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강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꿈이 끝내 좌절됐다. 6월 10일 오후 5시 1분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가 이륙 2분여 만에 폭발하면서 우주궤도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사고 직후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나로호가 이륙 137.19초까지 정상적으로 날다가 통신이 두절됐다”며 “추락 원인으로 1단 액체로켓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를 공동 개발한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와 실패조사위원회(FRB)를 꾸려 폭발 원인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나로호 발사 실패로 2020년 순수 우리 힘으로 독자 개발할 한국형 소형위성발사체(KSLV-II)의 개발 일정이 차질을 빚게 돼 한국의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통신 두절 뒤 3차례 폭발
나로호는 예정일보다 하루 늦은 6월 10일 오후 5시 1분 화창한 날씨 속에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당초 나로호는 전날인 6월 9일 오후 5시경 발사하기로 잠정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륙을 4시간 앞두고 발사대 인근에 설치된 소화전의 소화용액이 터져 나오면서 발사가 중지됐다. 이날 발사 시간은 나로호에 실려 있는 과학기술위성 2호가 우주궤도 진입과 동시에 태양에너지를 가장 잘 받을 수있는‘하늘 문이 열리는 때’를 특별히 맞춰 정해졌다. 6월에는 오전 4시 10분~오전 8시 45분, 오후 4시 25분~오후 6시 45분 두 차례 하늘 문이 열린다.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솟아오른 나로호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속도와 고도를 높였다. 이륙 55초 뒤 TV를 통해 나로호가 엄청난 중력을 이기며 음속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과정이 순조로워 보였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륙 후 5분이 흐르자 TV 화면에 나로호가 이륙한 지 약 137초 뒤 통신이 두절됐다는 자막이 갑자기 떴다. 나로호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고도와 위치, 속도, 엔진 압력을 담은 무선 신호가 갑자기 끊겼다는 뜻이다. 나로호가 고도 70km에, 나로우주센터에서 수평거리로 87km 떨어진 곳을 날아가고 있을 때였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사고 직후 열린 기자 회견에서“텔레메트리(원격자료수신장치) 신호가 끊기기 직전 나로호 상단 로켓에 붙어있는 폐쇄회로 카메라 화면에 섬광이 번쩍거린 사실을 확인했다”며 “나로호가 비행 중 폭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이 섬광을 포착한 폐쇄회로 카메라는 지난해 나로호 첫 발사 때 페어링(위성보호덮개)이 정상 분리되지 않은 상황을 포착한 바로 그 카메라다. 잠시 뒤 한국방송(KBS)은 나로호가 폭발한 뒤 추락하는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제주도 남단에서 촬영된 이 동영상은 나로호 1단 엔진이 비정상적으로 붉고 큰 불꽃을 내뿜는 상황을 포함해 3차례 잇따라 작은 폭발이 일어난 순간과 나로호가 추락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교과부와 항우연은 사고 직후 “정확한 사고 원인은 한국과 러시아 기술자들이 구성한FRB에서 텔레메트리 정보를 정밀 분석해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1단 엔진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는 약 11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된 복잡한 기계이다 보니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국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공급한 1단 액체로켓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1단 액체로켓은 이륙 직후부터 229초까지 몸무게만 140t이 넘는 나로호를 우주 궤도에 올려놓는 기능을 담당한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나로호에서 무선 신호가 끊긴 시간이 137.19초인 점을 보면 1단 액체로켓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웅섭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방송사 촬영 영상을 분석한 결과 처음 폭발이 일어난 지, 약 0.5초 뒤 두 번째 폭발이, 그로부터 약 5~10초 뒤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며 “1단에서 연료나 산화제가 누출됐다가 137.19초 이후 단계적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단 액체로켓, 연소 불안정 문제 일으켰나
50년간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발사체가 실패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로켓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높다. 실패한 우주발사체 10기 중 6기가 로켓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폭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단 액체로켓 기술을 ‘극한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중력을 이기고 대기권으로 올라가기 위해 1단 액체엔진의 연소실은 326기압, 3000℃가 넘는 극한 환경이 조성된다.
