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나대는 걸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김 교수가 말하는 학창 시절 자신의 모습이다. 개그맨 유재석처럼 되는 게 꿈일 정도로 학교 행사에서 자주 나서서 진행했고, 만화 ‘슬램덩크’에 빠져 농구를 하며 친구들과 열심히 몰려다녔다. 수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수학자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하는 특출난 학생들만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다 수학자를 꿈꾼 계기 중 하나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수학 문제 연구 동아리 ‘셈(S.E.H.M)’ 활동이다. ‘수학을 가르치려면 수학의 정상에 올라가봐야지 않겠어’라는 다소 호기로운 생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수학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왜 미적분을 공부해야 할까?’, ‘위상수학은 왜 알아야 할까?’, ‘좋은 수학 교사란 뭘까?’ 같은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한번 토론에 불이 붙으면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져 밤을 샌 적도 많았다. 이를 통해 고등학교 수학과 다른 모습의 수학에 사로잡혔다. 그는 “뭐든 증명을 해야만 하고, 공리 몇 개에서 출발해 무한한 개념을 만들어내는 수학이 너무 멋졌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같은 과 동기이자 현재 미국 포담대학교 수학과에 재직 중인 문한봄 교수와 단짝이 되어 지인들에게 셈 동아리에 가입할 것을 추천했다. 그 영향 덕분인지 서울대 수학교육과 01학번 중 김 교수와 문 교수를 포함해 무려 4명이나 수학자가 됐다. 김 교수와 문 교수의 아내도 모두 동기인데, 문 교수의 아내가 바로 2022년 이산 수학의 오래된 문제를 풀어 <;수학동아>;에서도 소개한 박진영 미국 뉴욕대학교 수학과 교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김 교수와 문 교수 부부는 4번의 크리스마스를 모두 함께 보냈을 정도로 자주 어울렸다. 그때마다 김 교수와 문 교수가 열띤 수학 토론을 하는 바람에 여자친구들이 “여기서까지 이러지 마!”라면서 신경질을 냈을 정도였다.
“대학교 때 열과 성을 다해 한 수학 공부가 지금의 저를 이끌었어요. 저희 IBS 연구실에서 학부생도 원하면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이유인데요.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고 싶고 재밌는 게 생기면 직접 부딪쳐보고 길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찐친’ 문한봄 교수가 보는 김재경 교수
나와 다른 듯 같은 친구
2000년 겨울, 산기슭에 자리 잡은 캠퍼스가 눈으로 덮여 있던 대학 입시 면접날. 학생들이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강의실에 있었는데, 유달리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으며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질문도 하는 남학생이 깊은 인상을 남겼지요. 김재경 교수와 저의 첫 번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쌓인 눈이 녹고 목련꽃이 가득하던 봄날, 우리는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불과 몇 번의 만남으로 우리는 참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느꼈습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새로 만난 사람과도 붙임성이 좋고, 낯선 것을 배우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어떤 학과의 행사에서도 볼 수 있고, 점심 식사 후 다음 강의 시작 전에 잠깐 노는 곳에서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인기도 많았습니다. 아직도 함께 나갔던 교생실습에서 여중생 두 명이 저희 둘 중 서로 김 교수 옆에 앉겠다고 싸웠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흔히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된다고 합니다. 김 교수와 저는 아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금방 친해졌습니다. 우리 둘이 갖고 있던 생각의 결이 비슷해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학 공부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근근이 유지하고 있던 셈 동아리 활동에 둘 다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과도 즐겁게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같이 수학 문제를 풀어보고, 학부생이 읽을 수 있는 논문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이해한 다음 동아리 사람에게 소개해주기도 했지요. 모든 동아리 사람이 돌아가면서 각자 공부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수학을 발표하는 세미나를 하기도 했고, 짧은 세미나 후에는 긴긴밤을 만화책을 보고 보드게임 등을 하며 보내기도 했었지요. 방학마다 2박 3일 엠티를 가서, 낮에는 함께 수학 공부를 하고 밤에는 놀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친구는 이렇기에 오늘날 공동연구를 동시에 여러 개 진행하는 김 교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김 교수의 타고난 모습대로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분야를 계속 탐구하고, 새로운 연구자들과 계속해서 만나 끝끝내 훌륭한 연구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잘해 나갈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