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값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이런 솔깃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운전자의 습관을 바꾸면 된다. 가속과 감속을 자주 반복하며 속도를 빨리 변화시키는 행동을 자제한다면 우리나라만 계산해도 1년에 수십조 원의 기름값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전국 모든 운전자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재료공학자들은 엔진의 열효율을 높이거나(3월호 ‘초내열성 금속’편 참고) 차체를 가볍게 만들어 에너지 소비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가 이용하는 자동차의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면 사용하는 에너지도 운동에너지 공식(에너지(E)=1/2mv2, m은 질량, v는 속도)에 따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차체가 가벼우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 속도를 더 빨리 높이거나 줄일 수 있다.
민들레 씨앗 위에 금속을 올리다
가벼운 물질을 만드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가령 철판을 사용하는 자동차의 차체를 골판지로 만든다면 차는 정말 가벼워진다. 다만 누가 그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포인트는, 재료가 가벼워진다고 해서 강도 등 다른 중요한 특성들이 저하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금속의 강도는 유지하면서 밀도는 낮추는 대표적인 방법은 속을 텅 비게 만드는 것이다. 2011년,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와 보잉 소속의 휴즈 연구소 토비아스 새들러 박사팀은 니켈을 이용해 초경량 금속 격자를 개발한 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1211649
연구팀이 개발한 금속의 밀도는 0.009g/cm3로 일반 니켈 밀도(8.9g/cm3)의 988분의 1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이 금속을 민들레 씨앗 위에 올려 가벼움을 더욱 강조했다. 연구팀은 니켈 금속을 격자 구조로 만들어 속이 텅텅 비게 만들었다. 놀이터나 철교에서 볼 수 있는 정글짐과 같은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격자 구조를 이용하면 재료의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강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초경량 금속을 제작하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된다.
그런가 하면 현무암을 닮은 초경량 금속도 있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은 표면부터 속까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런 구멍들은 액체 상태의 마그마 속에 녹아 있던 기체가 만든 결과물이다.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의 기체가 원자 단위로 용해돼 있는 액체 마그마가 빠른 속도로 냉각될 때, 기체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갇혀버린 것이다.
마그마가 아주 높은 압력에서 천천히 식을 경우 기체들은 기포를 만들지 못한다. 또 마그마가 압력이 낮은 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식어도 뚜껑을 딴 후 오래 내버려 둔 사이다처럼 기포는 외부로 사라져 버린다. 재료공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체의 용해도 개념을 활용해 초경량 금속을 만들고 있다. 금속을 녹여 최대한 많은 양의 기체를 용해시킨 뒤, 그것을 적당한 냉각 속도로 식혀 고체 내부에 많은 기공을 형성하는 식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현승균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일본 오사카대 연구팀과 함께 연근 뿌리 모양의 초경량 금속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구리에 조금 특별한 구멍을 만들었다. 연구팀의 초경량 금속에는 외부와 연결된 구멍이 한 뱡향으로 나열돼있다. 그 덕에 구리 원자들이 한 방향으로 연결돼 열 전달이 우수하고 강도가 높은 장점이 있다. 현재 열 교환기 등을 제작하는 데 활용된다.
얇은 텅스텐 vs. 두꺼운 알루미늄, 더 강한 재료는?
지금까지 설명한 구멍이 많은 초경량 금속을 곧바로 자동차나 비행기에 적용하긴 어렵다. 재료의 밀도를 낮춰 에너지 효율은 높일 수 있겠으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재료공학자들이 찾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현재 사용되는 합금의 강도를 크게 증가시키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0MPa(메가파스칼)의 강도를 가진 합금에 효과가 좋은 강화상을 첨가시키거나 강도가 큰 미세조직을 만들어 1000MPa의 강도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강화상은 여러 종류의 재료를 섞어 복합재료를 만들 때, 복합재료 속 재료들 중에서 특히 강한 성분을 말한다. 강화상을 첨가한 합금은 같은 충격을 일반 합금의 절반 밖에 안되는 무게로 견딜 수 있다. 초고강도 철강을 개발하는 것이 초경량화 합금 연구의 중요한 하나의 축인 셈이다. 현재 유럽의 철강 회사와 국내 기업 포스코가 초고강도 철강 개발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편 철강과 더불어 태생 자체가 철보다 가벼운 원소인 마그네슘(Mg), 알루미늄(Al) 그리고 티타늄(Ti)을 이용해 새로운 초경량 소재를 만드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재료공학에서는 어떤 재료가 가벼우면서도 강한 정도를 ‘비강도(specific strength)’로 표현한다. 비강도는 강도를 밀도로 나눈 값으로, 동일한 밀도에서 얼마 만큼의 강도를 나타낼 수 있는가의 척도다. 한 예로 텅스텐의 밀도가 19.25g/cm3이고 강도가 500MPa이라면, 이는 밀도가 2.9g/cm3이고 강도가 100MPa인 알루미늄 합금과 비교해 비강도가 낮다. 즉 텅스텐과 알루미늄을 각각 100g씩 이용해서 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얇은 텅스텐보다 두꺼운 알루미늄이 더 큰 무게를 견딜 수 있다. 비록 강도는 텅스텐이 알루미늄보다 5배 정도 크지만, 같은 무게일 때 부피는 알루미늄이 7배 가량 크기 때문에 힘을 흡수하는 영역이 넓어져서 결과적로는 알루미늄이 더 큰 힘을 견뎌낼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비행기나 고급 자동차에는 밀도가 낮은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군용항공기에는 마그네슘 합금(밀도 1.74g/cm3)이 쓰이고 있다. 그 밖에 안경과 같은 제품군에는 티타늄 합금(밀도 4.5g/cm3)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처럼 초경량 재료를 개발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재료를 연구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재료와 기계, 설계 심지어는 디자인 분야까지 융합돼 힘이 전달되지 않거나 부품을 제조하는데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히 덜어 무게를 줄인다. 지금보다 더 가벼운 재료를 찾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과학 분야가 협력과 경쟁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며 세상을 바꿀 새로운 재료를 탄생시킬 수 있길 바라며 6개월간 이끌어온 ‘초(超)재료’ 연재를 마친다.
※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초(超)재료’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승전
1990년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 1997년 KAIST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국재료연구원에 재직하며 2002년에는 일본 오이타대 비상근 강사, 2018년과 2022년에는 일본 도호쿠대 금속재료연구소 초빙교수로도 일했다.
2020년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 2022년 대한금속학회 동국송원학술상을 수상했다. ‘모던 알키미스트’ 등의 책을 저술했다. szhan@kim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