연소실 압력이 조금 더 떨어지거나 다른 조건이 조금만 안 맞아도 우주궤도 진입에 실패한다. 그만큼 위험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우주발사체의 비행 실패 요인 중에서도 로켓이 폭발하는 원인은 대개 기계적인 결함과 전기적 문제 두 가지로 압축된다.
발사 때나 음속 돌파 때 충격으로 용광로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엔진의 연소실이나 슈퍼태풍보다 빠른 속도로 연료를 뿜어내는 터보펌프, 이를 조종하는 각종 밸브에 기계적 결함이 생길 경우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소실 내부 단열 장치에 균열이 생기면서 폭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고 직후 엔진 연소 전문가인 항우연 관계자는 “나로호가 날아갈 때 파란색 불꽃을 내다 이내 불꽃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며 “이는 연료와 산화제의 양이 정상적인 비율로 타고 있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나로호의 경우 산화제인 액체산소와 연료인 케로
신의 정상 비율은 약 2.4 대 1인데 연료가 이보다 많아지면 엔진 안에서 불안정 연소가 일어나 화염이 붉게 변한다.

펌프에 연결된 관의 일부가 막혔거나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담아두는 탱크에 균열이 생겼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로켓 전문가들은 “연소실 압력이 큰 폭으로 주기적인 변동을 일으키거나 불규칙하게 바뀔 때 불안정 연소가 일어난다”며 “연소 불안정은 거의 모든 엔진 개발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불안정 연소는 강한 진동을 로켓에 전달하기 때문에 로켓 자체나 민감한 제어장치, 탑재체인 인공위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켓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발생하거나 전기 불꽃이 일면서 순식간에 폭발력이 강한 산화제와 연료(케로신)에 불이 옮겨 붙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로호는 6월 7일 오전 발사대로 이송된 뒤 발사대와 로켓 연결 부위에 대한 점검 과정에서 전기신호가 불안정한
현상이 발견돼 기립이 지연됐다. 또 비행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엔진에 엉뚱한 명령을 내려 오작동을 일으켰거나 엔진과 연료 펌프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폭발을 유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패원인 두고 한·러 공방
나로호는 지난해 8월 25일 첫 발사에서 이륙 216초 뒤 페어링 하나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위성을 제 궤도에 올리는데 실패했다. 비록 첫 발사에 실패했지만 나로호 1차 발사는 국내 연구진이 적잖은 로켓 발사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차 발사 시도 과
정에서 자동발사시퀀스의 오류를 잡아냈고 덕택에 나로호의 안전을 지켜냈다. 발사 당시 오작동을 일으켜 혼란을 빚었던 발사지휘센터(MDC) 화면에 나타난 오류도 실패를 통해 찾아낸 값진 성과다. 첫 발사 때 화염에 떨어져 나간 화염 분출구의 콘크리트 구조물도 대폭 보강했다. 이주진 항우연 원장은 이번 2차 발사 직전 “발사에 성공할 확률이 90%에 이른다”며 성공을 자신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발사에 성공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공급한 1단 액체엔진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엔진이라는 점을 들어 실패 가능성을 이미 경고했었다.
나로호의 1단 액체로켓은 러시아가 개발 중인 신형 앙가라 발사체의 RD-191엔진을 변형한 신형 모델로 아직까지 단 한 차례의 발사 경험이 없다. 이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한 러시아의 NPO 에네르고마시는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서 “KSLV-I 로켓발사체(나로호) 엔진은 개발 중인 RD-191 프로토타입”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난해 첫 발사에 실패한 직후 NPO 에네르고마시 총감독 드미트리 파코모프는 “1단 로켓이 제 성능을 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나로호가 첫 발사에 실패한 뒤 올해로 예정된 RD-191모
델의 발사 계획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이는 나로호 1단 로켓이 아직 시험 중인 모델의 개량 버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이번 사고 직후 “러시아와 공동으로 나로호 발사 실패 원인을 엄격히 조사하겠다”며 “그 뒤 3차 발사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 측에 책임이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1단 액체로켓이 이번 발사의 실패 요인일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한 셈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나로호가 첫 번째 발사에 실패한 직후 최대 3번까지 동일 발사체를 쏠 수 있도록 러시아 측에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 한국이 개발한 부분에 문제가 없었을 때만 3차례 발사를 할 수 있다. 러시아 측은 1단 로켓의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책임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발사 때는 국내 기술로 만든 페어링이 분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번 실패 원인이 또 다시 상단 로켓에 있을 경우 더 이상 발사를 요구하기 힘들다.
