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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첨단 나노기술로 웰빙의약품 만든다

나노약물전달시스템 연구 활발

 

나노입자로 운반된 약물이 세포에 침투한 모습. 세포막(녹색) 안 세포질에 약물(빨간색)이 분포돼 있다. 중간의 파란색은 핵.


우리는 아플 때 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맞거나 약을 처방받는다. 그러나 우리 몸에 들어간 약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건강을 회복시키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약먹는 것을 몹시 싫어했던 필자는 이틀치 약을 한번에 먹고 몹시 고생한 기억도 있다. 하물며 주사 맞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만성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매일 한두차례씩 평생 주사를 맞아야 된다. 필자는 소아당뇨로 어릴 적부터 맞아온 일회용 주사바늘을 자기 창고에 가득 쌓아 둔 15세 소년의 이야기를 3년 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카메라기자 앞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소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투여가 불가피하지만, 부작용이나 불편이 만만치 않은 것은 현재 쓰이는 약물전달시스템(DDS, Drug Delivery System)의 한계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부작용과 불편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약물전달시스템을 개발하는 실마리를 나노과학에서 찾고 있다. 나노약물전달시스템이 어떻게 웰빙의약품을 만들어주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상적인 약물이 갖춰야할 조건을 3가지 들어보자. 첫째로, 약물이 우리 몸에서 필요한 기간동안 적당한 양의 농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약물이 서서히 방출돼야 한다. 반면 현재의 복용법은 투여직후에는 필요이상 약물농도가 많다가 시간이 지나면 기준이하로 떨어지는 비효율성을 안고 있다. 몸에 들어간 약물이 간에서 분해되거나 소변을 통해 배설되기 때문이다. 향수를 뿌렸을 때 처음엔 향이 강하다가 곧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로, 우리가 아플 때나 몸에 이상이 있을 때만 약이 공급돼야 한다. 우리 몸은 필요할 때만 반응하는 자극-반응의 자동적인 체계다. 예를 들어 체내에 포도당농도가 높을 때 이를 제거하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된다. 즉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다. 현재 당뇨병 환자들은 수시로 혈당치를 검사해 주사를 놓지만 종종 검사를 잊어버리거나 때를 놓치기 일쑤다.

셋째로, 이상이 있는 조직이나 세포로만 약물이 전달될 수 있으면, 건강한 부위에 약이 작용해 정상조직이 손상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환자의 경우, 암조직이나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방법이 있으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암으로 화학요법을 받는 환자들의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것도 아직까지 이런 방법을 찾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나노기술이 어떻게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청사진은 이미 마련돼 있다. 수년 전부터 이상적인 의약전달시스템으로 불리고 있는 ‘나노로봇’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보통 때는 세포처럼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가 병소를 발견하면 전력을 다해 접근한 후에 직접 공격하거나 적당량의 약물을 분사해 치료하는 나노로봇의 활약상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노로봇의 등장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병소를 발견하는 바이오센서와 우리 몸에서 이물질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위장방법, 적당량의 약물을 방출할 수 있는 나노펌프 등이 먼저 개발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나노로봇 개발에 기초가 될 나노약물전달시스템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먼저 필자가 10여년 동안 연구해오고 있는 수화젤을 이용한 약물전달시스템이다. 이 경우 주사기로 약물을 한번만 찔러 넣으면 해당 부위에서 오랫동안 약효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수화젤은 흔히 먹는 두부나 도토리묵을 연상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쓰이는 수화젤은 일반상식과는 반대되는 특이한 성질을 보인다. 즉 저온에서는 물 같은 액체이다가 온도가 올라가면 젤로 엉기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설탕처럼 물에 작 녹는 분자는 친수성이라고 부르는 반면 지방산처럼 물에 잘 녹지 않는 분자는 소수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화학자들은 친수성 부분과 소수성 부분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고분자를 만들 수 있다. 이들을 물에 녹이면 수십-수백개가 서로 모여 지름이 5-1백nm인 공같이 생긴 나노입자를 만드는데 이를 미셀(micelle)이라 부른다. 이때 온도를 올려주면 미셀 표면의 소수성이 증가해 서로 엉기면서 젤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이런 특성을 지닌 고분자가 어떻게 약물전달시스템에 활용될까.

