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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다크나이트 라이즈 : 배트맨 다시 일어서다



배트맨 앞에 최후의 악당이 나타났다. 강력한 육체적 힘뿐만 아니라 단호한 결단력과 효율적인 전략을 두루 갖춘 악당이다. 악당은 핵융합로를 개조한 중성자탄으로 고담시를 위협한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배트맨은 ‘더 배트’를 타고 고담시의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4년 만에 돌아온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과학으로 들여다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리부트’한 배트맨 시리즈의 최종편이 7월 19일 개봉했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압도적인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다. 악당 조커와 치열한 한 판을 벌였던 ‘다크나이트’ 이후 4년만이다. 그 사이 고담시는 8년이 지났다.

세월의 힘에 우리의 영웅도 녹슬었다.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거동할 수 있는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모습을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독자는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최강의 적이 나타났다. 그 이름은 바로 ‘베인’. 더 강력한 적을 막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할 것이다. 배트맨의 과학자 폭스는 새로운 탈것 ‘더 배트’를 준비했다. 더 배트는 시가지 공중전을 목적으로 설계된 무장비행체다.
 

 
‘더 배트’, 날 수 있을까

공개된 예고편 중 텀블러(배트 카)를 닮은 검은색 비행체가 고담시 하늘을 나는 장면이 있다. 이 비행체의 정체가 바로 ‘더 배트’. 더 배트에는 기관총은 물론 로켓런처가 장착돼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은 더 배트를 타고 고담시의 하늘을 장악한다. 그런데 더 배트는 얼핏 봐서는 텀블러를 하늘에 띄워놓은 형상이다. 더 배트, 과연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날 수 있습니다.”

김종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의 대답이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더 배트의 사진을 본 김 교수는 이 비행체가 개념적으로 충분히 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김 교수의 대답이 처음부터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첫 눈에 보이는 더 배트의 엔진은 기체 앞쪽의 덕티드팬 엔진 2개가 전부다. 덕티드팬 엔진이란 프로펠러를 실린더 안에 가둔 형태의 엔진이다. 프로펠러의 길이가 짧은 대신 실린더가 추진력 손실을 막아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추진력이 세도 더 배트가 하늘을 날긴 힘들다. 보통 비행기와 달리 더 배트에는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날개 없이 엔진만으로 비행하려면 틸트로터 비행기처럼 엔진 방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 속 더 배트의 엔진은 고정된 형태다.

그런데 수직 방향으로 더 배트를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다른 엔진이 숨어있다면 어떨까.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더 배트의 기체 아래에는 수평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프로펠러가 달려있다. 더 배트는 하단의 프로펠러로 기체를 위로 띄우고 전면의 덕티드팬 엔진으로 전진하는 비행체였던 것. 김 교수가 더 배트가 개념적으로 날 수 있다고 설명한 것도 기체 하단에 숨은 프로펠러를 발견하고 나서다.

“기체가 가볍고, 기체 아래 프로펠러의 추진력만 충분하다면 더 배트는 날 수 있다”

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폭스 박사는 브루스 웨인에게 ‘더 배트’를 빌딩 숲을 누비도록 만든 비행체라 소개했다. 그렇다면 더 배트는 미래의 시가지 공중전을 책임질 기체의 디자인이라 봐도 손색이 없을까.

김 교수는 더 배트의 공기역학적 측면을 몇 가지 지적했다. 먼저 뭉뚝한 기체 형태가 문제다. 빠른 속도를 내려면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기체가 유선형일수록 유리하다. 김교수는 기체 하단에 달린 프로펠러의 위치도 지적했다.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기체 아래쪽으로 바람을 쏟아내려면 많은 양의 공기를 빨아들일 위쪽의 텅 빈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더 배트는 하단 프로펠러 위에 바로 기체가 있어 불리할 수 있다.

