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파르코스가 별의 좌표 기록을 남긴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아주 오랜 천문학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어떤 천문학 기록이 남아 있는지 살펴볼까요?
누구나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린 별 지도
우리나라는 청동기 시대 때부터 하늘을 관측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고인돌 덮개돌, 고구려의 고분벽화 등에 별 지도가 남아 있거든요.
우리나라 별 지도 유물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고구려에서 만든 별 지도로, 당시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하늘의 별을 그린 지도예요. 훗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 별 지도를 재검토하고 후대에 잘 전달할 수 있게 석판과 목판에 기록물로 남겼습니다. 덕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의 별자리가 조선에 전래되어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별자리를 담은 지도가 됐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천문학이 급속도로 발전했어요. 기원전 54년 고구려에서는 일식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부터 실제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기록했다는 뜻이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일종의 국가 천문대인데, 고구려에도 첨성대와 같은 천문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때부터 국가 차원에서 왕실 천문대를 갖추고 천문학을 발전시켜왔다는 걸 알 수 있죠.
●인터뷰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센터장)
과거 천문 기록을 갖고 있는 건 아주 큰 망원경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요.
Q우리나라 천문학은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었나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때 만들어졌지만, 문헌 기록이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고구려 때 별자리로부터 유래됐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기원 전후 고구려 때부터 우리나라가 매우 정밀한 별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당시 한반도는 전 세계 기준 가장 이른 시기에 국가 천문대를 지녔던 거예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또 다른 특징은 별의 밝기를 점의 크기로 표시한 거예요. 이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 천문학만의 고유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별의 밝기를 표시하는 건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에요. 천상열차분야지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천문학이 역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옛 천문학 자료를 왜 분석해야 할까요?
현대에 들어서 천문학자들은 큰 망원경을 만들어 더 멀리 있는, 더 오래 전의 빛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과거로부터 온 아주 어두운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과거의 기록을 분석하는 건 과거의 별빛을 보는 것과 같아요.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건 큰 망원경을 지닌 것과 비슷하죠. 우리나라 천문 기록은 아주 큰 망원경과 같고, 현대 천문학 연구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Q우리나라 선조들은 왜 별 지도를 만들었을까요?
천문학은 시간과 공간의 학문입니다. 별자리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시간과 공간, 절기 등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죠. 하지만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등의 이유로 하늘을 못 보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때를 대비해서 하늘의 모양을 그려놓은 것이 별 지도라고 할 수 있어요.
동양에서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서 임금이라면 꼭 해야 하는 학문이었어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선 하늘의 때를 알고 계절 변화를 잘 예측해야 하니 천문학이 중요했던 거죠.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천문학을 연구하고 별 지도도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