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JPL-Caltech/SSI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성은 어딜까. 푸른색 지구만큼 특별한 곳이 바로 고리를 가진 토성일 것이다.
토성의 고리는 크고, 밝고, 강렬한 매력을 자랑한다.
매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토성의 고리가, 최근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금씩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다. 그중에는 고리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연구도 있다. 토성 고리의 수명은 얼마나 남았을까. 토성을 시작으로 소행성, 지구까지 다양한 천체에 존재하거나 존재해왔던 고리에 관한 연구를 모아봤다.
NASA/JPL-Caltech/Space Science Institute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호가 촬영한 B 고리. 띠의 폭은 약 20~500km 정도다.
1610년의 어느 날, 이탈리아의 명망 있는 자연철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토성을 관찰하다 양옆으로 툭 튀어나온 두 ‘귀’를 발견했다. 과연 귀의 정체는 뭐였을까? 2년이 지난 후, 다시 토성을 관찰하던 갈릴레이는 귀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 토성(Saturn)의 어원이 된 로마 신화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의 설화처럼, 토성도 자신이 거느리던 두 자식을 잡아먹은 것일까? 1613년, 귀가 다시 나타나자 갈릴레이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귀의 정체가 드러난 건 약 40년이 지난 1650년대의 일이었다. 네덜란드 천문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토성의 귀는 토성을 둘러싼 얇고 납작한 고리’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통찰력은 토성의 고리가 사라지는 이유에 관한 설명도 제공했다. 토성의 고리는 지름이 28만 2000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지만, 두께는 얇은 곳이 겨우 10m일 정도다. 크기와 두께의 비율을 비교하자면 종잇장보다도 얇다. 그런데 토성의 자전축은 공전 면에 대해 약 26.7도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다 보면 토성의 고리면을 보는 각도가 달라지게 된다. 지구에서 토성의 고리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는 위치가 되면, 종잇장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토성의 얇은 고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같은 일이 곧 다음 달에 일어난다. 2025년 3월이 되면 토성 자전축과 지구가 토성을 바라보는 방향이 수직에 가까워져 약 1년 동안 고리를 관찰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라. 곧 일어날 토성 고리의 사라짐은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하지만 토성 고리가 인식론이 아니라 존재론적 측면에서 정말로 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NASA/JPL/University of Colorado, NASA/JPL-Caltech/SSI
토성 고리를 이루는 얼음들
토성 고리 질량의 95%는 작고 큰 얼음덩어리가 차지한다. 나머지는 미량의 암석과 먼지다.
토성의 고리 구조
토성 고리는 토성 적도에서 약 7000~8만 km의 거리에 있다. 고리 너비만 7만 km에 이른다는 뜻이다. 토성 고리에는 발견된 순서를 따라 A부터 G까지의 알파벳 이름이 붙었다.
주요 고리: 밝고 일찍 발견된 A, B, C 고리를 ‘주요 고리’라 부른다.
간극: 고리 중간중간 위성의 중력 영향 등에 의해 얼음이나 먼지가 모이지 않는 틈.
기타 고리: D, E, F, G 고리.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먼지로 이뤄졌거나, 밀도가 낮아 뒤늦게 발견된 고리들이다.
예상보다 젊은 고리, 남은 수명은 고작 수억 년?
멀리서 보면 얇은 판처럼 보이지만, 고리는 실제로 수많은 얼음덩어리와 규산염 먼지 같은 입자들이 모여서 중력 중심을 도는 계(system)이다. 지나가던 소행성이 로슈 한계 안쪽으로 들어와 부서진 잔해가 고리가 되거나, 행성이 만들어지던 초창기의 남은 물질이 안정적으로 궤도를 돌면서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있다.