러시아 측이 한국 측이 제시한 실패 원인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관영방송국 ‘러시아의 소리’는 나로호 실패 직후 인테르팍스를 인용해 “나로호 폭발 전 노즈콘(페어링·위성보호덮개)이 먼저 분리됐다”며 한국이 만든 상단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로켓이 폭발하기 이전에 한국이 만든 페어링에 이상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도 러시아항공산업연구원 연구원의 분석을 인용해 “2단 발사체가 예정보다 빨리 분리돼 나로호가 발사에 실패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나로호 엔진 제작사 NPO 에네르고마시 역시 “이번 나로호 발사 실패는 제어장치 결함 때문”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이런 러시아의 반응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관계자들이 나로호의 실패 원인을 처음부터 1단 엔진 폭발로 지목한 점에 대한 방어 논리 차원에서 이뤄진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만든 로켓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발사체라는 점에서 이번 실패 요인을 섣불리 1단 액체로켓의 문제로 몰고 갈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따라서 한·러 기술자들로 구성된 FRB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실제 3차 발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발사 실패의 책임을 두고 한·러 간에 장기간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이 음속 돌파 이후 상단로켓에서 발생한 기계적 또는 전기적 충격이 1단 액체로켓을 폭발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을 제기할 경우 3차 발사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특히 단 액체로켓의 압력과 내부 온도, 엔진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텔레메트리 데이터는 러시아 측만 접근할 수 있다.
국내외 사정도 여의치 않다. 러시아 측은 나로호를 발사하기 위해 파견된 자국 연구진의 피로감이 겹친 데다 앙가라 로켓 개발 일정마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발사를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3차 발사에 인력과 예산을 추가 투입할 경우 올해부터 예산이 반영된 후속발사체인 KSLV-II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된다. 국내에는 로켓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액체로켓 엔진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또 한 차례 더 발사할 경우 2020년이라는 KSLV-II 발사 목표 시점을 시간상 맞추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3차 발사를 강행할 경우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 자체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두 차례 발사 실패로 한국이 만든 상단로켓 기술을 완벽하게 검증하지 못했다”며 “국민 정서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3차 발사가 필요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면 우주개발 사업 자체가 좌초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주개발에 나설 기초체력 다져야
지난해 교과부와 항우연은 나로호 발사 실패 직후 ‘절반의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실패를 교훈 삼고 발사 준비 과정에서 노하우를 얻은 부분이 많다는 점을 100% 인정하더라도 우주개발 역사에서 ‘절반의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나로호 발사 실패 직후 홈페이지에 나로호 발사 실패를 명시했다. ‘성공’ 아니면 ‘실패’뿐이다. 문제는 우주발사체를 독자 개발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실패로 냉정히 평가하고 바닥부터 차분히 기초를 다지는 연구문화와 장기적 관점의 과학행정이 국내에서는 아직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은 아직까지 나로호의 1단 액체로켓(추력 170t)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30t급 액체로켓 기술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최근 증폭되고 있는 러시아와의 우주협력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월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는 “러시아 1단 로켓을 사용했다고 나로호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일부에서 일고 있는 러시아와의 우주협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어렵게 획득한 첨단 기술을 쉽게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러시아가 기술 이전에 소극적이라고 감정적으로 치우칠 게 아니라 두 나라가 어떤 계약을 맺었고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나로호 2차 발사 실패를 계기로 우주개발에 대한 인식과 기초체력을 다시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영근 교수는 “한국 우주발사체 사업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급박하게 진행하다 보니 기반 기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며“이제는 자체적인 액체로켓 기반 기술과 인원, 예산을 확보하고 산업체를 양성해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 “표본 엔진이 있어도 신형 엔진 개발에 최소 7~8년 이상 걸리는 해외 사례만 보더라도 2020년까지 75t급 액체로켓을 개발하고 이를 4개 이어붙이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며 “충분한 예산과 감리 시스템, 전문가 조직을 갖춰 현실성이 있는 방식으로 우주 발사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 두절 뒤 3차례 폭발
