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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자로 나노기계 만든다

나노로봇의 핵심부품 역할 할 듯

 

최근 분자로 나노기계를 만드는 연구가 관심을 모으면서 이를 묘사한 이미지가 관련 저널의 표지에 종종 실리곤 한다.


“괴질 확산으로 정신이 없는 의사 돌레프는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는 호출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는 3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돌레프는 그의 얼굴과 몸 전체로 괴질이 이미 심하게 번진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과연 그가 자신이 옆에 있는 것조차 인식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갔다. 의사는 가지고 온 병에서 불투명의 액체를 주사기로 뽑아 환자의 팔에 주입했다. 주사기를 환자의 팔에서 빼낸 후에 그는 뒤로 물러서서 잠시 동안 기다렸다. 이제 환자의 몸 안에서는 액체 안에 들어있던 수많은 나노크기의 분자해체기들이 혈관을 따라서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내장돼 있는 분자해체기는 환자의 몸 안에 있는 괴질의 원인균을 신속하게 찾아낸 후에 원인균의 화학결합을 끊어서 원자단위로 분해해 파괴할 것이다.”

글은 브리트 질레트가 지난해 발표한 공상과학 소설 ‘파라다이스 정복’ (Conquest Of Paradise)에서 인용한 것이다. 나노테크놀로지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에릭 드렉슬러가 1986년에 발표한 책 ‘창조의 엔진: 나노테크놀로지 시대의 도래’ 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은 나노로봇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먹이’나 조 단테의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서도 나노로봇을 만날 수 있다.

나노로봇은 다양한 부분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나노로봇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직까지는 꿈속에서 아니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나노로봇을 최종 목표로 하여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나노로봇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드렉슬러를 포함한 많은 나노과학자가 이야기하듯이 나노로봇이 실현되려면 먼저 ‘분자구조를 원자단위에서 제어’ 하는 분자나노과학기술이 확립돼야 한다. 이를 이용해서 나노크기의 기계와 그 부속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분자나노기계기술이다. ‘분자’ ‘원자’ 를 다루는 분자나노기계기술은 화학을 비롯해서 물리학, 생물학, 전자공학 등 여러 학문분야가 관여한다.

여기에서는 나노로봇의 중요한 부속품으로 사용될 수 있거나 아니면 그 자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분자나노기계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그 분야를 좁혀서 나노크기에서 기계적인 기능을 하는 분자들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거나 상상하고 있는 영화속의 나노로봇은 분자나노기계와 함께 나노바이오센서와 나노약물전달시스템 등 다른 부속품이 개발되고 통합돼야만 가능하므로 아직까지는 먼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초에 8번 회전하는 나노프로펠러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생체분자 제조공장인 기계인 리보솜은 3-4개의 RNA와 수십개의 단백질이 모인 분자복합체다.


우리는 항상 작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크기가 작지만 모든 것이 집적돼 그 기능을 충실히 하는 기계가 만들어지거나 만화 드레곤볼의 캡슐처럼 크기까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런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분자나노과학자들의 연구결과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기능적인 면에서 완벽한 역할을 하는 나노기계를 우리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을까? 우리 주위에서는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기계는 다름 아닌 우리 몸속에 있는 생체분자이기 때문이다. 수십억년 동안의 진화를 거친 생체분자는 우리가 아직까지 확실하게 모르는 작동방법으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생물체안에는 분자간 결합을 촉진시키거나 분자간 결합을 끊는 분자기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자기계로는 단백질을 만드는 세포내 소기관인 리보솜을 들 수 있다. 리보솜은 3-4개의 RNA와 수십개의 단백질로 이뤄진 분자복합체로 DNA의 정보를 담고 있는 전령 RNA의 메시지를 읽어들여 아미노산을 재료로 수많은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최근 리보솜에 대해 연구가 집중되고 있지만 수십개의 생체분자들이 모여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리보솜 외에도 생물체에는 수백종의 분자기계가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회전 모터인 F1-ATPase라고 불리는 단백질, 직선형 모터인 키네신과 미오신, 그리고 박테리아 편모 모터를 들 수 있다. 현재 분자나노과학자들은 2가지 방향으로 분자기계를 제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번째 접근 방법은 생체분자 자체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기계적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생체분자를 생명체로부터 추출·정제해 ‘생체분자기계’ 를 제작하는 것이다. 크기의 관점에서 볼 때 생체물질인 핵산이나 단백질은 나노크기의 구조물이며 기능적인 관점에서도 완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접근 방법은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기계적 움직임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기계적 움직임을 자세히 살핀 후에, 그 움직임의 핵심을 분자단위에서 구현해 분자기계를 ‘합성’ 하는 것이다.

먼저 생체분자기계를 만드는 연구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2000년 미국 코넬대의 나노바이오센터 연구진은 회전 모터인 F1-ATPase를 이용해 나노기계를 제작한 결과를 ‘사이언스’ 에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F1-ATPase는 생체 에너지원인 ATP를 분해하는 효소로서, 이 과정에서 화학에너지가 역학적 에너지로 바뀌면서 회전운동이 일어난다. 즉 F1-ATPase는 ATP를 연료로 하는 회전 모터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제작한 나노기계의 구조는 나노기둥(지름 80㎚, 높이 2백㎚), 생체회전모터, 즉 F1-ATPase(지름 8㎚, 높이 14㎚), 나노프로펠러(지름 1백50㎚, 길이 7백50㎚)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그란 호박처럼 생긴 생체회전모터를 화학적 접착체를 사용해서 나노기둥 위에 붙인 후에 호박의 꼭지에는 다른 화학적 접착제를 사용해서 나노프로펠러를 붙여 나노기계를 완성했다.

