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냉동인간들이 깨어나기 위해선 냉동보다 더 큰 산이 남았다. 해동이다. 냉동 보관된 사람은 많지만 해동은 현재의 기술로는 도달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냉동인간의 해동 성공 시점에 관해 50년 후부터 3세기 후까지 천차만별의 답변을 내놨다. 그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깨어날 수는 있을까.
아무도 해동되지 못했다
2016년 냉동된 영국의 14세 소녀 JS를 필두로, 지금껏 냉동인간이 된 사람은 세계적으로 약 650명이다. 그러나 이들 중 해동된 사람은 아직 전무하다. “신체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과 그 기능을 복원하는 일은 서로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주현우 한림대 일송생명과학연구소 교수는 설명했다.
현 시점에서 인간의 신체 냉동 및 해동은 세포 단위까지만 가능하다. 난자를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해동해 임신을 시도하는 ‘시험관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동결 보존제를 사용해 냉동 시 생성되는 얼음 결정을 방지해 세포의 파괴를 막는다. 이외에 한국공공조직은행이 뼈와 같은 이식용 조직을 저장하고, 국립암센터가 바이오뱅크에 연구 목적으로 암 조직 등을 저장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해동 후에 기능을 회복시키지는 않는다. 4월 7일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유종우 바이오뱅크장은 “신체 조직은 몸에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15~30분 안에 얼려 보관한다”며 “조직에 있는 유전자와 미생물, 단백질을 보관하는 목적이라 기능 회복은 크게 필요치 않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직과 달리 냉동인간은 해동 후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포보다 큰 조직을 해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균일성의 한계’ 때문이다. “해동 과정에서 세포 사이에 온도 차이가 생기면서 세포에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직 전체의 온도가 균등하게 높아지도록 해동하는 게 중요하죠.” 주 교수의 설명은 냉동실에서 꺼낸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녹여도 중간 부분이 여전히 차가운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 단위보다 큰 냉동 영역을 균일하게 해동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23년, 이러한 한계에 실마리가 될 연구가 공개됐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은 쥐 신장을 100일 동안 냉동했다가 ‘나노 가열’ 기술로 해동하는 데 성공했다. doi: 10.1038/s41467-023-38824-8 나노 가열은 장기 내부 혈관에 산화철 나노 입자를 주입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이후 신장을 코일로 감싸고 코일에 전기를 흘려보내 자기장을 생성시키면서 철 입자를 가열했다. 신장 전체에 퍼진 나노 철 입자가 가열되며 신장 안쪽까지 고르게 해동됐다. 연구팀이 해동한 신장을 다른 쥐에 이식하자 3주 만에 신장 기능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신경과학자들은 해당 연구 대상이 기억과 자아를 이루는 핵심 부위인 뇌가 아닌 점을 지적한다. “신장은 일부 세포가 손상돼도 전체 기능을 회복할 수 있어요. 뇌는 다릅니다.” 또한 주 교수는 “신장의 기능 회복이 세포 손상을 완벽히 막았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천리길 해동, 성공 시점은 언제일까
4월 2일 만난 한형태 크리오아시아 대표에게 냉동인간의 해동 시점을 물었다. 그는 “50~100년 안엔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뇌만 무사히 해동된다면, 기술 발전 상황에 따라 손상된 기관을 치료하기 위해 냉동인간을 해동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잘못된 방식으로 얼려 세포가 파괴된 사람은 해동해도 소용없겠죠.”