나로호는 예정일보다 하루 늦은 6월 10일 오후 5시 1분 화창한 날씨 속에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당초 나로호는 전날인 6월 9일 오후 5시경 발사하기로 잠정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륙을 4시간 앞두고 발사대 인근에 설치된 소화전의 소화용액이 터져 나오면서 발사가 중지됐다. 이날 발사 시간은 나로호에 실려 있는 과학기술위성 2호가 우주궤도 진입과 동시에 태양에너지를 가장 잘 받을 수있는‘하늘 문이 열리는 때’를 특별히 맞춰 정해졌다. 6월에는 오전 4시 10분~오전 8시 45분, 오후 4시 25분~오후 6시 45분 두 차례 하늘 문이 열린다.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솟아오른 나로호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속도와 고도를 높였다. 이륙 55초 뒤 TV를 통해 나로호가 엄청난 중력을 이기며 음속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과정이 순조로워 보였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륙 후 5분이 흐르자 TV 화면에 나로호가 이륙한 지 약 137초 뒤 통신이 두절됐다는 자막이 갑자기 떴다. 나로호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고도와 위치, 속도, 엔진 압력을 담은 무선 신호가 갑자기 끊겼다는 뜻이다. 나로호가 고도 70km에, 나로우주센터에서 수평거리로 87km 떨어진 곳을 날아가고 있을 때였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사고 직후 열린 기자 회견에서“텔레메트리(원격자료수신장치) 신호가 끊기기 직전 나로호 상단 로켓에 붙어있는 폐쇄회로 카메라 화면에 섬광이 번쩍거린 사실을 확인했다”며 “나로호가 비행 중 폭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이 섬광을 포착한 폐쇄회로 카메라는 지난해 나로호 첫 발사 때 페어링(위성보호덮개)이 정상 분리되지 않은 상황을 포착한 바로 그 카메라다. 잠시 뒤 한국방송(KBS)은 나로호가 폭발한 뒤 추락하는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제주도 남단에서 촬영된 이 동영상은 나로호 1단 엔진이 비정상적으로 붉고 큰 불꽃을 내뿜는 상황을 포함해 3차례 잇따라 작은 폭발이 일어난 순간과 나로호가 추락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교과부와 항우연은 사고 직후 “정확한 사고 원인은 한국과 러시아 기술자들이 구성한FRB에서 텔레메트리 정보를 정밀 분석해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1단 엔진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는 약 11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된 복잡한 기계이다 보니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국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공급한 1단 액체로켓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1단 액체로켓은 이륙 직후부터 229초까지 몸무게만 140t이 넘는 나로호를 우주 궤도에 올려놓는 기능을 담당한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나로호에서 무선 신호가 끊긴 시간이 137.19초인 점을 보면 1단 액체로켓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웅섭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방송사 촬영 영상을 분석한 결과 처음 폭발이 일어난 지, 약 0.5초 뒤 두 번째 폭발이, 그로부터 약 5~10초 뒤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며 “1단에서 연료나 산화제가 누출됐다가 137.19초 이후 단계적으로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단 액체로켓, 연소 불안정 문제 일으켰나
50년간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발사체가 실패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로켓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높다. 실패한 우주발사체 10기 중 6기가 로켓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폭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단 액체로켓 기술을 ‘극한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중력을 이기고 대기권으로 올라가기 위해 1단 액체엔진의 연소실은 326기압, 3000℃가 넘는 극한 환경이 조성된다.
연소실 압력이 조금 더 떨어지거나 다른 조건이 조금만 안 맞아도 우주궤도 진입에 실패한다. 그만큼 위험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우주발사체의 비행 실패 요인 중에서도 로켓이 폭발하는 원인은 대개 기계적인 결함과 전기적 문제 두 가지로 압축된다.
