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얻었으니 이제 일을 해야겠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도 산과 들에서 열심히 꽃가루를 옮기고 있어. 꿀벌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태계를 돕는 우리 야생벌의 삶을 소개할게.
혼자 다니고 땅속에도 집 짓는다
식물이 열매를 맺으려면 수술에 있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옮겨지는 ‘수분’이 필요해요. 벌과 나비, 파리, 딱정벌레, 꽃등에, 박쥐, 바람 등이 꽃가루를 옮겨 수분을 도와요. 이런 여러 종류의 수분 매개자가 있기에 많은 식물이 열매를 맺을 수 있죠.
꽃가루를 옮기는 벌이라고 하면 흔히 꿀벌을 먼저 떠올려요. 하지만 꿀벌만으로는 모양과 구조가 다른 식물을 모두 수분하기 어려워요. 야생벌은 다양한 몸 크기와 혀 길이, 수분 방식 등을 활용해 수분 매개를 나누어 맡죠.
야생벌의 크기는 1mm부터 최대 5cm까지 다양해서 꿀벌에겐 너무 크거나 작은 꽃에 접근할 수 있어요. 야생벌 중 뒤영벌은 꽃을 붙잡고 가슴 근육을 떨며 꽃가루를 털어내는 ‘진동 수분’을 합니다. 토마토나 블루베리처럼 꽃밥 안에 꽃가루가 숨어 있는 식물은 야생벌 덕분에 꽃가루를 옮길 수 있죠. 경상대학교 생물교육과 정계준 명예교수는 “위험해서 제거해야 한다고만 여겨지는 말벌도 성충은 에너지원을 꽃의 꿀에서 얻기 때문에, 수분 매개자로서 맡은 역할이 있다”고 말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약 4800종의 야생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꿀벌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말벌류와 뒤영벌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야생벌은 단독 생활을 해요. 모든 암벌이 곧 여왕벌이고, 홀로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죠. 야생벌이 둥지를 짓는 장소는 땅속이 가장 많고, 나무 구멍, 썩은 식물 줄기와 바위틈에 집을 짓기도 해요. 나무 대롱을 모아 만든 비하우징은 야생벌 중에서도 단독 생활을 하며 나무 구멍에 알을 낳는 종을 위한 서식지인 셈이죠. 가위벌과 벌은 잎사귀를 잘라 구멍 안에 칸막이를 만들고 알을 낳는데, 비하우징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해요.
도시화로 흙바닥과 녹지가 줄면서 야생벌이 머물 곳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녹지라고 해도 다양한 야생 식물이 없는 잔디밭, 살충제까지 뿌리며 관리하는 곳은 야생벌에게 적합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없죠. 시민과학 모임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조수정 공동대표는 “죽은 나무와 낙엽 등 야생벌의 서식처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곳을 너무 깨끗이 정리해도 벌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고 지적했어요.
자연 속 다양한 야생벌의 서식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