노바의 큰 특징은 이전보다 공의 반발력이 증가했다는데 있다. 따라서 작은 힘으로도 더 빠르고 더 많이 회전하도록 공을 찰 수 있다. 정확하게 차야 공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은 기본. 실제 독일의 아디다스 축구공연구센터에서 로봇발로 피버노바를 차 35m 떨어진 또다른 공을 맞추는 실험에서 2천번 중 1-2번만 빗나가는 정확성을 보였다고 한다.
피버노바가 가진 놀라운 반발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겹으로 구성된 기본 패널(축구공거죽의 조각)의 중간에 들어가는 신택틱 폼(syntactic foam)이다. 신택틱 폼에는 특수가스가 미세하면서도 극도로 압력이 높은 거품형태로 주입된다. 물론 1998년 프랑스월드컵 공인구인 트리콜로에도 신택틱 폼이 적용됐지만, 피버노바에는 특수한 미세거품이 이전보다 일정한 크기를 지니고 규칙적으로 배열되도록 했다. 결국 피버노바는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은 반발력을 보일 수 있고, 그만큼 정확성도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발력만큼 늘어난 골
축구공의 변천과정에는 당시의 신기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소나 돼지의 오줌보에 바람을 넣거나 동물가죽에 털을 집어넣은 공을 사용했다는 옛기록도 있지만, 초창기의 축구공은 내부에 고무를 넣어 원형으로 만든 가죽공이었다. 물론 차는 순간 발이 아플 정도로 무겁고 딱딱했다. 좀더 부드럽고 기능이 좋은 공은 1960년대부터 개발됐고,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아디다스의 텔스타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처음으로 공인구로 채택됐다. 재미있게도 육각형 조각 20개에 오각형 조각 12개가 군데군데 박힌 점박이공 텔스타는 이후 축구공의 대명사가 됐다.
FIFA의 규정을 보면 가죽이나 알맞은 재질로 모양은 둥글게, 둘레는 68-70cm, 무게는 4백10-4백50g, 압력은 0.6-1.1기압인 공을 사용하라고 돼있다. 이미 크기, 무게, 공기압 등에 대한 제한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을 개발하는 초점은 당연히 고무튜브를 감싸는 거죽의 재질에 맞춰졌다. 월드컵 공인구의 거죽에 쓰인 소재는 텔스타에 쓰인 천연가죽에서 다양하게 변모됐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공인구 ‘탱고 에스파냐’에는 가죽과 폴리우레탄이 성공적으로 결합됐고, 최초로 방수가죽을 사용해 물에 젖어도 공의 무게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공인구 아즈테카에는 천연가죽보다 방수성과 탄력이 뛰어난 인조가죽이 처음 사용됐다.
스펀지 형태의 폴리우레탄 폼(foam)이 거죽에 본격적으로 쓰인 공인구 퀘스트라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골키퍼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폴리우레탄 폼에는 일반공기가 미세거품형태로 들어가 반발력이 전보다 증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골이 줄어들던 월드컵의 흐름을 뒤바꾸며 이전 대회보다 평균 0.5골이나 더 많은 평균 2.71골을 기록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폴리우레탄 폼보다 반발력이 더 뛰어난 신택틱 폼이 사용된 트리콜로가 등장했다. 역시 평균 2.67골로 미국대회와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트리콜로보다 더욱 향상된 기술이 적용된 2002년 한일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 이제 신성처럼 나타난 피버노바가 월드컵무대에서 얼마나 골네트를 흔들며 전세계 축구팬을 열광으로 몰아갈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축구화 - 회전력이냐 스피드냐
‘중원의 마술사’ 프랑스의 지단 대 ‘새로운 축구황제’ 브라질의 호나우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계적인 양대 축구스타다. 호나우두와 지단이 보여주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슛은 모두 축구화를 신은 황금발에서 나온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시원하게 터지는 멋진 골과 함께 이들이 신은 축구화에 주목하자.
이미 지단은 1920년대부터 축구화를 개발해온 아디다스의 최신작 ‘프레데터 매니아’를 착용한채 중원을 누비고, 최근 부상에서 회복한 호나우도는 비교적 후발주자인 나이키의 야심작 ‘머큐리얼 베이퍼’를 신은채 그림 같은 슛을 날리고 있다.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매니아와 나이키의 머큐리얼 베이퍼에는 첨단기술과 신소재가 숨어있다. 현대축구에서 축구화는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신발이 아니라 선수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첨단장비다.
