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생성 이미지(Midjourney)
인류는 심장을 넘어 뇌를 포함한 전신을 얼리기 시작했다. 이를 표현한 이미지.
“저는 지금 죽지만 200년 안에 다시 돌아올 거예요.” 2016년, 영국의 14세 소녀 JS는 불치병인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 냉동보존을 선택했다. 그가 자진해 영하 196℃의 액체질소 용기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 200년 후 미래에 깨어난다면 자신의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과연 냉동보존 기술이 인간의 죽음을 멈출 수 있을까. 최근 진전된 연구를 파헤쳐봤다.
‘부활’ 꿈꾸며 냉동인간 선택한 인류
“국내에서도 이미 3명이 냉동인간의 길을 택했습니다.”
4월 2일 서울에서 만난 한형태 크리오아시아 대표가 말했다. 그는 국내 유일 냉동보존 기업을 운영 중이다. 냉동보존의 역사는 1967년,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퍼드가 간암으로 사망한 직후 인류 최초로 영하 196℃의 액체질소에 냉동되면서 시작됐다.
2026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냉동보존된 인원은 약 6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알코어 생명연장재단과 러시아의 크리오러스 등이 주요 기관으로 꼽힌다. 이들 기관에 냉동보존을 예약하고 대기 중인 인원만도 전 세계에 4000명이 넘는다.
냉동보존을 선택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이나 희귀병 환자들이다. 이들에게 냉동보존은 죽음이 아니라, 미래의 의학 기술로 병을 고쳐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유예다. 하지만 희망의 가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보존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큰데,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 따르면 뇌만 보존하는 ‘신경 보존’은 약 8만 달러(약 1억 원), 전신을 보존하는 방식은 최소 20만 달러(약 2억 7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매년 지불해야 하는 유지비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따르지만, 두 번째 삶을 꿈꾸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늦추기 위해 생물학적 시계를 조작하는 기술을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먼저 SF 영화와 소설에 자주 나오는 비슷하지만 다른 두 기술의 차이를 짚어보자. ‘냉동보존 기술’은 앞서 설명한, 생체 조직을 완전히 단단하게 얼려 보존하는 기술이다. 사고로 70년 동안 북극해의 얼음 속에 갇혀 있다 깨어난 영화 ‘캡틴 아메리카’의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가 예시가 될 수 있다.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의 신체는 완전히 냉동돼 생물학적 시계가 멈춰버린 셈이다.
반면 ‘동면’ 기술은 인간을 얼음마냥 얼려버리는 냉동과는 다르게 겨울잠에 들게 하려는 기술이다. 동면 상태의 동물은 신체 대사가 극도로 느려지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 비행사들은 토성까지 가는 2년 여의 시간 동안 가사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 장면이 동면 기술에 가깝다.
두 기술 모두 여전히 SF 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지난 3월,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연구팀의 발표는 냉동보존이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냉동 기술을 통해 생쥐의 뇌 조직을 급속 냉동한 뒤, 해동 후에도 신경 기능을 완벽히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뇌와 같이 복잡한 장기의 시냅스 신호 전달 체계와 학습 기능을 해동 후에도 유지한 최초의 사례다. doi: 10.1073/pnas.2516848123
냉동인간의 첫 걸음, 얼음 결정 방지
냉동보존 기술 없이 일반적으로 세포를 얼리면 얼음 결정이 생기면서 세포가 파괴된다. 냉동보존 기술은 시신의 혈액을 3시간 내로 제거하고 V3 등의 냉동보존액을 넣은 상태에서 분당 100℃의 고속으로 세포를 냉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보존액 성분이 물 분자와 상호작용해 얼음 결정화를 막고 무정형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세포가 파괴 없이 유지된다.