발사 때나 음속 돌파 때 충격으로 용광로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엔진의 연소실이나 슈퍼태풍보다 빠른 속도로 연료를 뿜어내는 터보펌프, 이를 조종하는 각종 밸브에 기계적 결함이 생길 경우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소실 내부 단열 장치에 균열이 생기면서 폭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고 직후 엔진 연소 전문가인 항우연 관계자는 “나로호가 날아갈 때 파란색 불꽃을 내다 이내 불꽃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며 “이는 연료와 산화제의 양이 정상적인 비율로 타고 있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나로호의 경우 산화제인 액체산소와 연료인 케로
신의 정상 비율은 약 2.4 대 1인데 연료가 이보다 많아지면 엔진 안에서 불안정 연소가 일어나 화염이 붉게 변한다.

펌프에 연결된 관의 일부가 막혔거나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담아두는 탱크에 균열이 생겼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로켓 전문가들은 “연소실 압력이 큰 폭으로 주기적인 변동을 일으키거나 불규칙하게 바뀔 때 불안정 연소가 일어난다”며 “연소 불안정은 거의 모든 엔진 개발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불안정 연소는 강한 진동을 로켓에 전달하기 때문에 로켓 자체나 민감한 제어장치, 탑재체인 인공위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켓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가 발생하거나 전기 불꽃이 일면서 순식간에 폭발력이 강한 산화제와 연료(케로신)에 불이 옮겨 붙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로호는 6월 7일 오전 발사대로 이송된 뒤 발사대와 로켓 연결 부위에 대한 점검 과정에서 전기신호가 불안정한
현상이 발견돼 기립이 지연됐다. 또 비행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엔진에 엉뚱한 명령을 내려 오작동을 일으켰거나 엔진과 연료 펌프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폭발을 유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패원인 두고 한·러 공방
나로호는 지난해 8월 25일 첫 발사에서 이륙 216초 뒤 페어링 하나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위성을 제 궤도에 올리는데 실패했다. 비록 첫 발사에 실패했지만 나로호 1차 발사는 국내 연구진이 적잖은 로켓 발사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차 발사 시도 과
정에서 자동발사시퀀스의 오류를 잡아냈고 덕택에 나로호의 안전을 지켜냈다. 발사 당시 오작동을 일으켜 혼란을 빚었던 발사지휘센터(MDC) 화면에 나타난 오류도 실패를 통해 찾아낸 값진 성과다. 첫 발사 때 화염에 떨어져 나간 화염 분출구의 콘크리트 구조물도 대폭 보강했다. 이주진 항우연 원장은 이번 2차 발사 직전 “발사에 성공할 확률이 90%에 이른다”며 성공을 자신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발사에 성공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공급한 1단 액체엔진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엔진이라는 점을 들어 실패 가능성을 이미 경고했었다.
나로호의 1단 액체로켓은 러시아가 개발 중인 신형 앙가라 발사체의 RD-191엔진을 변형한 신형 모델로 아직까지 단 한 차례의 발사 경험이 없다. 이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한 러시아의 NPO 에네르고마시는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서 “KSLV-I 로켓발사체(나로호) 엔진은 개발 중인 RD-191 프로토타입”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난해 첫 발사에 실패한 직후 NPO 에네르고마시 총감독 드미트리 파코모프는 “1단 로켓이 제 성능을 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나로호가 첫 발사에 실패한 뒤 올해로 예정된 RD-191모
델의 발사 계획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이는 나로호 1단 로켓이 아직 시험 중인 모델의 개량 버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이번 사고 직후 “러시아와 공동으로 나로호 발사 실패 원인을 엄격히 조사하겠다”며 “그 뒤 3차 발사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 측에 책임이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1단 액체로켓이 이번 발사의 실패 요인일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한 셈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나로호가 첫 번째 발사에 실패한 직후 최대 3번까지 동일 발사체를 쏠 수 있도록 러시아 측에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 한국이 개발한 부분에 문제가 없었을 때만 3차례 발사를 할 수 있다. 러시아 측은 1단 로켓의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책임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발사 때는 국내 기술로 만든 페어링이 분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번 실패 원인이 또 다시 상단 로켓에 있을 경우 더 이상 발사를 요구하기 힘들다.
