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코비는 천사 같았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맹인안내견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종인만큼, 온순한 성격이 특징이다. 그런데 그런 코비가 유독 밥그릇 앞에서는 보호자를 무는 탓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장난감이나 음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공격성을 보이는 ‘소유공격성’이다. 코비의 보호자는 “코비가 평상시에는 천사인데, 밥그릇 앞에서는 악마로 변한다”고 말했다. 코비에게 물려서 손가락 골절상을 입은 가족도 있을 만큼 코비의 소유공격성은 정도가 심각했다.
소유공격성, 밥그릇 앞에서만 ‘악마’로 돌변
코비는 보호자와 처음 만났던 2개월령부터 유독 식탐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살 때부터는 소유공격성이 시작됐다. 벌써 이런 행동문제를 보인 지도 3년이 됐다. 지금껏 보호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교정을 시도했지만, 코비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심각해졌다. 최근에는 밥 먹기 20분 전에 바스켓 형태의 입마개를 씌우고 알갱이가 작은 사료를 밥그릇에 담아준다고 한다. 밥을 먹기 위해 입마개를 씌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평상시에 밥그릇 앞에서의 공격성만 빼면, 코비는 보호자가 비행기를 몰 때 옆자리에서 부기장처럼 얌전히 앉아있을 만큼 겁이 없고 성격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밥그릇 앞에서는 왜 그러는 걸까. 필자는 코비의 과거와 현재 행동을 관찰해 분석했다. 그 결과 코비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소유공격성을 유발할 만한 행동을 해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첫 번째는 코비가 다른 강아지 두 마리와 밥그릇 하나를 놓고 나눠 먹어야 했다는 점이다. 각자의 밥그릇이 아닌 하나의 밥그릇을 가지고 경쟁하다 보면 식탐이 커질 수 있고, 소유욕도 커지게 된다. 소유공격성의 원인 중 하나다.
번째는 코비가 밥을 먹을 때 보호자가 밥그릇에 손을 넣어서 휘저었다. 코비가 보호자의 손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유공격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불안감이다. 내가 먹을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다 먹지 못하고 뺏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그래서 먹을 때는 편하게 먹어야 한다. 보호자가 손을 넣어서 휘젓는 행동은 먹을 때 손이 다가오는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든다.
세 번째는 소유공격성을 고치기 위해 보호자가 밥그릇에 밥을 줬다가, 다시 뺏은 뒤 ‘앉아’를 시켰다가 다시 밥그릇을 주고, 으르렁거릴 때마다 전기충격목걸이로 체벌한 것이다. 코비는 밥그릇 앞에 사람이 다가오면 뺏길까봐 두려워서 으르렁거렸을 텐데, 심지어 체벌로 인해 통증까지 느꼈으니 오히려 두려움이 더 커진 셈이다. 결국 소유공격성이 더욱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보호자는 코비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을 자주 빼앗았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음식물이 묻은 휴지처럼 더럽거나 위험해 보여서 빼앗았지만, 코비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빼앗긴 게 된다. 반복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빼앗기다 보면 더욱 열심히 지키게 된다. 보호자는 코비를 무척 사랑하고 소유공격성을 고치기 위해 다른 주에서 비행기를 몰고 치료를 받으러 올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코비 입장에서는 보호자가 자신의 물건을 빼앗는 사람인 셈이다.
빼앗으면 안 되고 맞교환해야
소유공격성은 치료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문이 닫힌 방에서 코비가 혼자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밥을 먹게 해주고, 코비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지 않으면 된다.
물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라면 빼앗아야 한다. 그럴 때는 더 맛있는 간식을 주거나 코비에게 더 가치가 높은 물건, 가령 코비가 가장 좋아하는 공을 던져주는 등 맞교환을 하면 된다. 핵심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보호자는 상담을 받은 뒤 그날 저녁 식사부터 코비가 방 안에서 혼자 조용히 밥을 먹게 했다. 당연히 사람이 코비의 밥그릇에 다가갈 일이 없으니,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보호자는 “원인을 알고 나니 고치기가 참 쉽고 간단한데, 왜 지금까지 전기충격목걸이와 입마개까지 동원했는지 모르겠다”며 “코비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만약 소유공격성을 보이는 강아지가 혼자 조용히 문을 닫고 먹을 만한 공간이 없다면, 민감성소실역조건화(DSCC·Desensitization Counterconditioning)를 통한 행동치료가 가능하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가장 맛이 없는(가치가 낮은) 먹이를 밥그릇에 준다. 그런 다음 으르렁거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까지 걸어가서 맛있는 간식을 던져주고 돌아온다. 그리고 거리를 점점 좁혀간다. 이후 강아지가 가진 밥그릇에 조금씩 더 맛있는 것을 주면서, 이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행동치료는 사람이 다가오면 더 맛있는 음식을 주고 바로 떠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게 목적이다. 강아지가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사람이 다가와도 더 이상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강아지의 보디랭귀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면 바로 뒤돌아 강아지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또한 체벌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키울수 있다. 특히 전기충격목걸이처럼 통증을 주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코비의 사례처럼 오히려 강아지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원인을 알면 쉽게 개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옛 속담만 기억한다면 소유공격성을 예방할 수 있다.
김선아
충남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수의사가 된 뒤, 서울대에서 동물행동의학 및 야생동물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최초로 동물의 정신과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을 운영했고, 해마루케어센터 센터장으로 동물정신과와 호스피스 진료를 했다. 현재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UC 데이비스)에서 동물행동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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