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새로운 정보나 아이콘에 끌려 전혀 엉뚱한 웹사이트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왜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방황할까? 인지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주의’ 에서 찾았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정보들이 존재한다. 볼 것, 들리는 것, 심지어는 여러가지 냄새까지. 인간은 이런 것에서 자신의 현재 상황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이에 근거해 행동한다. 즉 선택이란 과정은 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심리학자들은 선택이란 행위가 적응지능의 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주의는 마음에서 발행해 색이나 크기 같은 특정 자극을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기능 외에도, 외부 자극에 강하게 끌리는 성질을 갖는다. 또 이런 내적 동기와 외부 자극을 적절히 배합하는 기능을 갖기도 한다.
사이버 세계에서 산만해지는 이유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인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의 주의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앞선 예에서 봤듯 인간은 원래 의도를 잊은채 ‘무주의 상태’ 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정오 교수는 이에 대해 인간의 주의가 방랑자처럼 아무 생각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의미에서 ‘방랑적 주의’ (nomadic attentio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특히 이런 주의과정은 우리 마음과 의지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사이버 공간에서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인터넷만 하면 산만해지는 까닭이 주의과정의 특성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의도적인 집중과는 별개로 방랑적 주의가 작용한다는 얘기다. 일상 세계에서는 특정 자극에 주의를 집중하는 동안 다른 자극에 대한 처리를 늦추거나 억제한다. 하지만 무시된 자극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나중에 다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래서 시각적인 처리를 하는 동안에도 방황하거나 오리무중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사이버 세계를 구성하는 웹페이지들은 단지 링크만 돼있고, 각 웹페이지들도 서로 다른 배치와 형식이기 때문에 실세계 만큼 자극 위치 간의 응집력이 거의 없다. 일단 특정 웹페이지에서 나가면 원래의 자극도 사라진다. 그리고 이전 자극은 새로운 페이지와 거의 관련이 없을 수도 있고, 되돌아가기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 웹페이지로 이동하면 눈길을 끄는 새로운 정보 때문에 원래 방문 목적을 망각하곤 한다. 일상세계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러 정보들이 한데 뭉쳐 있는 반면, 사이버 세계는 의미의 연속성이 없는 0과 1만으로 된 웹주소로 연결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상 생활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진 기존의 주의 체계는 사이버 공간에서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이버 세계에 맞는 주의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주의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지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가운데 인간의 주의과정을 파악하는 지표를 찾아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웹에서 어떤 정보를 화면 위 어디에 올리느냐는 웹을 만드는 설계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시각의 문제는 심리학자들이 이미 1백여년전부터 연구해온 분야다. 주의과정을 잘 나타내 주는 지표 중 하나가 눈동자의 움직임이다.
인간은 눈동자를 늘 움직인다. 그림을 볼 때, 책을 읽을 때, 혹은 웹을 탐색하는 도중에도 눈은 끊임없이 활동한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순간 눈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단어나 문장을 읽을 때, 한음절씩 차례로 읽는다고 생각한다. 즉 순서에 따라 눈이 연속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긋듯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안구운동은 일련의 순서를 따르지도 않고 연속적이지도 않다.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인간이 느끼는 눈 움직임과는 다른 두가지 방식의 눈 움직임을 발견했다. ‘안구고정’ 과 ‘도약운동’ 이 그것이다. 안구고정이란 어떤 사물이나 그림, 단어나 어절, 특정 이미지에 눈동자가 잠시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의가 선택적으로 외부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도약운동은 한곳의 안구고정 위치에서 다른 안구고정 위치로 시선이 바뀌는 현상이다. 즉 안구가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현상인데, 바로 이때 주의도 이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형태의 눈 움직임을 측정하면 인간이 무엇에 주의를 집중하고, 주의가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웹사이트를 보는 눈에 적용하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심리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안구추적기(eye tracker)는 이와 같은 안구운동을 감지해 주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심리상태를 연구하는 장비다. 연구자들이 안구추적 장치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 장치가 1초에 약 60회(1회당 0.017초)까지 눈 움직임을 탐지해 순간적인 눈 도약과 눈이 고정된 위치를 측정해내기 때문이다. 눈 움직임이 4-5회 정도(약 0.1초 동안) 고정된다면 안구고정이 일어난 것으로 인식해 주의가 집중된 것으로 판단한다.
