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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콩코드가 먼저 겪은 초음속 여객의 난관들

    정식 명칭 ‘아에로스파시알 콩코드’는 1969년 최초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여객기다. 최고 속도 마하 2.02까지 가속할 수 있었던 콩코드는 1976년부터 상업 운항을 시작해 2003년까지 운용됐다. 소련에서 개발한 ‘투폴레프 Tu-144’와 함께 실제로 상업 운항을 한 초음속 여객기는 단 두 기종이다.

     

    최고급 여객기로 반세기 가량 명성이 자자했으나, 콩코드는 초음속 여객기가 가진 심각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첫 번째 문제는 소음이었다. 비행기가 음속보다 빨리 날기 시작하면 ‘소닉 붐’이라 불리는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 콩코드는 이륙 과정과 초음속 비행 시의 소닉 붐으로 105dB에 달하는 소음을 만들었다. 이는 일반적인 록 콘서트에서 겪는 소음 크기와 비슷하며, 심각한 소음공해는 물론 건물의 창문이 깨지는 등의 피해도 낳았다.

     

    이 결과 뉴욕 존 F.케네디 국제공항을 비롯해 몇몇 공항에서는 소음 민원을 피하고자 콩코드의 이착륙을 금지했다. 나아가 미국연방항공청은 1973년, 육상에서의 상업용 초음속 비행을 금지하는 법을 발표했다. 콩코드는 아무도 없는 대서양을 지날 때만 초음속으로 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니 콩코드의 비행시간이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비행 가능 경로에도 큰 제약이 생겼다.

     

    콩코드의 또 다른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초음속 비행을 하면 큰 공기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음속 비행보다 훨씬 많은 연료를 써야 한다. 거기다 수송 인원도 적었다. 동시대의 다른 여객기인 보잉 747(B747)은 최대 528명까지 한 번에 수송할 수 있었던 반면, 콩코드는 수송 인원이 92~120명이었다. 그 결과 콩코드는 승객 당 100km를 나는 데 약 16.7L의 연료를 사용했다. 이는 대형 아음속 여객기가 사용하는 연료의 5~6배에 달했다.

     

    승객당 연료 소비량이 증가하자, 자연스레 항공권의 가격도 상승했다. 뉴욕-런던 항로의 경우, 콩코드의 항공권 가격이 아음속 여객기의 비즈니스석 항공권 가격을 넘을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데뷔 당시 여객기의 미래라 각광받던 콩코드는 상업 비행을 시작할 때부터 적자에 시달렸다. 2000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콩코드의 쇠락을 부추긴 결정타였고, 결국 안전성까지 도마 위에 올라 2003년 퇴역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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