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모든 시계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던 사람들은 느지막하게 일어날 것이고, 지각을 일삼던 아이들은 시계가 없어졌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할 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통화를 할 수 없다.
오늘날 시계는 전화나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통신과 컴퓨터 네트워크, 배나 비행기의 운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계의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인류 문명도 더불어 발전해 왔다.
인류의 역사에서 16세기 무렵은 신대륙을 찾아 나섰던 대항해 시대였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여행할 때 배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해와 달, 별의 위치를 관측하는 것이었다. 당시 남북 방향으로 여행할 때는 북극성의 고도를 재면 적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서방향으로 여행할 때는 그런 기준이 없어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시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 런던에서 태양이 머리 위에 왔을 때(남중) 시계를 12시에 맞춘다. 이 시계를 갖고 항해를 하는데 어느날 바다 위 어떤 지점에서 태양이 머리 위에 왔을 때 그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가리켰다. 그러면 그 배는 런던에서 경도로 15。만큼 동쪽에 있는 것이다. 지구가 하루(24시간) 동안에 한바퀴(3백60。)를 돌기 때문에 1시간 차이는 15。만큼 이동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기술로는 항해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의회는 1713년 경도법을 제정하고 경도를 1/2도(거리상으로는 약 55km)까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시계 발명에 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1백수십억원에 이르는 상금을 내걸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시계란 하루에 3초 이내의 정확도를 갖는 것이다.
영국인 목수였던 존 해리슨은 한 평생을 시계 제작에 몰두했다. 그 결과 바람과 파도가 심하고 소금기에 의해 부식이 쉽게 일어나는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4대의 시계를 제작했다. 그의 나이 80세 되던 1773년 그는 자신의 4번째 시계인 H-4가 다섯달 동안에 54초(하루에 약 0.3초)밖에 틀리지 않음이 확인됨에 따라 경도법 제정이후 60년만에 경도상을 수상했다.
해리슨이 만들었던 시계의 작동 원리는 진자 운동이다. 즉 진자가 중력과 동력에 의해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해리슨은 진자가 바다라는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여러 기술을 개발·적용했다. 진자는 온도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 겨울철에는 길이가 짧아져 시계가 빨리 가고(주기의 제곱이 길이에 비례) 여름철에는 길이가 길어져 시계가 느리게 간다. 해리슨은 온도가 변해도 진자의 길이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바이메탈을 개발했다. 그리고 배가 심하게 요동을 쳐도 안정적으로 동작되는 기계적 구조를 발명했다. 그런데 이후 시계의 정확도 혁명은 1900년대 전혀 다른 원리에 바탕을 둔 수정시계에 의해 이뤄졌다.
수정이 갖는 특별한 성질 중에는 수정에 전압을 가하면 일정한 진동수로 진동하는 ‘압전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효과는 물리학자이자 방사선을 발견한 퀴리 부인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발견했다. 이 효과를 이용한 시계가 만들어지면서 그 이전의 가장 좋은 진자시계보다 훨씬 정확한 시계가 등장하게 됐다.
수정시계가 발명됨으로써 20세기 초 가장 큰 과학기술적 문제였던 라디오 방송의 주파수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지구의 자전운동이 불규칙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시계는 이 수정시계이고, 컴퓨터, 휴대폰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자 장비에는 수정시계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런 수정도 단점이 있다. 수정이 나이를 먹으면서 진동수가 점점 느려지고, 온도가 변하면 진동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 더 안정적이고 정확한 시계인 원자시계가 1950년대 발명됐다.
위성과 컴퓨터에 탑재
원자시계에는 세슘원자, 루비듐원자, 수소원자 등을 이용한다. 그런데 오늘날 1초를 정의하는데 사용되는 원자시계는 세슘원자시계인데, 세슘원자가 1초 동안에 약 92억번 진동하는 점을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잰다. 오늘날 상용으로 보급돼 있는 세슘원자시계는 오차가 약 30만년 동안 1초다. 이런 세슘원자시계는 연구소, 통신회사, 인공위성 센터 등과 같이 정확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서 주로 보유하고 있다.
해리슨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배나 비행기는 현재 위치를 알기 위해 시계를 사용한다. 다만 해나 별을 관측하는 대신에 인공위성에서 오는 시간신호를 수신한다는 점이 다르다. 빛이나 전파의 속도는 일정하며 1초에 약 30만km를 진행하므로 전파가 출발지점에서 도착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면 그 사이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전파가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이 1천분의 1초(=1ms)였다면 그 사이의 거리는 3백km이다. 그런데 3대 이상의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타고 오는 시간신호를 동시에 재면 수신자의 현재 위치(경도, 위도, 고도)를 알아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각 인공위성에 탑재돼 있는 시계들이 모두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시계가 1백만분의 1초(=1μs)만큼 틀리다면 위치는 3백m차이가 난다. 영국의회가 경도상으로 내걸었던 위치의 정확도가 55km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인공위성으로 알 수 있는 정확도는 이보다 수백-수천배 이상이다. 좀더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좀더 정확한 원자시계가 필요한 것이다.