외피가 비대칭인 이유
프레데터 매니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고무돌기다. 특수 고무재질로 된 발등의 고무돌기는 공과 연속적으로 만나 에너지를 전달하고 회전력을 크게 만든다. 아디다스에서 자체 실험한 결과 보통 축구화보다 초당 1.48% 이상 더 회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죽과 달리 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재질이기 때문에 비가 많고 습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의 6월 기후에서도 완벽하게 공을 제어할 수 있다고 아디다스측은 주장한다.
축구화 밑창에 최초로 징(stud)을 도입해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아디다스는 이번 프레데터 매니아에도 새로운 디자인의 징을 채택했다. 가볍고 마모에 강한 마그네슘 재질의 징은 단면을 원형이 아닌 유선형으로 만들어 1개는 고정시키고 나머지는 교환 가능하게 했다. 발바닥 중앙에 고정된 막대형 징은 그라운드를 강하게 파고들며 진흙이 달라붙지 않게 해 부드럽게 발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뒤축에는 특수 보강재를 장착해 발뒤꿈치가 안정되고, 밑창은 앞뒤로 나눠져 발의 압력이 분산된다. 또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발등의 혈관·근육 위치와 동일한 방향으로 제작된 갑피(외피)다. 끈을 묶는 곳이 바깥쪽에 위치한 비대칭형 갑피 덕분에 공과 접촉면적이 넓어진 안쪽의 고무돌기는 강력한 킥을 가능케 하고 바깥쪽의 캥거루 가죽은 볼 컨트롤을 극대화한다.
공과 발 사이 거리 3mm
나이키의 머큐리얼 베이퍼는 한짝의 무게가 1백96g에 불과하다. 보통 축구화가 3백-4백g 정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초경량인 셈이다. 나이키는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 착용한 육상화를 만든 기술을 이용했다. 가능한 한 얇은 소재인 나이키스킨을 만듦으로써 초경량 축구화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당연히 축구화가 가벼우면 선수들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40m 코스에서 머큐리얼 베이퍼를 착용한 선수들이 기존 축구화를 신을 때보다 0.17초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키스킨은 공과 발 사이의 거리가 3mm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얇다. 공을 찰 때 거의 맨발로 차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자체 테스트 결과, 물을 흡수하지 않고 내구성은 기존 인조가죽에 비해 50%나 뛰어나다고 한다. 또 최고의 착용감을 살리기 위해 맨발 모양을 본떠 기존의 평평한 바닥과 달리 발의 굴곡을 반영했다. 이런 디자인은 뒤꿈치 주변의 지방조직이 자연스레 발을 보호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굴곡형 축구화에서 뒤꿈치가 받는 압력이 평평한 축구화에 비해 15%가 낮았다고 한다.
나이키측은 가벼운 머큐리얼 베이퍼가 순간적인 스피드가 생명인 스트라이커(최전방 공격수)에게 제격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축구화는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야 공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디다스측에서는 프레데터의 PVC 중창이 강력한 반발력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가벼운 축구화 논쟁은 이제 2002년 한일월드컵의 그라운드로 옮겨졌다. 어느 쪽이 승리할지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축구복 - 한겹보다 가벼운 2중 구조
축구선수들이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내내 뛰지는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있는 시간이 평균 2.3분, 걷는 시간은 46.4분, 가볍게 뛰는 시간은 38분, 격렬하게 뛰는 시간은 11.3분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축구선수들이 경기중에 느끼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열과 땀이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날씨도 변수다. 월드컵이 열리는 6월 한달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는 온도가 20℃를 넘을 뿐만 아니라 습도가 8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이 90분 간 경기를 치르다보면 보통경기에서보다 당연히 체온이 더 상승하고 축구복은 몸에서 발산된 더 많은 땀으로 심하게 젖는다. 젖은 축구복이 잘 마르지 않는다면 무겁고 축축한 축구복을 걸친채 불쾌하게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선수의 경기능력이 떨어진다.
이번 월드컵개최지의 높은 온도와 습도에 대비해 나이키와 아디다스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축구복을 내놓았다. 한국 대표팀은 나이키의 축구복을, 일본 대표팀은 아디다스의 축구복을 입고 결전에 나선다. 새로운 축구복에는 기존 축구복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첨단기술과 신소재가 동원됐다. 첨단장비라 할 만한 새로운 축구복을 만나보자.