이 기계에 연료인 ATP를 주입하자 1초에 약 8회의 회전속도로 나노프로펠러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이 관찰됐다. 이때 연료 효율은 50% 정도로 계산돼 일반 모터의 효율인 20%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런 나노모터가 나노구조물에 운동성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키네신과 미오신을 이용한 분자셔틀을 제작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키네신과 미오신은 직선형 모터로서 ATP을 연료로 해서 트랙을 따라서 움직인다. 예를 들어 키네신은 트랙을 따라 한번에 8㎚씩 이동한다. 따라서 직선형 모터를 짐차로 쓰면 특정 분자, 즉 짐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나노과학자들이 상상하고 있는 응용은 엄청나다. 우리 몸의 한부분에 결함이 생겼을 때 이를 분자셔틀이 인지하고 필요한 분자와 에너지를 옮겨와서 치료를 하는 ‘나노자기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한편 다른 분자기계가 필요로 하는 원자나 분자를 옮겨주는 컨베이어벨트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나노과학자들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지금은 분자셔틀의 각 부속품이 작동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각 부속품을 통합하는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즉 직선형 모터의 방향과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원하는 짐을 어떻게 인식해서 모터에 실을 것이며, 어떠한 정보를 이용해야만 원하는 자리에서 짐을 내려놓게 만들 수 있을까? 이처럼 많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노과학자들은 고민하고 있다.

DNA와 RNA같은 핵산 또한 생체분자기계를 제작하는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생체물질이다. 특히 DNA를 이용한 연구가 활발한데 이는 RNA와 비교할 때 안정성이 높고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이룬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난 2000년 8월 10일자‘네이처’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 앤드류 터버필드 교수팀이 만든 DNA로 만든 분자가위가 발표됐다. 각각 수십개의 염기로 이뤄진 3종류의 DNA단일가닥이 합쳐져 날이 벌어진 형태의 가위를 만든다. 여기에 ‘연료’ 라고 부르는 제4의 DNA단일가닥이 들어가면 날이 접히고 제거하면 다시 열린다. 가위 양끝에는 형광분자가 달려있는데 가위가 접힐 경우 밝기가 줄어든다. 연구자들은 형광의 밝기변화를 측정해 실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남을 증명했다. 이 결과는 그 아이디어의 기발함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노엘리베이터 등장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체분자기계의 핵심부분만 모방해 좀더 간단한 구조를 갖는 합성분자기계를 만드는 연구도 활발하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체분자기계의 핵심부분만 모방해 좀더 간단한 구조를 갖는 합성분자기계를 만드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 분야에서 최초로 시연된 분자기계는 1999년 9월 9일자 ‘네이처’ 에 동시에 발표된 2종류의 분자톱니바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반복적인 직선운동 같은 간단한 기계적 움직임을 보이는 분자 구조들이 만들어졌었지만, 이때 발표된 분자톱니바퀴는 이전의 분자기계와는 차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즉 엄밀하게 제어된 화학 반응을 통해 얻은 화학에너지 또는 빛에너지를 이용해 한쪽 방향으로만 톱니바퀴가 회전하게 디자인된 것이다. 이처럼 한방향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래칫(ratchet)이라고 한다.

한편 분자톱니바퀴의 경우에는 한개의 분자가 기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다른 예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분자로 이루어진 분자기계보다는 여러개의 분자로 이뤄진 구조(이런 구조를 ‘초분자’ 라고 한다)를 이용해서 분자기계를 만든 경우가 훨씬 많다. 초분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화학자들이 상상해낸 구조를 만들기에는 1개보다는 여러 개의 분자를 갖고 만드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림픽 오륜기 구조를 분자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당연히 고리형태의 분자 5개가 필요하다.

기계적 성질을 가지는 초분자의 대표적인 예로 막대형태의 분자와 고리형태의 분자가 합체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고리분자가 막대분자 위를 셔틀처럼 움직인다. 즉 막대분자에 서로 화학적 성질이 다른 정거장을 만들면 고리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거장 위에 머무른다. 이때 pH같은 화학적 조건을 변화시키면 정거장의 전기적 성질이 바뀌면서 고리분자가 다른쪽 정거장으로 이동한다. 출발신호 역할을 하는 조건의 변화에 따라 고리분자가 두 정거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만일 막대기가 훌라후프 형태로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다면 회전모터도 만들 수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 개념을 활용해 ‘분자엘리베이터’ 를 만들었다고 2004년 3월 19일자 ‘사이언스’ 에 발표했다. 지름 3.5㎚, 높이 2.5㎚인 이 초소형 나노엘리베이터는 한쪽 끝이 연결돼 있는 세개의 막대기에 역시 한쪽 끝이 서로 붙어있는 세개의 고리가 걸려있는 구조다. 화학적 조건을 변환시키면 세개의 고리, 즉 분자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반복적인 운동을 하게 된다.

맨처음 상상속에서 그려보았던 나노로봇과 현재 분자나노과학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실망을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에이, 언제 그런 로봇이 만들어지겠어?”라고 한심하다는듯이 비웃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노로봇 연구 시작 단계

영화에서 나오는 나노로봇은 아마도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허황된 것일지도 모르는 목표를 추구하는 동안 제작된 각 부품들인 나노바이오센서, 나노약물전달시스템, 나노모터 등은 각각의 고유한 영역에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축구공과 똑같이 생긴 나노탄소축구공인 C60, 즉 풀러렌을 발견한 공로로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리차드 스몰리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만약 한 과학자가 어떤 일에 대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도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틀린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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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인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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