GPS(지구측지 위성시스템)는 미국의 인공위성 시스템으로, 지구 주위를 도는 24대의 인공위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위성에는 세슘원자시계를 포함해 2대 이상의 원자시계가 탑재돼 있고, 시간신호를 계속 지상으로 발사한다. 이 신호를 수신하면 배나 비행기, 자동차의 위치를 수십m 이내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이 신호를 장시간 수신한 후 처리하면 어떤 지점의 위치나 거리를 mm 수준까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거리를 재는 측량기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원격탐사, 지진연구, 재난구급, 물류수송, 기상예보, 스포츠, 레저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한편 정보의 바다라고 일컫는 인터넷이 오늘날 같이 번창해진 것도 정확한 시계 덕분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나 전화망에서 송신측과 수신측에는 각각 시계가 있고, 그 시계가 서로 잘 맞아야 혼신이 생기지 않고 정보전달이 제대로 이뤄진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전달하려면 더 좋은 시계가 있어야 한다.
현재 기간통신망(통신망에서 등뼈에 해당하는 제일 중요한 망)에서는 상용 세슘원자시계에서 나오는 신호가 공급되고 있다. 이 원자시계는 약 10만년 동안에 1초의 오차를 갖는데, 통신망이 좀더 개선되려면 주변 장치와 함께 이 원자시계의 성능이 좋아져야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팔거나 돈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할 때 거래를 하는 양측의 시계가 서로 맞지 않는다면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돈을 송금한 시각과 돈을 받은 시각이 서로 틀리면 그로 인해 도난이나 부도 처리와 같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시간이 모두 정확히 일치해야 해킹을 쉽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킹을 당했을 경우에도 누가 어떤 경로로 접근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 시대에도 시계는 여전히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 정확한 원자시계의 개발에는 최근의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 이용되고 있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추와 윌리암 필립스 등이 발견한 ‘레이저 냉각기술’이 바로 그것. 원자에 레이저를 비추면 원자는 온도가 낮아지면서 속도가 느려진다. 이처럼 레이저로 원자의 속도(즉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바로 레이저 냉각기술이다. 이 기술은 3천만년에 1초의 오차를 갖는 원자분수시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원자분수시계는 현재 제일 정확한 시계다.
원자분수시계
레이저 냉각기술로 원자의 속도를 느리게 만든 후 위로 쏘아 올리면 원자들이 마치 분수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속도가 느린 원자는 빠른 원자에 비해 빛이나 전자기파를 지날 때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럴 경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원자는 빛이나 전자파의 상태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갖게 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함으로써 시계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원자분수시계다.
원자분수시계는 프랑스에서 이미 완성돼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될 날을 기다리고 있고, 미국에서도 제작중에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은 2005년경에 완성될 예정인데, 이것이 완성되면 여기에는 6개의 실험실이 건설된다. 그 중 2개의 실험실에는 프랑스와 미국의 원자시계가 설치된다. 이 원자시계를 이용해 상대성 원리 및 물리상수 검증 실험이 수행될 전망이다. 일반상대성원리, 즉 중력이 커지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을 관찰하려고 할 때 비행기에 시계를 싣고 고도를 바꿔가면서 시간이 가는 속도(다른 말로 주파수)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시계로는 그 값이 아주 작기 때문에 관측하기가 어렵다.
또한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되는 원자분수시계는 우주시대를 맞이해 지구 주위를 여행하는 우주선과 지상에 정확한 시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위치측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시계가 필요한데, 원자분수시계는 GPS에 장착된 시계보다 약 1백배 더 우수하다.
한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광펌핑 세슘원자시계, 저속 원자빔 시계, 세슘원자분수 시계를 개발하는 연구를 통해 상용 원자시계보다 10-1백배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차세대 원자시계로 부상하고 있는 빛을 이용하는 광시계는 원자분수시계보다도 10배 이상 더 정확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것에 관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시간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시간을 재는데 사용되는 시계는 과학기술의 극한에 이를 만큼 최첨단의 기술을 구가하며 발전하고 있다. 전화,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 비행기 등 현대 문명의 밑바탕에서 시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시대를 대비해 최고의 정확한 시계가 우주의 실험실에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더 정확한 시계는 더 발전된 미래를 약속할 것이다.
계절 따라 자전속도 다르다
수정시계가 등장하기 전에는 천체를 관측해 시간을 맞췄다. 매일 밤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때 그 별이 보이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별이 관측되는 시간을 보고서 진자시계를 맞췄다. 그런데 수정시계가 나온 후 별이 보이는 시간이 수정시계에서는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원인이 시계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지구는 북극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1년에 15m 정도 움직인다는 것이 원자시계가 발명된 후에 밝혀졌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서도 지구의 움직임이 변하는데, 예를 들면 북반구가 겨울일 때 지구는 좀더 천천히 돈다. 그 이유는 북반구에 대륙과 높은 산이 많이 있는데 겨울철에 산에 눈이 많이 쌓이면 마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벌리고 회전하는 것과 같이 느리게 돌다가 눈이 녹고 나면 팔을 움츠린 것처럼 빨리 돌기 때문이다.
미국 GPS에 대응하는 러시아와 유럽
러시아도 미국의 GPS에 대응되는 GLONASS를 보유하고 있다. GLONASS가 완성되는 경우에는 총 24대의 위성으로 구성되지만, 현재 운용되고 있는 위성 수는 8개 정도다.
GPS나 GLONASS가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러시아가 유사시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가 이 위성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민간이 설치하고 운영하는 갈릴레오 인공위성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갈릴레오는 총 30대의 인공위성으로 이뤄지는데 200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시간의 본질을 파헤친다
01. [시간의 기원] 시간의 시작은 있나?
02. [시간의 물리학]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03. [시간의 역사] 옛날에는 시간약속을 어떻게 했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
04. [시간의 측정] 왜 시계는 정확해져야 하나?
05. [시간과 생체] 우리몸은 어떻게 시간을 알까?
06. [시간의 심리] 연인과의 시간은 왜 빨리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