한 대표가 짚은 부분은 냉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상이다. 이미 잘못된 방식으로 냉동된 경우에는 원 상태로 해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냉동보존 기업들은 사람의 혈액을 빼고 동결 보존액(CPA)을 넣어 체내 얼음 결정을 막는다. 한 대표는 “주로 CPA는 자동차 부동액에 들어가는 에틸렌글리콜을 주성분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CPA 자체의 독성도 세포 파괴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러한 독성을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CPA가 균일하게 주입되지 않으면 삼투압 때문에 세포가 파괴될 수 있어 정교하고 고른 주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동 시점에 대한 신경과학자의 입장은 또 달랐다. 4월 8일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난 홍일강 기억및교세포연구단 연구원은 뇌 해동 성공 시점을 묻는 말에 “3세기 뒤”라는 아득한 숫자를 내놨다. 아직 뇌 해동의 성공 여부조차 판별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사람이 한 번 기억할 때마다 신경세포 간 접합부인 시냅스의 모양과 수가 미세하게 변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변화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다광자 현미경으로 살아 있는 쥐의 뇌세포 일부를 볼 수 있지만, 여러 영역의 뇌세포를 한 번에 보는 기술은 나오기 전이다. 홍 연구원은 3월 발표된 독일 연구팀의 뇌 해동 성공 사례 역시 “뇌세포를 일부 살려냈다는 얘기지 기억까지 보존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냉동인간이 해동되기까지 남은 가장 큰 과제는 여전히 균일성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과학자들은 공통으로 “이미 조직을 균일하게 녹이는 기술이 나왔다지만, 더 세밀하고 정교하되 일정하게 녹이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경세포만 회복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비신경세포 역시 뇌에서 중요한데, 이들 영역을 모두 균일하게 해동해야 해요.” 홍 연구원은 복잡한 뇌 구조를 근거로 균등한 해동 기술의 무게를 거듭 강조했다. “뇌는 아주 깊은데, 나노 가열할 때 나노 입자를 뇌 안쪽 혈관까지 깊숙이 넣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 되겠습니다.”
생명 활동을 늦추는 ‘동면’ 기술에 대한 전망은 인체 냉동 보존술보다 조금 더 긍정적이다. 주 교수는 “10년 안에 인간에게 동면 기술을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면은 황화수소, 아데노신 등 저대사 유발 물질이나 초음파로 뇌를 자극해 체온을 낮추고 에너지 소비를 극한까지 줄인다. 현재 동면은 쥐에게까지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에는 일본 쓰쿠바대 연구팀이, doi: 10.1038/s41586-020-2163-6 2023년에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연구팀이 쥐의 동면 유도에 성공했다. doi: 10.1038/s42255-023-00804-z 주 교수는 “동면 유도 과정에서의 뇌 손상 문제를 해결하고, 대사 조절을 더 정밀하게 하고, 동면 도중 깨어날 때 더 안전하게 각성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쥐 신장, ‘나노 가열’로 해동 성공
냉동인간 돌아오면 ‘죽음’의 의미도 달라진다
현대 의학은 죽음을 ‘심폐 정지’나 ‘뇌사’로 정의한다. 만에 하나 냉동 보존 기술이 현실화한다면, 이 정의도 흔들릴 수 있다. 생명윤리학자인 김준혁 연세대 치대 교수는 죽음을 냉동 보존 기술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봤다. “심장이 멈췄더라도 뇌의 신경 구조와 시냅스 데이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정보학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는 죽음을 ‘종료’가 아닌 ‘일시 정지’로 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인격의 연속성은 뇌세포의 복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십 년 뒤 깨어난 이가 겪을 ‘사회적 소외’는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영화 ‘데몰리션 맨’부터 ‘캡틴 아메리카’까지, 냉동 보존술을 다룬 많은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완전히 달라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김 교수는 “기억의 복구가 완벽하더라도 그 기억을 공유할 대상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아는 심각한 붕괴를 경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적으로 동일인임을 인정받더라도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은 그를 시대에 뒤떨어진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의료윤리학적 관점에서 김 교수는 “냉동 보존은 ‘불멸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치료를 위한 마지막 기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독일의 V3 기술이 뇌의 물리적 복구 가능성을 열고 뇌과학자들이 시냅스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금, 우리는 기술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학은 이제 생명의 시간을 일시 정지시켰다가 다시 흐르게 하는 조절 버튼으로 손을 뻗고 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이라는 말처럼, 그 기억을 미래로 안전하게 배달하는 일은 과학과 윤리,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함께 짊어야 할 숙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냉동인간의 시대가 온다면, 인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과학자가 예측하는 냉동인간 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