과연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에서 눈의 움직임에는 차이가 있을까. 눈 움직임은 사람에 따라, 보는 대상과 의도에 따라 그 패턴이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볼 때 시선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일련의 순서나 규칙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그림 중 많은 정보를 가진 부분에서 안구고정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을 때는 좀 다른 패턴을 보인다. 아주대 심리학과 언어 및 인지과정 실험실이 안구추적기를 이용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책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눈동자가 움직였으며 한 어절의 중간쯤에서 안구고정이 나타났다. 그리고 도약운동은 단어(또는 마디) 단위로 발생한다. 흥미로운 점은 단어들이 쉬우면 안구고정 시간이 짧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 반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은 그 반대였다. 상식적인 얘기같지만 어려운 글을 읽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안구의 움직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이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의력
웹페이지를 탐색하는 시선의 움직임은 매우 복잡하다. 왜냐하면 웹페이지는 많은 이미지와 글, 동영상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의를 끄는 강렬한 광고나 자극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인간의 주의가 특정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이 때문에 새롭거나 독특한 그림,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다른 방식의 주의가 필요해졌다. 이를 효과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바로 안구추적 연구다.
아주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최근 국내 대표적 포털기업의 사용성평가연구팀과 공동으로 사이트 접속자의 안구운동을 추적했다. 웹페이지 화면 구성에 따라 주의가 어떻게 발생하고 변하는지를 알아볼 목적이었다.
연구팀은 광고영역과 로그인영역을 서로 다르게 배치한 디자인을 바라본 눈의 움직임을 추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3가지 디자인을 고안했다. 첫번째는 기존에 서비스된 디자인이었고(01), 두번째는 로그인영역과 검색 영역주변에 광고를 배치한 디자인이었다. 세번째 디자인은 뉴스 정보의 오른쪽에 광고를 배치함으로써 광고에 대한 주의를 유도한 디자인이었다. 연구 결과 3개의 디자인 가운데 로그인영역과 검색영역 주변에 광고를 배치했을 경우 광고에 대한 안구고정이 많이 관찰됨을 알아냈다.
이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주요 목적이 e메일 확인과 정보 검색, 뉴스 검색 순서로 집중돼 있음을 나타낸다. 즉 사용 목적의 우선순위에 따라 안구고정이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뉴스 오른쪽에 광고를 배치하는 이유도 주의가 끝났을 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안구고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이 포털 사이트는 이 연구결과를 디자인에 적용해 클릭수가 최소 2배 이상 늘어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근 프랑스 심리학 연구팀도 이와 유사한 연구를 통해 웹페이지의 화면 구성과 세부 영역의 위치에 따라 안구고정 패턴이 달라진다는 결과를 실제 포털 사이트의 광고 실험을 통해 입증한 바 있다.
이처럼 광고 위치에 따라 안구고정 패턴과 클릭수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웹설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용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화면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의가 눈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은 정설이 됐다. 눈 움직임은 자극에 따라 달라지지만 눈이 머무는 곳에서 주의가 집중된다.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건, 알아차리지 못하건 눈은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반면 웹페이지 탐색 중 전면광고처럼 강제적인 자극에도 마음과 눈은 움직인다. 눈과 마음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의과정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의 상태는 안구운동 추적과 같은 경험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강렬한 이미지가 조급증 부른다
요즘 직장인들 가운데는 인터넷을 많이 하면서 자신이 조급해졌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인터넷 속도가 조금만 느리거나 화면이 늦게 뜨면 금방 짜증이 난다는 것.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를 펴낸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한국인의 조급증의 심각성을 진단했다. 권 교수는 한국인의 조급증, 즉 ‘빨리빨리’ 병은 건강에 극히 해롭다고 진단한다. 마음이 급해지면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고 신경이 예민해져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이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심신까지 지친다. 특히 ‘제2의 뇌’ 라 불리는 위는 탈이 나기 십상이다.
심리학자들은 조급증의 원인을 시각자극에서 찾는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조급증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텔레비전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늘어났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유명 펑크록그룹 버글스의 노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는 조급증 시대의 서막을 알린 셈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 심리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치는 감각이 바로 시각이라고 설명한다. 시각은 복잡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뇌에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현란한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고차원적인 인지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일본 소아과의사회가 최근 발표한 유아 지능 및 행동발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만2세 이하 유아가 TV나 비디오를 많이 보면 언어장애나 대인기피증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일본 소아과학회도 유아가 TV나 비디오를 오래 보면 언어발달이 상당히 느려질 수 있다는 논문을 내놨다. 시각자극이 얼마든지 사고를 질식시킬수 있다는 것. 시선의 집중에 주목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장 강렬한 성감대는 바로 망막이라는 얘기가 그리 틀리지 않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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