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팀이 드라마 쓰는 비결?
전술을 분석했으니 이제 선수들의 정신력을 단단하게 무장시키라고 하시는군. 아무리 뛰어난 전술을 짜도 경기장에서 뛰는 건 11명의 선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같은 선수, 같은 전술이라도 정신력에 따라 경기력이 천차만별이거든!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화려한 드리블로 선수들을 제치고 묘기에 가까운 슛으로 득점하는 장면은 축구 경기의 묘미지. 하지만 모든 팀이 스타플레이어를 가진 건 아니야. 감독과 코치는 탄탄한 조직력과 투지를 끌어내서 강팀을 격파하게 만들어야 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루이스 피구가 이끄는 포르투갈(당시 FIFA 세계 랭킹 11위)을 꺾었던 것처럼 말야.
선수 개개인이 갖춘 기량을 숫자로 나타낸 뒤 그걸 합한 게 팀의 경기력이라면 승부는 불 보듯 뻔하지. 공격, 수비, 미드필더에 뛰어난 선수가 많은 팀이 우승할 테니까. 그런데 경기력은 기량의 합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스페인의 프로축구팀 레알마드리드 CF는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라울 곤살레스,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호베르투 카를로스 같은 최고의 선수가 있었지만, 리그 우승은 단 한 번밖에 못 했거든.
경기력은 선수들의 호흡, 몸 상태 같은 요소가 뒤섞여 있어서 예측하기 힘들지만,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때때로 경기력이 월등히 높아지기도 해. 이걸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발레리 로바놉스키 감독이야.
로바놉스키 감독은 나처럼 수학으로 축구를 분석하는 사람들의 우상이야. 축구뿐 아니라 학업에도 뛰어났던 로바놉스키 감독은 고등학교 때 수학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우크라이나 키예프기술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할 정도로 똑똑했어. 대학교에서 배운 ‘사이버네틱스’를 축구에 적용해서 선수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팀 전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지. 로바놉스키 감독이 주장했던 내용 중 흥미로운건 선수 개인이 경기장 위에서 보여주는 노력의 총 합이 커질수록 팀의 경기력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지만, 상황에 따라 올라가는 정도는 다르다는 거야!
세 가지 경기력 곡선
로바놉스키 감독 말대로 실제 축구 경기에서는 열심히 뛰어도 상황에 따라 경기력이 잘 나오지 않거나 반대로 폭발적으로 경기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 경기력이 올라가는 정도가 다른 거지.
데이빗 섬터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교수는 이런경향을 분석해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노력의 합과 경기력의 관계를 위에 있는 세 가지 그래프로 나타냈어. 첫 번째는 경기력이 천천히 올라가는 경우(❶), 두 번째는 비례해서 올라가는 경우(❷), 세 번째는 급격하게 올라가는 경우(❸)야.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 로바놉스키 감독은 그래프가 바뀌는 이유를 ‘선수들 간의 신뢰’라고 분석했어. 다른 선수를 믿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역할에 끼어들어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면 유기적인 시스템이 무너져서 경기력이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는 거야. 반면 신뢰를 바탕으로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경기력이 급격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는 거지.
로바놉스키 감독의 분석은 참 낭만적이지. 그런데 이것 말고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없을까?
부탁해요, 기성용 선수!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 선수를 대표팀 주장으로 발탁했어. 주장은 경기를 뛰면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몇몇 팀은 오랫동안 주장을 맡았던 선수가 팀을 옮기면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도 하지. 섬터 교수와 호주 시드니대학교의 생물학자인 매드린 비크먼 교수는 개미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어.
개미가 말하는 리더십!
개미는 먹이를 발견하면 먹이를 가지고 돌아올 때 길에 페로몬을 흘려서 다른 개미도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그런데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면 증발해 버리거든. 페로몬을 따라 먹이를 가지러 간 개미가 오는 길에 페로몬을 보충해 줘야 다른 개미가 잇달아 먹이를 가져올 수 있어.
비크먼 교수는 실험을 통해 한 집에 있는 개미 수에 따라 얼마나 많은 개미가 먹이를 찾아갔는지 관찰했어. 특이한 건 개미 수가 아주 많거나 아주 적은 경우를 빼면 두 가지 양상을 보이는 거야.
개미 수가 대략 500마리일 때까지는 위 개미 그래프의 파란색 곡선처럼 뒤이어 먹이를 찾아가는 개미의 수가 0에 가까웠어. 그런데 500마리 이상일 때부터는 앞서 먹이를 찾으러 간 개미들이 페로몬을 잘 보충한 경우, 빨간색 곡선처럼 개미의 수와 비례해서 높아졌지. 즉, 개미의 수가 같아도 앞서 페로몬을 보충한 개미가 많으면 뒤이어 페로몬을 보충하는 개미도 계속 많아진 거야. 반대로 먼저 간 개미가 페로몬을 보충하지 않으면 뒤따르는 개미도 페로몬을 보충하지 않았지!
섬터 교수는 비크먼 교수의 실험 결과와 기존의 경기력 곡선을 토대로 새로운 경기력 곡선을 만들었어. 축구도 상황에 따라 선수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경기력이 올라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비크먼 교수의 그래프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위에 있는 곡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거야.
비크먼 교수의 그래프에서 앞선 개미가 모범을 보인 게 요인이라면, 축구의 경우 카리스마 있는 주장과 베테랑 선수가 그 역할을 하는 셈이야. 일부가 모범을 보여서 열심히 경기에 임하면 다른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돼서 경기력이 급격하게 올라갈 수 있다는 거지.
대표팀의 주장인 기성용 선수라면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카리스마 있는 주장 역할을 해 줄 거라 믿어. 특히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동기부여가 중요하니까 기성용 선수에게 단단히 일러둬야겠군! 자, 이제 정신력 훈련까지 완료했으니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할 수 있겠지? 나의 ‘수학적’ 분석으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새로운 드라마를 써보길 기원하자고! 감독님, 저 잘했죠?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