“집합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중요합니다. 행성이나 위성과는 달리, 수많은 소천체가 모여서 하나의 요소를 구성하죠.” 1월 2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만난 정안영민 우주탐사그룹 선임연구원은 고리의 특징을 이렇게 강조했다. 고리는 ‘여러 소천체의 집합’이라 끊임없이 질량을 얻거나 잃는다. 한 예로 토성의 ‘E 고리’는 가까운 궤도를 도는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로 만들어졌다. 반면 토성 고리의 물은 토성의 자기력선을 따라 토성으로 떨어진다. 이를 ‘고리 비’라 부르는데, 고리가 구성 물질을 보충받는 동시에 잃기도 하는 동적인 시스템임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물질을 얻고 잃는지 계산하면 고리의 수명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토성 관련 연구가 그렇듯, 고리 연구도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의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호를 통해 꽃을 피웠다. 카시니-하위헌스호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토성 궤도를 맴돌면서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는데, 2023년 5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토성 고리에 관한 연구 세 건이 연이어 나왔다.
우선 샤샤 켐프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토성의 나이가 1~4억 년 정도로 매우 젊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doi: 10.1126/sciadv.adf8537 연구팀이 의문을 품은 부분은 ‘토성의 고리가 너무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토성 고리 질량의 95% 이상은 얼음이다. 얼음은 빛 반사율이 높아 눈에 잘 보인다. 문제는 태양계를 돌고 있는 먼지와 파편 등의 ‘미세 유성체’다. 얼음이 아닌 미세 유성체가 토성 곁을 지나가다 고리와 부딪히면 고리는 먼지가 묻은 것처럼 더러워질 것이다. 즉, 토성의 고리가 만들어진 지 오래됐을수록 고리를 구성하는 얼음이 더 더러워졌을 것이란 논리다.
그렇다면 토성 주변 우주의 먼지양과 고리에 묻은 먼지 물질의 양을 추정해 비교하면 고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연구팀은 카시니호에 실린 ‘우주 먼지 분석기(CDA)’를 이용해 토성 주변의 먼지를 수집했다. 그 결과, 토성 고리의 생성 연대는 1억~4억 년 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중생대 쥐라기 초기에 살던 공룡들은 고리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결론이었다.
나아가 미국 NASA 에임스 연구센터의 폴 에스트라다와 리처드 듀리슨 미국 인디애나대 블루밍턴 천문학과 교수가 국제학술지 ‘이카루스’에 발표한 두 건의 연구는 샤샤 교수팀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고리의 남은 수명도 겨우(?) 수억 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doi: 10.1016/j.icarus.2022.115296, 10.1016/j.icarus.2022.115221 두 연구자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고리로 들어오는 물질과 빠져나가는 물질의 흐름이었다. 카시니호는 고리의 질량은 물론, 미세 유성체를 타고 고리로 들어오는 외부 질량, 토성으로 유입되는 고리 물질의 양을 관측했다. 연구팀은 이 자료를 분석해 고리는 외부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질량을 잃고 있으며, 수억 년 후에는 천왕성처럼 고리의 희미한 잔해만 남을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고리 팬들에게는 다행히도 2024년 12월 16일, 두 논문에 관한 반박 논문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됐다. doi: 10.1038/s41561-024-01598-9 효도 류키 일본 도쿄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이 이 연구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실제로 먼지 입자는 얼음에 ‘쌓이기’보다는 빠르게 다가와 ‘충돌’한다는 것이었다.
효도 연구팀은 1~100㎛(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먼지 입자가 토성 고리를 이루는 0.01~1m 크기의 얼음덩어리에 부딪히는 현상을 시뮬레이션했다. 이때 먼지 입자는 초속 30km 정도의 속도로 얼음덩어리와 충돌한다. 이 충돌은 엄청난 열을 발생시키며 얼음과 먼지를 순간적으로 증발시켜 버린다. 충돌 결과 어두운색을 만드는 먼지는 플라스마 상태가 되어 토성의 자기장에 이끌려 토성으로 떨어지거나 우주로 빠져나가게 된다. 효도 연구팀이 그들이 찾은 토성 고리의 오염 비율을 토대로 토성 고리의 나이를 재추정하니, 태양계 나이만큼 오래됐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의 또 다른 시사점은 고리에서 토성으로 떨어지는 물의 근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카시니호가 관찰한, 토성으로 떨어지는 엄청난 양의 물의 근원이 고리 자체가 아니라 미세 유성체의 충돌로 만들어진 물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효도 연구팀의 추측이 맞다면, 토성 고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토성을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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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고리의 위상 변화
토성의 자전축은 공전 면에 대해 약 26.7도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고리를 보는 각도도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