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도 참! 1년에 고작 두세 달 활동하면서 유세네요. 유럽 남서부에 서식하는우리 쥬얼드 라세 타 도마뱀은 온몸으로 수학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1년 12달 내내 말이죠. 이런 노고를 인정받아서인지 2017년에는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도 장식했답니다.
제 몸을 덮은 알갱이 모양의 비늘이 보이나요? 초록색과 검은색 알갱이가 촘촘히 박혀 꼭 보석 같
은 무늬를 만들고 있죠. 처음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던 건 아니에요. 태어나서 5개월까
지는 알갱이의 색이 갈색 또는 흰색이라 갈색 바탕에 흰 얼룩이 묻은 것 같은 모습이었죠.
그런데 태어난 지 5개월이 지나면 서서히 알갱이가 검정색 또는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신기한 건 알갱이 하나하나가 평생에 걸쳐 검정색과 초록색을 왔다갔다하며 계속 바뀐다는 거예요.
2017년 미카엘 밀린코비치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유전 및 진화학과 교수는 무려 4년 동안 제 피부를 관찰한 결과 ‘세포 자동자’라는 수학적 원리와 비슷한 과정으로 비늘 색을 바꾼다고 가설을 세
우고 비늘 색을 바꾸는 수학 모형을 만들었어요.
세포 자동자가 뭐냐고요?
도마뱀은 살아있는 세포 자동자
세포 자동자는 헝가리 출신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만든 개념으로, 색을 규칙에 따라 배열한 칸의 상태가 주변 칸의 상태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는 모형이에요. 모든 칸의 상태가 동시에 바뀌기 때문에 이전 상태가 다음 상태를 결정합니다. 노이만은 이 개념을 이용해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복제하는 현상을 연구했죠.
세포 자동자를 유명하게 만든 건 영국 수학자 존 콘웨이에요. 콘웨이는 세포 자동자 원리를 이용해 초기 상태가 규칙에 따라 변하며 다양한 패턴을 만드는 ‘라이프 게임’을 만들었는데, 1970년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라이프 게임이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거든요.
밀린코비치 교수는 제 피부에 있는 비늘 하나하나를 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칸의 상태는 초록색, 검정색 두 가지로 나뉘죠. 제 피부를 보면 보통 초록색 비늘 1개의 주변에 검정색 비늘 4개가 있습니다. 반대로 검정색 비늘 1개의 주변에는 초록색 비늘 3개가 나타나죠.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초기 상태를 정하고 세포 자동자의 규칙을 짜서 시뮬레이션해보니 정말 비슷한 피부색
이 만들어졌던 겁니다.
연구팀을 이끈 밀린코비치 교수는 저 쥬얼드 라세타 도마뱀을 일컬어 ‘살아 움직이는 세포 자동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온몸으로 수학적 원리를 홍보하는 저야말로 수학왕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