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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터넷 또다른 나를 만들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이버 세계의 개인 심리

 

인터넷 또다른 나를 만들다.


마음은 곧 개인의 정체성을 뜻한다.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개인에게 있어 결코 변하지 않는 존재인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마음이 다양한 상태로 표현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병리적 행동이었다. ‘정신적 해리’ 와 유사한 상태, 즉 ‘다중인격’ (multiple personality)은 이런 마음의 일탈행위를 의미한다. 정체성(identity)을 심리학의 주요 개념으로 처음 정리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은 ‘동일성과 연속성을 지닌 주관적 감각’ 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마음은 이처럼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못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아바타’ 처럼 실존하는 자신과 다른 디지털 이미지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과장된 행동이나 극단적인 일탈행동 역시 그 공간에서 더 이상 마음이 하나의 고정된 모습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사이버 공간이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폭탄’ 이나 ‘무법자’ ‘군주’ ‘범죄자’ 라는 아이디는 자신의 정체성이 사이버 공간에서 새롭게 재구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심리는 현실세계와 사이버 공간에서 각기 다른 나를 갖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현실에서는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한 집단의 리더나 동호회의 카리스마 넘치는 운영자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현실 공간에서 소심했던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이 가진 새로운 면을 찾게 되면서 결국 현실의 자아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사이버 공간의 심리가 현실세계의 마음을 대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도 현실세계의 자기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신에 더욱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더 많은 시간을 사이버 공간에 머물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하나의 몸안에 여러개의 마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근대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가능성을 보고 ‘지킬박사와 하이드’ 와 같은 정신분열을 떠올린다. 두렵고 불안한 심리 상황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심리 반응은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만드는 또다른 마음의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이 점점더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인간은 현실세계와 비슷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또다른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 이런 경험이 불안감을 부르지만 대개의 네티즌들은 하나의 고정적인 실체가 아닌 이미지의 형태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다.

정체성은 이미지다
 

‘이브의 세 얼굴’ 은 다중인격을 대중에게 처음 인식시킨 영화였다. 주인공 제인은 이브화이트와 이브블랙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진 인물. 사진은 이를 주제로 한 미국의 현대화가 손야 파즈 작.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은 다양한 ‘이미지’ 로 드러난다. 마음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며 그 모습도 가지가지다. 이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또 지나칠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쉽게 한다. 현실세계에서 나타내지 못한 자신의 감정이나 억제해 왔던 욕구를 쉽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를 맺기도 한다. 물론 거리감과 익명성을 보장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아주 쉽게 인간관계를 맺는다. 메신저나 대화실, 게시판을 통해 현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기 표현이나 욕구 충족, 관계 맺기는 모두 이미지 조작을 통해 이뤄진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은 일종의 이미지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때문에 자기 맘대로 자아를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또다른 정체성을 만들기도 쉽다. 이것은 마치 벽에 비친 그림자가 사람 마음에 따라 새나 동물, 또는 괴물의 형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심리효과를 유발한다. 물론 이런 심리는 현실 세계에서 마음을 물질로 전환시켜 생각하려는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체성을 ‘다중정체성’ (multiple identity)으로 표현한다. 이는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또 이를 통해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와 유사하다. 즉 이미지로 표현된 마음이 자신과 거울 안에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는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가 어렵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는 이론이다.

다중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종종 이 가상공간에서 개인은 캐릭터를 자신과 동일한 존재로 놓을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더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잘 키워 놓은 캐릭터를 엄청난 값으로 사고팔기도 하고, 억만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절대 팔지 않기도 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자신의 무기나 갑옷, 사냥개에 실물 이상의 가치를 두는 현상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다중정체성이 드러나는 또다른 사례는 채팅이나 게시판에서의 성 역할 바꾸기다. 우리는 게시판이나 채팅에서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행세하다 들통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이런 현상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변신이 현실에 비해 좀더 쉽고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실체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화면에 나타난 하나의 이미지라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혼자 꾸는 꿈은 백일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꾸는 꿈은 현실이다’ 라는 말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을수록 현실의 일부가 돼버린다. 여럿이 받아들이면 현실이고, 혼자만이 경험하면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사이버 공간에 올라간 한줄의 메시지가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이는 촛불시위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연히 올라간 사진 한장이 얼짱, 몸짱 열풍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나타니기도 한다.
 