자료: Nature, AI 생성 이미지(Nano Banana)
‘유리화’ 공법, 세포 내 ‘얼음 칼날’을 잠재우다
냉동보존 기술의 최대 적은 역설적이게도 ‘물’이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수분은 영하의 온도에서 얼면 날카로운 얼음 결정을 형성한다. 이 얼음 결정은 세포막을 찢고 시냅스 구조를 파괴하며, 해동 시에는 열팽창으로 신체 조직을 미세하게 손상시킨다.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연구팀은 ‘V3’라고 불리는 화학 혼합물을 통해 이 난제를 정면 돌파했다. V3는 연구팀이 기존 냉동 보존액이던 VM3를 변형해 만든 물질이다. VM3는 2004년 미국 21세기의학연구소 소속 그레고리 파히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이 개발했다. doi: 10.1016/j.cryobiol.2004.02.002 V3는 세포 냉동보존에 쓰이는 화학 물질인 포름아마이드, 에틸렌글리콜, 다이메틸설폭사이드 등을 정교하게 조합해 제작됐다. 이 용액은 수분을 얼음 결정 대신 유리처럼 매끄러운 고체 상태로 굳히는 ‘유리화(vitrification)’ 공정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생후 3~9개월 된 성체 생쥐의 뇌를 대상으로 V3 용액의 성능을 시험했다. 이들은 생쥐의 뇌 절편과 뇌 전체를 V3 용액에 담가 영하 196°C의 액체질소에서 급속 냉동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를 다시 해동해 상태를 정밀 분석했다. 해동 시 얼음이 다시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해동 역시 급속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V3를 사용한 생쥐 뇌 절편 및 뇌 전체는 세포 사멸이 거의 없었다. 또한 뇌의 복잡한 신경돌기 구조가 냉동 전과 다름없이 완벽하게 보존됐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장기 강화 신호 전달 성능(LTP)’의 회복이었다. 여기서 장기 강화란 뇌과학에서 학습과 기억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꼽히는 현상이다. 생쥐의 뇌세포가 생존하는 데 성공한 데다, 학습하고 기억하는 뇌 본연의 기능까지 고스란히 복구했음을 의미한다.
연구의 교신 저자인 알렉산더 저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유리화 공정의 핵심은 단순한 동결이 아니라 세포 내 구조물의 ‘정지’에 있다”고 설명했다. “세포질 내 수분이 결정화되는 순간 뇌의 물리적 정보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됩니다. V3와 같은 보존제는 시냅스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화학적으로 고정해 해동 시 발생할 수 있는 분자 수준의 뒤틀림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죠.”

Alcor
미국의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은 인체 냉동보존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다. 현재 100명이 넘는 사람이 알코어 측에 냉동보존을 위탁했다.
깨어난 뇌는 ‘나’를 기억할까
신경세포의 연결이 보존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물론,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경 연결망의 파괴는 기억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4월 8일,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난 홍일강 기억및교세포연구단 연구원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조언을 건넸다. “기억은 개별 뉴런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뉴런 사이의 복잡한 연결망인 시냅스라는 소프트웨어에 저장됩니다.”
홍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기억의 물리적 실체는 ‘엔그램(Engram)’이라 불리는 특정 신경세포들의 활동 패턴이다. “냉동인간이 해동 후 자아를 유지하려면 엔그램을 구성하는 시냅스 가소성의 미세 구조가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도 없이 보존돼야 한다”는 점이 그의 견해다. 시냅스는 매우 섬세한 구조물로, 냉동 과정에서의 미세한 물리적 팽창이나 화학적 변성은 이 연결망을 순식간에 끊어버릴 수 있다.
“현미경으로 보기에 멀쩡한 뇌세포라 할지라도 시냅스 연결 데이터가 소실됐다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어도 기억이 전무한 ‘껍데기’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기억의 엔그램은 보존액의 침투 속도에 극도로 민감하다. 보존액이 뇌 전체에 균일하게 퍼지지 않을 경우 특정 부위의 시냅스가 선택적으로 파괴돼 기억과 인격의 일부가 소실되거나 자아 정체성이 붕괴될 수도 있는 탓이다. 물리적 복구가 자아, 의식과 기억까지 온전히 보장할지는 미지수라는 뜻이다.
결국 냉동보존 기술이 진화했음에도 시냅스가 완벽하게 보존되지 못해 기억을 잃는다면, “깨어난 나는 과거의 나와 동일인일까”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홍 연구원은 “독일 연구팀이 해동 후 시냅스의 LTP를 확인한 건 대단한 진전”이라면서도 냉동보존 기술의 현실화 시점을 보수적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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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이 해동 후 자아를 유지하려면 ‘엔그램(Engram)’을 구성하는 시냅스 가소성의 미세 구조가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도 없이 보존돼야 한다.
동물들처럼 인간도 겨울잠 자는 ‘동면’ 기술
과학자들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인체 냉동보존술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 ‘동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동면(겨울잠)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잠이 아닌 완전히 다른 생리 상태다. ‘토르퍼(Torpor, 휴면)’라고 불리는 이 상태는 체온이 주변 온도에 가까울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수와 호흡이 평상시의 5% 미만으로 줄어드는 ‘생물학적 일시 정지’다. 일반적인 수면이 뇌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면, 토르퍼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 소비를 평소의 1% 미만까지 극한으로 차단하는 능동적인 대사 억제 과정이다.
