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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매력은 어렵다는 것”

저자 인터뷰 | 박문호 ETRI 책임 연구원



“학습탐사를 다녀오신 서호주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에피소드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그게 다 과학을 쉽게 전달하려는 버릇에서 나온 거예요. 과학은 원래 어려운 겁니다.”

기자의 습관적인 질문에 돌아온 박문호 연구원의 대답은 ‘과학은 원래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바이오메드신경계 연구팀의 박문호 책임연구원은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이하 박자세)’이라는 아마추어 과학인 동호회를 이끌고 있다. 박자세에는 자연과학에 ‘미친’ 1000여 명의 회원들이 박 연구원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정기적으로 대형 컨퍼런스 수준의 모임을 가지며, 특정 과학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일반 회원들도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한 것을 주제로 발표를 한다.

2007년부터는 1년에 한두 차례씩 해외로 ‘학습탐사’도 다녀왔다. 학습탐사란 탐험과 관광의 장점만 뽑아 만든 개념이다. 탐험에 없는 24시간 ‘학습’ 개념을 도입하고 관광에 없는 ‘모험’을 가미했다. 박자세는 지난해 서호주에서 11박 12일을 보낸 학습탐사의 여정을 한 편의 책에 기록했는데, 그 책이 바로 ‘서호주’다.

500쪽이 넘는 책은 눈에 보이는 모든 길이 지평선에 닿아 점이 되는 서호주의 광활한 풍경과 함께 서호주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학을 담았다. 샤크 만에서 만날 수 있는 35억 년 전 광합성의 흔적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부터 신이 거꾸로 심은 듯한 ‘바오밥나무’, 남반구 밤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남십자성에 이르기까지. 덤으로 호주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에티켓과 지식까지 갖춘 이 책은 일종의 ‘서호주 사용설명서’다.



학습 근육을 키워라

박 연구원과 함께 서호주를 다녀온 24명의 탐사대원들은 출발 전까지 어떤 준비를 했을까. 무려 14주 동안 일주일에 4시간씩 서호주에 대해 공부했다. 서호주에서 보내는 드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아는 만큼 보기’ 위해서다. 박 연구원은 “출발 전 50시간 넘게 공부를 하고 2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탐사를 하며 자연과학만 생각하다 돌아온 사람은 사고체계가 자연과학 위주로 완전히 바뀐다”고 말했다. 바로 박 연구원이 제창하는 ‘대중의 과학화’의 한 예다. 박 연구원은 ‘과학의 대중화’를 거부한다.

“지난 30년 동안 과학계는 미디어과 함께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썼어요. 좀 더 재밌는 과학, 좀 더 쉬운 과학. 그래서 대중의 과학 수준이 얼마나 올라갔나요? ‘재밌고 자극적인 과학’은 과학의 극히 일부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대중이 과학화된다면 그 대중은 과학의 일부분이 아니라 과학 전체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필히 대중의 ‘학습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박 연구원이 말한 ‘학습 근육’이란 어려운 과학을 대중이 쉬운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학습 능력을 의미한다. 학습 근육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박 연구원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교과서주의’다. 대중을 위해 나온 현대물리학 관련 서적 100권에 들어있는 지식을 대학교에서 읽는 물리 교과서 단 한 권이면 뗄 수 있다고 박 연구원은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일단 외워야 합니다. 구구단을 외우듯, 주기율표를 외우듯 우선 암기하고 친숙해져야합니다. 이해는 암기한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숙성된 후에 자동적으로 찾아오는 겁니다.”

박 연구원은 박자세의 회원이라면 주기율표를 1번 수소부터 92번 우라늄까지 모두 외우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의 수식도 함께 풀었다고 덧붙였다. 대중을 위한 과학서적은 수식을 쓰지 않기 위해 대신 길고 장황한 설명으로 지면을 할애하는데, 일단 수식을 풀고 나면 수학의 명료함 덕분에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 그런데 해당 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외우기 싫어하고 풀기 싫어하는 것들을 공부하려는 일반 대중이 과연 있을까.

마라톤의 매력은 바로 힘들다는 것

“마라톤을 하면 몇 만 명의 사람들이 뜁니다. 마라톤이 만약에 쉬우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을 겁니다. 마라톤의 매력은 바로 힘들다는 겁니다. 과학도 똑같습니다. 어렵다는 것이 바로 과학의 매력입니다.”

‘어려운 과학을 스스로 공부하려는 대중이 과연 있을까’라는 우려와 달리 박자세에는 이미 100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있다. 회원의 구성은 초등학생에서부터 노후를 즐기는 70대까지 다양하다. 모두 다 난해한 과학의 매력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질문의 답을 쉽게 줘선 안 돼요. 갈구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삶의 목표이자 원동력이 돼야 합니다.”

박 연구원은 일반 대중들을 과학의 매력에 빠트릴 수 있는 비결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박자세는 지금도 ‘시공의 춤’과 ‘원자의 춤’, ‘세포의 춤’이란 주제로 강연을 계속 하고 있다. 쉽고 재미있는 과학이 과학의 모든 것이 아니듯 ‘어려운 과학’도 과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중의 과학화’가 좀더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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