핵융합로로 ‘중성자탄’ 만들 수 있을까

웨인 그룹(브루스 웨인 소유의 기업)은 새로운 청정에너지원 개발을 위해 고담시 강 아래에서 핵융합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악당 베인은 핵융합로를 탈취하고 러시아의 핵물리학자에게 중성자탄으로 개조하게 만든다. 중성자탄이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에서 발생하는 열 폭풍 대신 고속의 중성자로 인명을 살상하는 핵무기다. 실제로 핵융합로를 중성자탄으로 개조할 수 있을까.

임창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자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그럴 가능성은 0%”라고 말했다. 폭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제어할 수 없는 ‘폭주’ 상태가 돼야 한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임 연구원의 설명이다.

현재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핵융합 발전 방식은 자기장을 이용한 ‘자기 밀폐방식’과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 밀폐방식’이 있다. 임 연구원은 “영화에 나온 핵융합로는 챔버 크기로 볼 때 관성밀폐방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핵융합로는 지름 1.5m 정도의 구 형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관성 밀폐방식 발전을 연구하는 데 쓰는 챔버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관성 밀폐방식이란 단단한 챔버 안에 핵연료가 들어 있는 캡슐을 넣고 고에너지 레이저를 쏴 폭발시키는 방식이다. 관성 밀폐방식은 폭주를 일으킬 수 없다. 제어봉으로 속도를 제어해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력 발전과 달리 외부에서 핵연료를 공급해주지 않거나, 레이저에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관성 밀폐방식의 핵융합로는 그 순간 멈춘다(과학동아 2012년 5월호 ‘초강력 레이저 쏴 인공태양 밝힌다’ 기사 참조).

자기 밀폐방식이라 해도 핵융합로가 ‘폭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면 자기 밀폐방식의 핵융합로도 멈추기 때문이다. 핵융합로를 중성자탄으로 만들려는 베인의 계략은 애당초 과학적으로 불가능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관성밀폐방식 발전을 연구하는 데 쓰는 타깃 챔버. 영화에 등장하는 핵융합로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영화 속 핵융합로의 모습은 직접 영화를 보며 확인해보자.]



[만화책 ‘배트맨 나이트폴’의 표지. 베인이 무릎으로 배트맨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있다.]

척추 부러진 배트맨, 5개월 만에 재활 가능할까

베인과의 결투에서 패한 배트맨이 쓰러졌다. 베인은 배트맨을 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우드드드득!”

베인의 무릎에 찍힌 배트맨의 허리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고,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영화 중반부, 허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배트맨은 고개만 간신히 움직이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배트맨이 이대로 옴짝달싹 못하는 채로 영화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 배트맨은 손상된 허리뼈를 맞추고 5개월 동안의 재활훈련 끝에 평소의 움직임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정말 가능할까.

정호석 서울 척병원 원장은 “배트맨의 척추 손상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재활치료만으로 낫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단, 정 원장은 일반인이었다면 수술을 권해야하는 상황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심각한 허리골절이 수술 없이 나을 가능성은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마비가 올 만큼 신경이 압박당했을 경우가 그렇다.

영화 속 한 인물은 브루스에게 “다시 움직이려면 튀어나온 뼈를 다시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브루스는 뼈를 맞추기 전까지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과연 브루스의 허리 부상은 어느 정도로 심각했던 것일까.

정 원장은 “뼈가 튀어나올 정도라면 심각한 골절에 해당하며, 또 사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는 것은 튀어나온 척추뼈가 척수(척추 내 신경다발)를 압박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 원장은 “배트맨이 다리뿐만 아니라 팔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옥의 티”라고 지적했다. 허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팔까지 마비가 오려면 허리가 아니라 경추(목의 척추 뼈)에 손상을 입어야만 한다. 다만 재활을 5개월만에 해낼 가능성에 대해 정 원장은 “배트맨은 일반인보다 척추 뼈 주변 근육이 발달했을 테니 회복속도도 빨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최종편의 제목은 ‘다크나이트 라이즈(rises)’였다. 허리와 자존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배트맨이 다시 일어나는(rises) 것에 방점을 찍은 감독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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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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