토르퍼 상태에서는 세포의 노화가 거의 멈추며, 외부의 물리적 충격이나 방사선 노출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저항력이 극대화된다. 특히 근육과 뼈의 손실을 막는 특수한 단백질이 활성화돼, 장기간 움직이지 않아도 신체 기능이 퇴화하지 않는 경이로운 회복력을 보여준다.
독일 생물학자 리자 바르네케의 저서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세계’에 따르면, 곰이나 다람쥐 같은 동면 동물은 수개월 동안 먹이 없이 지내면서도 근육과 뼈가 손상되지 않는다. 겨울잠 전 체중이 2배로 늘어도 혈당이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다. 이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비만, 치매 등의 질병 메커니즘과 정면으로 반대된다.
겨울잠이 없는 인간 역시 유전자에는 동면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인간도 메커니즘상 잠재적으로 겨울잠이 가능하다. 다만 인간은 동면 시작에 필수적인 아데노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신호가 동면 동물만큼 급격히 증폭되지 않아 동면에 들지 못한다. doi: 10.1152/physiol.00007.2018
만약 인간의 동면 유전자를 깨울 수 있다면 냉동보존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해진다. 냉동보존이 ‘외부에서 인간을 얼리는’ 방식이라면, 동면은 ‘인간 스스로 생물학적 기능을 조절해 저온을 견디는’ 접근이다.

크리오아시아
2020년, 한형태 크리오아시아 대표 및 직원들이 냉동보존 처리된 시신을 러시아로 보내는 모습. 3명의 국내 냉동보존 위탁을 맡은 크리오아시아는 국내에서 인체를 냉동보존한 뒤, 48시간 내 러시아의 냉동보존 기업 크리오서스로 보내 냉동인간 보관을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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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시냅스의 연결 형상을 표현한 이미지. 홍일강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및교세포연구단 연구원은 “현미경으로 보기에 멀쩡한 뇌세포라 할지라도 시냅스 연결 데이터가 소실되면 기억이 사라진 ‘껍데기’가 될 위험이 있다”며 “냉동과 해동에 있어 뇌를 얼리고 되살리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냉동 기술, 인류 지평 넓힐까
아직은 구현 가능성이 멀어 보이지만, 냉동인간과 동면 기술은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다. “냉동인간과 동면 모두 생물학적 한계를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주현우 한림대 일송생명과학연구소 교수는 ‘시간 정지’의 가치를 알렸다.
오랜 세월 뒤 냉동인간이 깨어날 수 있다면, JS처럼 냉동된 불치병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법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동면 역시 뇌 손상 환자의 치료 기회를 높여줄 걸로 기대된다. 주 교수는 “저체온 치료는 뇌 세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산화스트레스나 염증 반응을 줄여 추가 손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물학적 시계를 조작하면 인류의 지평도 확장된다. 그간 막연했던 장거리 우주 비행도 가시권으로 들어온다. 지구 고도 100km를 넘어선 우주로 가면, 중력이 100만분의 1 이하의 미세 중력으로 접어든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이동하는 9개월간 우주비행사는 근육량 감소와 골밀도 저하,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주 교수는 “동면 기술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겨울잠에 든 동물의 몸에서는 열충격단백질(HSP)이 발현되는데, 이 단백질은 몸속 단백질 손상을 회복하고, 세포 기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원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하는 거죠.” 영화 ‘인터스텔라’ 속 동면에 든 인간은 더 이상 상상 속 얘기가 아니다.
한 대표는 냉동인간이 해동되는 시점을 상상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향후 ‘해동인간’이 나오는 시기가 온다면 냉동보존 기술 자체가 필요 없어질 수 있겠죠. 만병 치료가 가능한 시점엔 역노화와 영생까지도 기술적으로 금방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냉동인간 기술은 사람들을 결국 기술적으로 모든 게 해결이 가능한 그날로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할 뿐인 거죠.”

ESA
2014년 12월 6일,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비행사 사만다 크리스토포레티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개인 승무원 숙소에서 침낭 안에 들어가 있다. ESA가 꾸준히 연구 중인 동면 기술이 상용화되면, 향후 심우주 여행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NASA
"동면 기술과 냉동보존 기술이 성숙되면,
영화 ‘인터스텔라’ 속 동면에 든 인간은 더 이상 상상 속 얘기가 아니게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