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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재미가 두뇌를 바꾼다

몰입·집중·경쟁의 게임 심리학

 

몰입·집중·경쟁의 게임 심리학


최근 정보통신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인구 3천만명 중 54.1%가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 인구 2명당 1명꼴로 인터넷에서 게임을 한다는 얘기다. 이는 게임을 하는 행위가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게임이란 가상공간의 등장이 일상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증거다. 게임은 현실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경험을 인간에게 안겨주면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은 단순한 놀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은 나쁜 심리의 산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중독, 사행심리 등 사회병리적인 부작용만이 부각됐다. TV나 영화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매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이나 외설, 지나친 몰입과 중독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다.

실제로 네트워크와 결합한 게임은 다양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내거나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게이머들을 더욱 몰입시켰다. 게임 속 세상의 또다른 자아인 아바타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게임은 더이상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됐다. 아이템 거래와 구매를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들은 게임을 불필요한 ‘악’으로 매도했다. 일부 정신병리학자들도 이에 편승해 게임을 통한 대리만족은 중독증상을 유발하고 동시에 생활에 장애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당당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PC방을 중심으로 상업적으로 확산된 인터넷 환경에서 게임은 그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8년에 소개된 스타크래프트와 그에 뒤이은 국산 게임 리니지의 확산으로 프로게임리그가 결성되고 게임과 관련된 교육기관과 게임을 가르치는 사설기관까지 등장할 정도가 됐다.

여러 부정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이처럼 게임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부정적인 점만 있는 것일까. 최근 들어 게임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게임을 둘러싼 여러 긍정적인 요소, 특히 심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일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신 발달에 도움 주는 게임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당당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장소와 시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뭘까. 장르마다 다르겠지만 게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긍정적 효과를 살펴보자.

사실 게임과 게임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긍적적 효과는 교육과 심리치료, 폭력방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확인돼왔다. 이 중 정신정화효과(catharsis effect)이론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접하더라도 공격성에 대리 만족을 충족시켜 오히려 공격행위를 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폭력적, 공격적인 게임이 분노나 좌절감, 공격성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얘기다.

실제 미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1백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게임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도피나 환상, 집단참여 욕구가 게임을 통해 풀리며, 여기에 투자한 시간과 욕구충족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증명한 연구였다. 게임이 현실 도피욕와 고독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첫 연구였다.

게임은 이와 함께 학습 인지발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심리학자 그린필드는 게임을 ‘문화적 도구’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첨단 기술에 좀더 친숙해질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는 또 인간 두뇌와 게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이 과학소설처럼 미래 기술에 대한 예측력과 습득 능력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비디오게임이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운전실습이나 군사훈련에까지 활용되게 한 밑거름이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특정 환경에서 상황 판단 능력과 사고 능력을 키우는 교육적인 요소들이 있음이 증명됐다.

이밖에도 신경생리학쪽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대안을 내놓는 연습이 가능해져 복잡한 사고와 감정 통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아동심리학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학습 장애나 주의력 결핍, 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동들의 치료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학습동기를 부여받고 자기 존중감을 높이는 것과 함께 기억력과 복잡한 사고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보고됐다.

그렇다면 사이버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란 과연 무엇일까. 상당수 심리학자들은 재미란 개인이 어떤 활동에 몰입할 때만 일어나는 최적의 심리현상(optimal experience)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과제의 난이도와 개인의 수행능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일어난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주의집중이 잘 되며, 행위에 푹 빠져 자신을 잊어버리지만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조절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스트레스와 긴장이 해소되면서 난이도에 따라 좀더 도전적인 상황을 즐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문화적 배경이나 직업, 나이, 성에 관계없이 공통된 현상으로 나타난다.

재미 가늠해 개발된 게임
 

지난 8월 한달 동안 가나아트센터에서는 ‘My name is Game’ 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어린 시절 흙바닥에서 즐겨하던 놀이를 디지털화한 김영미 작품


재미있는 게임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게임 장르와 게임을 즐기는 하드웨어의 특성에 따라 게이머가 느끼는 재미는 달라진다. 전략시뮬레이션, 롤플레잉, 액션, 단순한 슈팅게임까지 장르마다 묘미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 게임들 사이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게임 안에서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따라 재미의 정도가 달라진다. 긴장감과 불확실성이 크면 클수록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게이머가 적극적으로 게임 속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임에서는 몰입의 정도가 더하다. 실생활을 하는 것처럼 가상의 주인공을 조종하는 ‘심즈’ (Sims)나 가상 애완동물 ‘다마코치’ 가 그런 사례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을 게이머의 의도대로 진행할 수 있어 매력이 떨어지지만 승률을 표시해줌으로써 경쟁심을 유발하는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즉 다른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 욕구를 적절히 자극한 것이다. 게임 난이도도 재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누구나 하기 쉬운 게임은 내적 성취동기를 자극하지 못해 싫증을 유발할 뿐이란 점은 상식이다.

현실감의 정도 역시 재미와 관련돼 있다. 인간은 현실적인 제약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 높은 게임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풀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과 흡사하되 똑같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사건이 전개되면 쉽게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최소 수백-수만명 이상 참가해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머드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은 바로 그런 인간 심리에서 착안했다.

게이머 각자의 개인 취향도 재미를 유발하는 한 요소다. 대개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게임이 소설이나 TV, 영화에서처럼 고정된 줄거리가 아니라 게이머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개된다는 뜻이다. 물론 게임 시나리오 내용과 구성 형식은 게임의 재미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밖에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게임 요소들도 재미를 더해준다.

게임 화면을 구성하는 3차원 그래픽은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며, 음향을 통해 실재감과 입체감을 전달한다. 또 다양한 인터페이스는 촉각적인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같은 감각양식을 다양하게 제공할 수만 있다면 게임의 만족도는 크게 올라갈 것이다.

물론 지나친 게임은 인간의 인지 능력에 부하를 초래해 게임 수행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인간이 사이버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모두 재미라는 심리 작용 때문이다. 전략시뮬레이션을 하든 롤플레잉게임을 하든 모두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이버 중독증과 같은 개인의 적응 실패나 사회 병리적 현상과 같은 부정적 측면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게임의 긍정적 요소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기 게임의 성공비결

‘게임은 웹디자인과 서로 다른 쌍곡선을 그린다.’ 웹사이트는 원하는 정보를 쉽게, 게임은 좀더 어렵고 복잡해야 성공이라는 말이다. 게임에 빠져드는 원리는 강화(reinforcement)에서 찾을 수 있다.

강화란 조건형성의 학습에서 자극과 반응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작용이다. 이는 파블로프가 개를 대상으로 한 조건반사(條件反射) 실험에서 쓴 용어. 여러가지 강화 중 게임과 관련된 것이 부분강화다.

부분강화에 대한 사례는 스키너 상자 안에서 쥐가 스위치를 누르면 먹이를 줘서, 그 반응을 촉진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한번 반응이 있은 뒤에 다시 그러한 반응을 일으키도록 자극을 준 것. 그것도 주기적 자극이 아니라 매번 주기를 바꿔 예측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쥐는 원하는 온갖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원하는 먹이를 얻으려 한다. 인간이 게임 도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좀더 어려운 단계로 나가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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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오경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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