앤디워홀은 마릴린 몬로와 자신의 얼굴을 복제해냄으로서 다중정체성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이버 공간, 정체성 연구의 시험무대
 

사이버 공간에 등장한 수많은 또다른 ‘나’ 는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존재하는 방식인 셈이다.


한편 이미지로 표현된 정체성은 집단 심리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지는 쉽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공유되기 쉽다는 얘기다. 일단 사이버 공간에서 생긴 공감대는 현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다. 종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집단 따돌림이나 편싸움이 현실보다 더 심한 이유도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이미지이기에 공유하기 쉽고, 일단 공유되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결집력은 어디서 나올까. 개인이 사이버 공간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호회나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그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커뮤니티는 집단의 원칙과 문화에 개인이 종속되는 모양새를 띤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유지되는 조건은 이런 집단의 공동 목표가 아니라 개개인의 관심사와 심리가 집단 안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공유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런 이유에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에 관심 있느냐에 초점이 모아진다. 공통된 주제나 관심이 바로 자신이며 동시에 집단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처음엔 동호회 일이 자기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점차 다른 사람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이 싹튼다.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적 속성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런 집단정체성은 개인에게는 개별적인 경험일 뿐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 활동이 현실세계보다 훨씬 격렬한 것도 집단심리가 각자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이버 공간은 개인과 집단 정체성의 실험무대로 불린다. 상황에 따라 대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달라진다. 실제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은 현실세계 또는 근대사회에서 가정했던 마음과는 분명 다르다. 마음은 하나지만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 스스로 진화한다. 사이버 공간에 등장한 수많은 또다른 ‘나’ 는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존재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런 변화를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 세계에서 사이버 공간의 또다른 ‘나’ 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는 일관되고 단일한 모습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둘러싼 현실과 가상 공간의 논란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이버 공간에도 왕따는 있다

지난 5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다른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던 20대가 투신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지난 2월에는 왕따 동영상 사건에 시달리던 한 학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사이버 시대에도 엄연히 왕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의 왕따를 생산하는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익명성 때문이라는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일부 학자들은 군중심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몇가지 실험이 실시됐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사람들의 동조성향이 얼마나 일어나는가를 실험을 통해 알아봤다. 그는 바람잡이 4명을 일반 피험자들과 함께 섞은 뒤 A부터 C까지 이름이 붙어진 3개의 선이 있는 카드를 보여줬다. 그리고 3장의 카드에 그려진 선의 길이와 같은 선을 보여줬다. 그리고 잘못된 대답을 하도록 약속된 바람잡이 4명부터 일반 피험자의 순서대로 대답하게 했다. 그러자 피험자들의 3분의 1이상이 잘못 대답한 집단의 판단에 따랐다. 집단을 따라가기 위해 정상적인 자신의 감각 경험을 부정한 것이다.

30년뒤 연구자들은 인터넷과 유사한 환경에서 애쉬와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5명의 피험자들에게 컴퓨터가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어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볼 수 있다고 얘기했다. 물론 그 네트워크는 실제 연결돼 있지 않은 가짜였다. 실험 결과 뻔히 잘못된 사실을 알면서도 잘못된 답을 들은 뒤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틀린 답을 제시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현상은 인터넷 상에서 얼마든지 여론조작과 왕따, 집단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이런 군중심리는 정서적 감정이 직접 표현되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원인 제공자 대신 좀더 용납될 수 있는 다른 것에 방출해 버리는 감정전이(transference)현상과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친노반노 논쟁’ ‘안티조선 논란’ 도 이같은 심리적 요인이 강하게 개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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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황상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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