저온에서 약물을 고분자 수용액에 섞고 피하주사로 투여하면 주사액은 따뜻한 피하에서 젤로 바뀐다. 그 결과 젤속에 갇힌 약물이 서서히 방출하게 된다. 동물실험 결과 이렇게 투여된 약물은 한달 이상 동안 서서히 방출됐으며 젤 역시 서서히 작아졌다. 고분자가 인체에 무해한 생분해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수화젤은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데도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골이 파괴된 부위에 연골세포를 분산시킨 액을 투여하면 액이 굳으면서 빈 공간을 메운다. 그뒤 세포가 수화젤에서 자라면서 결국 조직이 재생됨이 동물실험으로 확인됐다. 외과적인 수술 없이 주사만으로 손상된 조직을 되살리는 세포치료법인 셈이다.

레이더를 피해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정찰하거나 폭격하는 스텔스기. 이와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약물전달시스템이 있다. 스텔스 리포솜(stealth liposome)이 그것이다. 지름이 50-1백50nm인 리포솜은 세포막 같은 이중막 구조를 지닌 나노구조체인데 약물운반체로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암제를 실은 리포솜은 암세포 속으로 들어가 터지면서 약물을 방출한다. 약물을 리포솜 안에 넣는 방법은 이미 많이 개발돼 있다.
 

수화젤을 이용한 약물전달시스템^저온에서 약물을 나노입자 수용액에 섞어 주사하면(왼쪽) 따뜻한 피하에서 나노입자가 엉겨 젤로 바뀌면서 약물이 서서히 방출된다(오른쪽).


스텔스기처럼 암세포 공격

그러나 문제는 우리 몸의 방어체계다. 리포솜이 암세포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를 이물질로 인식한 포식세포가 먼저 포획하기 때문이다. 스텔스 리포솜의 표면에는 포식세포가 자신을 이물질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스텔스 분자인 PEG가 붙어 있다. 꼬불꼬불한 실처럼 생긴 PEG는 포식세포가 침입자를 조사하기 위해 보낸 전령이 리포솜 표면에 도달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미국의 DDS개발회사인 알자(ALZA)는 항암제 독소루비신을 실은 스텔스 리포솜 제제를 개발해 1995년 판매허가를 받았다. 그뒤 몇몇 스텔스 리포솜 약품이 나왔고 현재 많은 수가 임상시험 중이다.

최근에는 PEG분자 중 일부에 목표가 되는 세포표면의 항원을 인식할 수 있는 항체를 붙인 스텔스 면역리포솜(imunoliposome) 연구가 한창이다. 즉 인체의 방어체계를 피하는 스텔스 기능에 목표 지점만을 공격하는 타겟팅 기능을 더해 효율은 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려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법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데도 나노약물전달시스템이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유전병을 비롯해 많은 질병의 경우,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정상 DNA를 세포에 도입하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문제는 이 DNA가 어떻게 세포막 또는 세포내 핵막을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염색체가 있는 핵까지 DNA가 도달해야 거기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체막은 친수성과 소수성으로 이뤄진 인지질 분자가 두겹으로 배열된 이중막 구조로 막 중간 중간에 단백질들이 박혀있다. 그런데 DNA는 분자량이 워낙 크고, 또한 음전하를 띠고 있어 이 막을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DNA가 핵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전달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연구자들은 양전하를 띤 고분자를 이용해 DNA를 중화시킨 후에 나노입자로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때 고분자에 여러 센서를 부착하면 한층 고차원적인 약물전달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있다. 즉 타겟이 되는 세포표면을 인식하는 부분을 붙이고 핵속으로 진입한 후에는 입자가 핵표면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도 도입하고 있다.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앞으로 분자설계기술을 바탕으로 더욱 많은 아이디어가 약물전달시스템에 등장할 것이다. 그 결과 언젠가는 꿈의 약물전달시스템인 나노로봇이 실현될 것이고, 이는 질병치료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이 분야에 도전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이 ‘본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게 노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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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병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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