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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

 

조선 후기에는 휴대할 수 있는 미니 시계를 만들었다. 위쪽이 앙부일구, 아래쪽 둥근 부분은 나침반.


조선 초기 백성들은 지금의 기상청인 서운관의 관리가 치는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알았다. 관리는 물시계를 보고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쳤다. 이 종소리에 따라 한양의 성문도 열리고 닫혔다. 그 후 세종 때 장영실은 일정한 시간마다 자동으로 종을 치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다. 물시계는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원리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한다. 또한 세종 때는 가마솥처럼 오목한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길거리에 설치해 백성들이 시간을 알도록 했다. 조선 후기에는 손목시계처럼 작게 만든 앙부일구를 사람들이 휴대하고 다니기도 했다. 해시계는 해가 움직이면서 변하는 그림자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측정한다. 따라서 한양에 있는 해시계와 강릉에 있는 해시계의 눈금은 동시에 읽으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양과 강릉 하늘에 떠있는 해의 고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을 기준으로 삼아 시간을 측정한 일성정시의, 원과 막대 모양의 틀을 자유롭게 움직여 시간을 읽는 정남일구, 여름에는 앞면에서, 겨울에는 뒷면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현주일구도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다.

현재는 하루가 24시간이지만 조선시대 시계에는 하루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12시로 나눠져 있다. 각 시의 전반부는 초, 후반부는 정으로 2등분했다. 예를 들어 자시는 지금의 밤 11시-새벽 1시에 해당하며 이를 다시 자초와 자정으로 나눈 것이다. 또한 하루를 1백각으로도 나눴다. 1각은 현재 시간으로 14-15분 정도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시계가 과연 정확할까.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복원돼 있는 앙부일구가 미시를 지나 2각쯤을 가리키고 있다. 오후 1시 30분경인 것이다. 그런데 손목시계를 보니 실제로는 2시다. 왜 앙부일구와 손목시계의 시간이 다를까.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 윤용현 연구관은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도를 중심으로 하는 표준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각 나라에서는 그리니치 천문대와 경도 15°만큼 차이가 날 때마다 1시간을 보정한 표준시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시간은 동경 1백35°의 표준시다. 대전은 동경 약 1백27°이므로 표준시와 약 30분 정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앙부일구에서 읽은 시간에 30분을 더해야 현재의 시간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시계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 8권에는 ‘신라 성덕왕 17년(718년) 여름, 6월에 비로소 누각을 만들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 나타난 물시계 제작의 첫 기록이다. 또 1930년 출토된 신라시대 해시계의 파편을 살펴보면 그 제작연대가 647년 전후라고 한다. 이를 통해 신라시대 이전부터 해시계를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시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태양이나 달, 별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보고 대략적인 시간 약속을 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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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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