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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초석에 스며든 지혜

기둥과 떨어뜨려 지진 대비

전통건축의 기초가 되는 기단과 초석은 단순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다양한 건축학적 기능을 띠고 있다. 기둥과 벽면으로 이뤄진 몸통을 받칠뿐 아니라 건축물에 미치는 과도한 힘을 효과적으로 분산한다. 자연과 가장 가깝다는 전통가옥에 숨어 있는 조상의 슬기를 알아보자.

 

전통건축의 기초가 되는 기 단은 건물을 지탱할뿐 아니 라 건축물에 미치는 수직∙ 수평의 힘을 효과적으로 분 산한다.



한국의 건축은 흔히 자연과 하나되는 집으로 평가된다. 집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가 흙과 나무, 돌 같은 천연적인 것 일뿐 아니라 가공법에서도 최대한 원재료가 갖는 물리적 성질을 그대로 살리기 때문이다.

전통건축의 기단과 초석은 이런 자연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전통건축의 외관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늘과 만나는 지붕면을 상단이라 하고 기둥 및 벽면으로 이뤄진 몸통부를 중단이라 한다. 하단은 몸통이 땅과 만나는 부분에 위치한 기단부를 가리킨다.

기단을 구성하는 주재료는 역시 흙이다. 흙을 단단하게 다지면서 쌓아올려 주변의 바닥보다 조금 높이 올리는 것이 기단의 기본이다. 이를 ‘판축’이라고 하며 고대 중국의 주나라 유적지에서도 발견됐으니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됐다. 우리나라 풍납토성의 기단 역시 판축이다.


지름 2-3cm 막대기로 다져올린 흙더미

흙을 다져 쌓아올리면 대단히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정교한 판축의 경우, 그 땅을 다지는데 사용한 막대모양의 기구인 ‘공이’의 지름이 겨우 2-3cm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돼 오랜 시간동안 다져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판축을 보강하기 위해 사방으로 돌을 쌓아 마감한 것이 석축기단이다. 석축기단은 삼국시대 이래의 많은 유적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기단으로 쌓은 흙더미가 무너지기 가장 쉬운 부분은 가장자리다. 이 가장자리를 석재 또는 벽돌으로 보강하면 훨씬 더 튼튼한 기단부를 만들 수 있다. 기둥의 중간이 볼록한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안양루 앞의 석축은 통일신라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역시 같은 시기에 만든 불국사의 석축기단과 함께 우리나라 석축기단의 백미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기단은 왜 만들까. 인류 최초의 집은 땅을 조금 파고 바닥을 다져 그 위에 허름한 지붕을 덮은 움집이었다. 움집은 인공의 노력이 최소로 들어간, 아직 몸통부와 지붕이 분리되지 않은 초보적 건축 형태지만 그런대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다만 지면의 습기와 해충이 그대로 집 내부로 스며드는 것이 문제였고, 햇볕을 충분히 실내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집은 점점 땅위로 올라오게 됐으며 이 과정에서 기단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지만 기단의 역할은 단순히 집을 들어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좀더 사려깊은 배려가 기단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전통건축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각각의 기둥이고, 이 기둥들은 상부에 보와 도리, 대공과 서까래 등의 연결부재에 의해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기단부와 몸통부는 서로를 묶어주는 장치없이 떨어져 있다. 몸통을 이루는 기둥은 ‘초석’이라는 돌덩이 위에 사뿐히 올려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강물이 범람할 때 집이 둥둥 떠내려가는 기록사진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초석과 몸통이 떨어지게 만든 이유는 땅에서 발생하는 흔들림이 집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집 구조를 결정하는 힘에는 크게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의 두가지 힘이 있다. 수직방향의 힘은 초석 위에 기둥을 바로 세워놓으면 충분하고, 수평방향의 힘은 두부분을 떨어뜨려놓음으로써 해결한 것이다. 수평방향의 힘 중 대표적인 것이 지진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땅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데, 이때 집이 땅과 바로 붙어있으면 그 흔들림이 그대로 집 전체로 전달돼 위험하다. 하지만 전통가옥은 초석을 경계로 땅과 집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땅이 어느 정도 흔들려도 집 전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아이솔레이션’(isolation) 공법은 현대 건축기술 중에 지진을 대비한 내진공법의 기본이 되는 기술이다.


생명체 성질 띠는 지속가능한 건축

비단 지진뿐 아니라 수직방향의 힘에 대해서도 이런 분리는 유리하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힘이 계속되면 기둥의 아랫부분이 벌어지거나 휘어지는 변형이 생긴다. 하지만 기둥과 초석을 분리해놓으면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경우보다 힘을 분산하는데 효과적이다.

흔히 한옥을 못 하나 쓰지 않은 신비로운 구조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지나친 주장이다. 하지만 한옥의 대부분 접합부위는 나무부재끼리의 짜맞춤으로 처리했고, 이 부분은 현대의 구조공학으로 얘기하면 에너지 흡수장치로서 기능한다. 이 때문에 한옥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법이 없다. 힘이 들면 힘이 드는데로 조금씩 찌그러지고 휘어지며 힘들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러면 사용자는 변형되는 부분을 수선해가며 오랜 기간 건물을 사용할 수 있다.

한옥이 가장 자연과 비슷하다는 말은 어쩌면 한옥이 갖는 이같은‘생명체’의 성질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환경친화적’이거나‘지속가능한’건축이 있다면 바로 한옥일 것이다.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봉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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