비가 올 때도 체온 조절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개발한 축구복에는 공통점이 많다. 한겹의 기존 축구복에서 탈피해 체온을 조절하고 통풍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두겹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축구복에서처럼 별도의 면셔츠를 입을 필요도 없다. 축구복의 2중구조는 선수들이 흘린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며, 몸의 열을 바깥으로 쉽게 배출시켜 항상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아디다스에서는 양말도 두겹으로 만들었다.
나이키는 한국과 일본의 6월 기후를 그대로 재현한 실험실에서 여러가지 소재와 성능 테스트를 진행해 ‘쿨 모션’(cool motion)이라는 신기술을, 아디다스는 DLC(Dynamic Layering Concept)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안쪽 겹에는 면이나 폴리에스터보다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는 소재를 사용했고, 바깥쪽 겹에서는 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부분에 통풍이 잘되는 소재와 망사구조를 적용했다. 특히 나이키의 경우 통풍 기능은 걸을 때보다 뛸 때 2배 이상 효과가 있고 기온이 낮을 때나 비가 올 때도 체온 조절과 통풍 기능이 그대로 발휘된다고 한다.
또한 새로운 축구복은 두겹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축구복보다 매우 가볍다. 마치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또 하나의 피부처럼 최상의 착용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또한 안쪽 겹에는 솔기를 없애고 부드러운 최첨단 마이크로 섬유를 사용해 착용감을 높였다.
하체를 압박하는 이유
축구선수 힘의 70%는 하체에서 나온다. 아디다스의 경우 하체의 근육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의와 양말의 안쪽 겹에 머리카락의 굵기보다 1백분의 1 정도로 얇은 초극세사인 라이크라를 첨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수영경기에서 이안 소프가 선보인 전신수영복처럼 불필요하게 근육이 떨리는 현상을 최소화시켜 피로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아디다스측은 설명한다.
정밀하고 효과적으로 근육을 압박하기 위해 하체의 부위에 따라 다른 압박을 가했다. 허리에서 발끝으로 갈수록 더 큰 압력이 가해지도록 라이크라 원단을 적용했다. 이를 위해 선수들의 신체 자료를 3차원 스캐너로 정밀분석해 경기중 선수들의 움직임을 극대화하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맞붙기 힘들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성적은 비교될 것이다. 두 국가 대표팀의 첨단 축구복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주목해서 살펴보자.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미래의 월드컵
미래의 월드컵은 어떤 모습일까. 선수들은 지금보다 발전된 축구복을 입고, 감독은 컴퓨터를 통해 선수와 경기를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심판은 경기장의 적외선 장비와 각종 센서로 바뀔지 모른다. 축구도 첨단과학으로 무장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 선수의 장비와 축구공 ] 최근 영국 버밍엄대를 비롯한 유럽연구자들이 입는 컴퓨터를 활용한 축구복과 칩이 들어간 축구공을 연구중이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미래에는 선수의 몸상태를 축구복에 부착된 간단한 장비로 감지해 벤치의 컴퓨터로 보낼 수 있고, 통신이 가능한 이어폰을 통해 감독의 지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축구공에는 칩이 들어가 밖으로 나갔는지 골대 안으로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의 결승전에서 공이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는지를 놓고 벌였던 논쟁과 같은 시비는 사라질 것이다.
[ 심판 ] 현재 심판의 첨단장비는 호출기다. 주심이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심은 깃발의 단추를 눌러 주심의 호출기를 진동시킨다. 하지만 미래에는 심판이 없어질 것이다. 경기장 바깥쪽과 공중에 설치된 적외선 장비로 센서를 장착한 선수의 위치를 파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 선수점검 ] 미래에는 선수의 몸에는 각종 센서와 장비가 부착돼 있어 컴퓨터를 통해 선수의 몸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벤치의 감독은 선수의 속도, 체온, 심장박동수, 산소섭취량(VO2), 혈압 등을 점검해 선수를 교체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
[ 전술변화 ] 미래에는 경기장의 설치된 장비를 통해 전체 선수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감독은 컴퓨터를 이용해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각종 경기 자료에 근거해 전술변화나 선수교체의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