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학 연구에서 새로운 발견 하나가 이제까지 학계가 동의했던 그림을 완전히 깨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경우는 뉴스 매체에서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것처럼 흔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기존 지식에 새로운 발견을 추가해 그림을 살짝 고치게 된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조금씩 고치다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작은 인류’다. 이들은 대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고인류학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경향성을 찾는다. 유인원에 가까운 형태에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거나, 두뇌 용량과 함께 몸집이 점점 커가는 식이다. 이에 따르면 두뇌 용량의 증가는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유물을 만들게 해 줬고, 호모 사피엔스 시대에 다양한 문명을 개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향성을 벗어나 이전 고인류보다 더 작은 두뇌와 몸집을 가진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어린아이 크기의 두뇌, 도구와 함께 발견되다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리앙부아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은 특이했다. 성장을 끝마친 성인의 화석이지만, 키가 100cm 정도에 불과했다. 현생인류의 기준으로는 5~6살짜리 어린이 수준이었다. 두뇌 용량은 그보다 더 어린 갓난아기 수준에 불과한 400cm3 정도였다. 다 자란 침팬지의 두뇌 용량과 비슷했다. 현생인류의 두뇌 용량은 1350cm3 정도다.
수만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작은 머리와 몸집의 리앙부아 화석에게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라는 새로운 종명이 생겼다. 기존에 이 정도의 몸집과 머리 크기를 가진 성인 고인류가 발견된 것은 300만~4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등장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밖에 없었기에 고인류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플로레스섬에서는 100만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함께 발견된다. 이 흔적을 만든 주인공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였을까. 이들은 갓난아기 남짓한, 침팬지 정도의 머리 크기로 석기를 만들어 쓸 수 있었을까.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는 석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침팬지는 돌로 도구를 만들어 쓸 뿐만 아니라 석기 제작 방법을 대대로 전승시킨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발견된 플로레스섬에서는 꾸준히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리앙부아 동굴에서 조금 떨어진 마타멩게 유적에서는 역시 작은 몸집을 가진 고인류와 석기가 함께 발견됐다. 작은 몸집의 인류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만이 아니었다. 다만 마타멩게에서 발견된 고인류의 두개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지닌 400cm³의 작은 두뇌가 과연 예외적이었는지 또는 새로운 화석종의 특징인지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수만 년 전 남겨진 흔적은 석기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발견된 4만 4000년 전의 벽화에는 동물과 함께 반인반수가 그려져 있다. 술라웨시섬 역시 플로레스섬처럼 해수면이 가장 낮았던 시기에도 섬으로 남아있었던 곳이다. 고인류가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배를 타고 갔을 것이다.
고인류학계에서는 열띤 논쟁이 계속됐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작은 몸집과 두뇌 용량을 섬에서 고립돼 살면서 몸이 작아지는 현상인 섬 왜소증(island dwarfism)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배경이 어떻든 고인류학의 관점에서 이들이 작은 머리로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매장문화, 작은 두뇌로 가능?
또 다른 작은 인류는 2013년 남아프리카의 디날레디 동굴에서 발견됐다. 엎드려야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굴 안에서 수천 점의 고인류 화석이 나왔다. 이렇게 깊은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은 매장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안전모와 레일로 중무장하고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가는 연구팀에게는 ‘지하의 우주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대부분의 고인류 화석 발굴팀과는 달리 이 팀은 주로 박사 학위를 최근에 받은 젊은 여성학자들로 이뤄졌다.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자격에 걸맞았던 이들이 목숨을 걸고 꺼내온 고인류 화석에게는 호모 날레디(Homo naledi)라는 새로운 종명이 붙여졌다.
호모 날레디의 몸집은 작은 편이다. 150cm에 살짝 못 미치는 키는 현생 인류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몸집이다. 그러나 500cm³ 남짓한 호모 날레디의 두뇌 용량은 현생 인류에서 보기 어렵다. 특히나 이 정도의 몸집과 두뇌 용량이 조합을 이루는 경우는 없다. 비슷한 수준의 두뇌 용량을 가졌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는 키가 100cm 정도였다. 호모 날레디의 연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80만 년 전에서 20만 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 이즈음은 현생인류 수준의 몸집과 900~1200cm³ 크기의 두뇌 용량을 가지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가 존재하던 시기다.
호모 날레디의 가장 큰 의문은 이들이 발견된 흔적이 인위적인 매장의 흔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크기의 두뇌가 동반돼야 한다. 매장 행위는 오랫동안 호모 사피엔스만의 독특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 중 하나인 네안데르탈인이 매장을 했는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을 정도다. 이 같은 매장 행위를 겨우 500cm³의 머리를 가지고 있던 고인류가 해냈을지에 대해 지금도 고인류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쌓여가는 작은 사람, 작은 머리의 흔적
2007년부터 플로레스섬 근처인 필리핀 루손섬 카야오 동굴에서도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두뇌 용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윗니와 발뼈, 손가락뼈, 발가락뼈, 넙다리뼈를 보면 루손섬의 고인류 역시 작은 몸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6만 7000년 전 루손섬에서 살았던 고인류는 2019년 새로운 종 호모 루조넨시스(Homo luzonensis)로 발표됐다. 이들이 새로운 종인지, 아니면 플로레스섬의 고인류와 같은 종인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인지, 아니면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사피엔스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종의 분류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들의 생김새와 행위다. 동남아시아 곳곳의 섬에서 살고 있던 작은 머리와 몸집의 고인류들은 석기를 만들고 벽화를 그려냈을까.
이 질문에 대한 20세기의 답은 결단코 ‘아니다’였다. 벽화를 그리는 것과 같이 고도의 인지 능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특유한, 독특한 행위였다.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 급의 ‘몸과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호모 사피엔스 급의 몸과 머리를 가져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행위를 훨씬 더 작은 몸집과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인류가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21세기의 새로운 발견이다.
작은 몸집과 작은 머리의 고인류는 우리가 여태껏 생각해왔던 인류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다양한 인류를 받아들일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돼있든 아니든 다양한 인류는 불쑥불쑥 등장하면서 깔끔한 화살표와 도표로 정리됐던 호미닌의 역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복잡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20세기에는 500만 년 전에 시작한 인류 계통이, 20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속이 적어도 두뇌 용량에서는 꾸준히 증가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21세기 우리가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호모 속이 보여주는 두뇌 용량의 증가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우리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발견보다도, 새로운 발견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그림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이자 국내 최초의 고인류학자다. 고인류 화석에 감춰진 형태적 변화와 노화, 분류 등을 연구한다. 대중강연과 저서, 유튜브를 통해 고인류학을 주제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shlee@ucr.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