러시아 측이 한국 측이 제시한 실패 원인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관영방송국 ‘러시아의 소리’는 나로호 실패 직후 인테르팍스를 인용해 “나로호 폭발 전 노즈콘(페어링·위성보호덮개)이 먼저 분리됐다”며 한국이 만든 상단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로켓이 폭발하기 이전에 한국이 만든 페어링에 이상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도 러시아항공산업연구원 연구원의 분석을 인용해 “2단 발사체가 예정보다 빨리 분리돼 나로호가 발사에 실패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나로호 엔진 제작사 NPO 에네르고마시 역시 “이번 나로호 발사 실패는 제어장치 결함 때문”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이런 러시아의 반응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관계자들이 나로호의 실패 원인을 처음부터 1단 엔진 폭발로 지목한 점에 대한 방어 논리 차원에서 이뤄진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만든 로켓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발사체라는 점에서 이번 실패 요인을 섣불리 1단 액체로켓의 문제로 몰고 갈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따라서 한·러 기술자들로 구성된 FRB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실제 3차 발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발사 실패의 책임을 두고 한·러 간에 장기간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이 음속 돌파 이후 상단로켓에서 발생한 기계적 또는 전기적 충격이 1단 액체로켓을 폭발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을 제기할 경우 3차 발사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특히 단 액체로켓의 압력과 내부 온도, 엔진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텔레메트리 데이터는 러시아 측만 접근할 수 있다.
국내외 사정도 여의치 않다. 러시아 측은 나로호를 발사하기 위해 파견된 자국 연구진의 피로감이 겹친 데다 앙가라 로켓 개발 일정마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발사를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3차 발사에 인력과 예산을 추가 투입할 경우 올해부터 예산이 반영된 후속발사체인 KSLV-II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된다. 국내에는 로켓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액체로켓 엔진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또 한 차례 더 발사할 경우 2020년이라는 KSLV-II 발사 목표 시점을 시간상 맞추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3차 발사를 강행할 경우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 자체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두 차례 발사 실패로 한국이 만든 상단로켓 기술을 완벽하게 검증하지 못했다”며 “국민 정서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3차 발사가 필요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면 우주개발 사업 자체가 좌초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주개발에 나설 기초체력 다져야
지난해 교과부와 항우연은 나로호 발사 실패 직후 ‘절반의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실패를 교훈 삼고 발사 준비 과정에서 노하우를 얻은 부분이 많다는 점을 100% 인정하더라도 우주개발 역사에서 ‘절반의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나로호 발사 실패 직후 홈페이지에 나로호 발사 실패를 명시했다. ‘성공’ 아니면 ‘실패’뿐이다. 문제는 우주발사체를 독자 개발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실패로 냉정히 평가하고 바닥부터 차분히 기초를 다지는 연구문화와 장기적 관점의 과학행정이 국내에서는 아직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은 아직까지 나로호의 1단 액체로켓(추력 170t)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30t급 액체로켓 기술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최근 증폭되고 있는 러시아와의 우주협력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월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는 “러시아 1단 로켓을 사용했다고 나로호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일부에서 일고 있는 러시아와의 우주협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어렵게 획득한 첨단 기술을 쉽게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러시아가 기술 이전에 소극적이라고 감정적으로 치우칠 게 아니라 두 나라가 어떤 계약을 맺었고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나로호 2차 발사 실패를 계기로 우주개발에 대한 인식과 기초체력을 다시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영근 교수는 “한국 우주발사체 사업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급박하게 진행하다 보니 기반 기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며“이제는 자체적인 액체로켓 기반 기술과 인원, 예산을 확보하고 산업체를 양성해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 “표본 엔진이 있어도 신형 엔진 개발에 최소 7~8년 이상 걸리는 해외 사례만 보더라도 2020년까지 75t급 액체로켓을 개발하고 이를 4개 이어붙이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며 “충분한 예산과 감리 시스템, 전문가 조직을 갖춰 현실성이 있는 방식으로 우주 발사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