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 매버릭’에는 주연배우 톰 크루즈가 실험기인 ‘다크스타’를 타고 음속의 10배에 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공기의 조종석 부근이 열기로 붉게 달아오르고, 아슬아슬하게 마하 10을 달성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조마조마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음속의 10배를 뛰어넘는 ‘극초음속기’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초음속기가 조금 더 빨라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극초음속의 세계는 초음속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탑건 다크스타’의 진짜 모델, SR-72
‘탑건: 매버릭’에 등장한 다크스타는 실제 개발 중인 항공기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기체다. 바로 미국의 항공우주 기업 록히드 마틴에서 개발 중인 정찰기, SR-72다. 정찰기는 적진 한 가운데서 첩보 활동을 하면서도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총알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총알보다 빠르게 도망가는 것이라던가?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SR-72는 실제로 이 전략을 염두에 두고 개발 중이다. 고고도에서 마하 6의 극초음속으로 비행해 적의 대응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 계획을 갖고있다(마하 5 이상의 속도를 극초음속이라고 부른다). SR-72는 적진을 누비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기체인 만큼, 개발 중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항공기 제원, 개발 배경 등 자세한 사항이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2024년 1월 초, 복수의 미국 언론은 “SR-72가 2025년에 첫 비행을 시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SR-72가 실제로 비행에 나서기까지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마하 6이라는 속도를 달성하는 것은 단순히 ‘빨라지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 연구된 바도, 설계된 적도 없는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지는 50년이 넘었다. 당장 SR-72의 전신인 SR-71 ‘블랙버드’만 해도 마하 3의 속도로 1964년의 하늘을 누볐다. 그렇다면 왜 같은 초음속인 마하 6이란 속도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일까? SR-72와 극초음속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기술적 난제를 알아보자.
난제 하나, 초고온을 견뎌라
지구 대기는 공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공기를 밀어내면, 그로 인해 발생한 미세한 압력 변화가 주변의 공기를 연쇄적으로 밀어낸다. 이처럼 압력 변화로 공기 중에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우리는 ‘소리’의 형태로 인지한다.
그러나 물체의 움직임이 소리의 속도보다 빨라지면 공기는 물체의 움직임에 따라 흐르면서 공간을 내어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지고, 물체에 그대로 부딪히게 된다. 이때부터는 물체 주변에 한꺼번에 부딪혀 밀려나는 공기가 강하게 압축돼 충격파라는 공기막을 만든다.
초음속 영역에서 충격파로 항공기가 겪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열기’다. 공기는 압축되면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로 팽창하면 온도가 내려간다. 충격파가 발생할 때 공기가 급작스럽게 압축되면서 급격한 온도 상승이 발생한다.
초음속기의 문제는 이 온도 상승 폭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SR-72의 전신인 SR-71 블랙버드 항공기는 마하 3의 온도로 비행할 때 기체 표면온도가 약 316℃에 달했다. 그런데 SR-72가 목표로 하는 마하 6은 극초음속으로 분류되는 더욱 가혹한 환경이다. 마하 6에서 기체가 견뎌야 하는 온도는 무려 1982℃로 대부분의 소재를 녹여버리는 온도다.
이러한 온도에 견디기 위해서는 탄소섬유, 세라믹 등 가공이 매우 까다로운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약 1900℃의 온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도 충분한 내구성을 갖추기까지는 여러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난제 둘, 초음속 연소 기술을 확보하라
SR-72가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항공기를 극초음속 영역으로 가속해 줄 동력, 엔진의 문제다.
항공기의 엔진은 연료 연소를 위해 대기 중의 산소를 사용한다. 엔진이 주변의 공기를 흡입한 후 연료를 분사하고, 이 혼합물에 불을 붙인다. 엔진의 연소실에서 불붙은 공기는 연소 가스를 만들며 급격히 팽창하고, 엔진 뒤쪽으로 빠르게 배출된다. 이렇게 연소 가스를 빠르게 뒤로 밀어내는 반작용으로 항공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력을 얻는다. 이때 엔진의 효율은 연소가 시작되는 온도가 높을수록 올라간다. 따라서 항공기 엔진은 흡입한 공기를 꾹꾹 눌러 담아 압축해 온도를 높인다.
여객기를 비롯해 아음속 영역에서 비행하는 항공기는 여러 겹의 바람개비처럼 생긴 블레이드를 사용해 공기를 압축한다. 이를 ‘가스터빈엔진’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엔진은 초음속기에 쓰기 힘들다. 가스터빈엔진의 블레이드는 초음속 비행 시 발생하는 충격파를 맞닥뜨리면 효율이 크게 저하될 뿐더러 그 충격으로 파손될 위험까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음속 영역에서 비행하는 항공기의 경우, 엔진 흡입구와 공기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공기를 압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충격파를 만들어 아음속으로 감속된 공기를 연소에 사용하는 엔진을 ‘램제트(Ramjet)’ 엔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램제트 엔진도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 영역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충격파는 열을 동반한다. 극초음속 비행 중 충격파를 사용해 엔진 내부에 들어오는 공기의 속도를 아음속으로 감속시키면 과도한 열이 발생해 엔진 과열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과열을 피하려면 공기를 충분히 감속시키지 못한 채 공기가 초음속으로 연소실에 흘러 들어오게 둬야한다. 즉, 초음속으로 흐르는 공기에 불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초음속 연소(SC嘄upersonic Combustion)를 응용한 램제트 엔진을 ‘스크램제트(Scramjet)’라고 부른다.
극초음속기의 문제는 아음속보다 초음속에서 연료를 연소시키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연료와 공기를 균일하게 섞는 것도, 화염을 꺼뜨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완전연소가 되도록 만드는 것도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다. 초음속 환경에서 불꽃을 유지하는 엔진을 만드는 일은, 쉽게 말하면 태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촛불을 꺼뜨리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러니 초음속 연소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스크램제트 개발의 핵심이다. 나아가 SR-72 프로젝트 전체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만들어지면 혁명 일으킬 극초음속기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 기술은 여러 나라에서 눈독을 들이는 기술이다. 하지만 극초음속 비행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줄 엔진이 아직 없다. 그래서 현재 연구는 기존의 로켓 엔진을 활용하거나, 아예 엔진이 없이 활강하는 방식을 사용해 단시간 비행만이 요구되는 미사일 개발에 집중돼 있는 상태다.
록히드 마틴에서 진행 중인 SR-72 개발 프로젝트는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 중 장시간 비행이 가능한 ‘항공기’ 형태를 채택한 몇 안되는 프로젝트다. 즉, SR-72의 성공은 극초음속 비행을 유지할 수 있는 스크램제트 엔진의 성공과 직결돼 있다. SR-72가 하늘을 날면, 진정한 의미의 극초음속 비행이 실현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임재한. 항공우주 엔지니어.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졸업후드론의자동비행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공학자로 일했다. 현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dlawogks20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