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수 /충북과고 2학년
Q. 교수님도 수학을 공부하면서 지칠 때가 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내가 수학자로서의 역량이 있을까?’, ‘넘지 못할 벽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며 수학자라는 꿈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는데요. 이때 교수님의 답변을 곱씹어보며 저 또한 좌절과 슬럼프들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A. 저도 그런 감정이 자주 들어요. 아마 고등학생이든 수학자든 상관없이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아요. 중고생이면 수학 수업 자체는 굉장히 재밌는데, 수학이 평가의 도구로 사용되니까 힘들지요. 꼭 중고생뿐만 아니라 저도 직업이 수학자니까 제가 수학을 어떻게 하는지가 다른 사람이 저를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돼요. 그런 게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균형을 잃으면 힘들 수 있지요.
수학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 수학자 수준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엄청나게 똑똑해요. 그들의 속도를 맞추는 게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일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온 힘을 모아서 이를 앙다물고 넘어가 봐야지’ 하는 것보다 잘 흘려보내는 게 중요해요.
‘천재같이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자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거거든요. 중요한 것은 밀레니엄 난제를 몇 개 푸는지보다도 인간으로서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며 인류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지라고 생각해요.
이정훈 /대구과고 1학년
Q. 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수학을 잘해서 영재학교에 들어왔지만, 이 학교에 오고 나니 도저히 노력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한 친구가 많아요. 교수님은 수학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다른 천재 수학자들 사이에서 기가 죽거나 힘들었던 경험은 없나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학 연구를 계속하나요?
A. 저도 과학고를 붙었으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과학고에 떨어져서 고등학생 때는 그런 마음을 느낄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 ‘저 친구는 참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노력했는데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었지요.
제가 미국의 유명한 대학원들을 지원했는데 다 떨어지고 한 대학교만 붙었을 때, 지도교수님이 잘 됐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유명한 곳에 가면 똑똑한 학생이 많아서 마음의 준비가 잘 돼 있지 않으면 비교와 같은 잡념이 많이 들어서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요. 물론 저를 위로하려고 해준 말씀 같긴 한데요(웃음). 남들과의 비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가장 좋아요. 그렇다고 일부러 똑똑한 친구가 없는 곳에 가라는 말이 아니에요. 좋은 곳에 가서 뛰어난 사람들과 같이 교류하되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지요.
수학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내가 다른 사람만큼 잘할 수 있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때는 인위적으로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학 연구는 잘하고 못하고를 비교할 수 없어요. 이런 생각으로 산만해지지 않고, 잘 비껴갈 수 있게 흘려보내는 게 중요하지요.
황태현 /경북과고 2학년
Q. 제가 수학을 좋아하는 건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A. 학부 과정과 대학원 과정 등 다음 단계의 수학을 공부해보면 알 수 있어요. 꼭 대학원에 가야지만 대학원 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공부해보고, 논문도 한번 써보세요. 계속해서 그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다 보면 자신이 수학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윤상영 /경기과고 2학년, 고명준 /광주과고 3학년
Q. 대학교에서 순수 학문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 대부분이 본인의 꿈과 연봉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순수 학문을 연구하면 꿈을 이룰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습니다. 반대로 기업에 취직하거나 더 나아가 의학 계열로 진출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또 수학을 전공했을 때 어떤 진로가 있나요?
A.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서 선택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이런 고민은 안 해봤어요. 대학교에서 일하면 먹고 살만큼은 주니까요. 수학자도 다양한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지요. 한국, 미국, 유럽 중 어느 나라에서 교수를 하느냐에 따라서 문화가 달라요. 미국을 예로 들면 수업이 있는 곳에선 학생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처럼 연구소에서 일하면 전혀 학생과 만나지 않고 연구만 하지요. 대부분은 둘의 범주 사이에 있고, 그에 따라서 삶이 꽤 달라져요.
서명원 /경기북과고 2학년
Q. 수학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제가 수학을 평생 업으로 삼을 만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나도 재밌는데, 때로는 머리를 쓰기가 지루하고 귀찮아질 때도 있습니다. 교수님도 이런 감정을 겪으시는지 궁금해요.
A. ‘수학을 좋아하는데 평생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라는 복잡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겠지요. 그건 아마 수학을 업으로 택한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일단 다른 무언가를 평생 업으로 해야 한다면 어떨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뭘 골라도 자신의 적성에 상관없이 비슷할 거예요. 아무리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직업으로서 월화수목금 9시부터 6시까지 계속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재밌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이 수학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충분히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앞부분만 간직하시고 뒷부분은 적당히 무시하세요. 그때그때 재밌는 일을 조금씩 하다보면, 약간의 운을 더해 자연스럽게 진로를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