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에서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긴 비행기 한 대가 공개됐다. 비행기의 이름은 X-59,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조용한 초음속 기술(QueSST)’이 적용된 시험 기체였다. 마하 1.4(시속 1489km)의 속도를 75dB(데시벨)의 저소음으로 날 수 있다는 X-59는 과연 콩코드의 은퇴 이후 잠잠해진 초음속 여객기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을까.
유럽이나 미국처럼 먼 곳을 비행기로 여행해 본 적 있는가. 한나절 넘게 좁은 좌석에 꼼짝없이 갇혀있다 착륙하면 피곤으로 온몸이 기진맥진한다. 여객기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만도 하다. 현재 세계를 운항하며 승객을 수송하는 대부분의 여객기는 음속보다 느린 ‘아음속’, 즉 약 마하 0.84(시속 900km)의 속도로 하늘을 난다. 서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태평양을 건너는 데 약 12시간이 걸리는 적당히(?) 빠른 속도다.
여객기가 이보다 빨리 날 수는 없을까. 만약 음속보다 빠르게 나는 여객기가 있다면 전 세계를 하루 권역으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초음속 여객기(SST嘄upersonic transport)’의 아이디어다.
현재 초음속 여객기 개발의 대표 주자는 미국의 항공 스타트업 ‘붐 테크놀로지’다. 붐 테크놀로지의 초음속 여객기 ‘붐 오버추어(Boom Overture)’는 정원 64~80명에 최대 속도 마하 1.7(시속 약 1800km)로 날 수 있게 개발 중이다. 2029년 취역이 목표다. 이미 아메리칸 항공 등 항공사의 주문도 받았다. 무사히 만들어진다면 영국 런던부터 미국 뉴욕까지, 기존에 7시간 걸리던 비행을 3시간 반으로 단축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항공우주 기업 록히드 마틴도 1월 12일, 저소음 초음속기 ‘X-59’를 공개했다. X-59는 20년 전 비행을 중단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심각한 소음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조용한 초음속
핵심은 ‘충격파 줄이고 나누기’
X-59에는 ‘조용한 초음속 기술(QueSST・Quiet SuperSonic Technology)’이 적용됐다. NASA 측은 “QueSST 기술을 이용해 예전 콩코드가 내던 105dB(데시벨)에 달하는 소음을 X-59에서 75dB까지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NASA는 이를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를 차 안에서 듣는 것과 길 건너편에서 듣는 것 정도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용한 초음속 비행을 가능케 했을까. 초음속기의 심각한 소음 문제는 초음속 비행으로 만들어지는 충격파가 내는 폭발음, ‘소닉 붐’에서 온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면서 공기를 밀어낸다. 밀려난 공기는 비행기 주변으로 고압과 저압이 반복되는 파동인 ‘압력파’를 만들어내고, 이 진동이 귀에 들어오면 소리로 인식하게 된다. 만약 비행기가 음속보다 빠르게 날면, 압력파가 비행기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비행기 전면에 쌓인다. 이렇게 쌓인 압력파가 거대한 ‘충격파면’을 만들게 된다. 충격파의 앞뒤로 급격한 압력 변화가 생기며 커다란 폭발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소닉붐이다. 대개 소닉 붐은 초음속 비행 중인 비행기의 앞과 뒤에서 만들어져, 지상의 관찰자는 비행기가 지나갈 때 두 번의 ‘쾅’ 소리를 듣는다.
“즉 초음속기에서 최대한 약한 소닉 붐을 만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2월 1일 만난 김규홍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조용한 초음속기 기술의 핵심을 이같이 설명했다. 충격파는 초음속 비행 시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충격파의 크기를 작게 ‘줄이고’ 잘게 ‘나눠서’ 약한 소닉 붐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X-59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길고 뾰족한 앞부분이다. 김규홍 교수는 “조종석 앞부분의 길이가 전체 기체 길이 약 30m의 40%에 달하는 11.5m”라고 설명했다. 비행기의 앞부분을 길고 뾰족하게 만들면 초음속 비행 때 생기는 충격파면도 비행기의 몸체를 따라 점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만큼 충격파의 에너지도 분산되면서 소닉 붐도 약해진다.
1월 30일 만난 김형진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긴 기체에 숨겨진 또 다른 소음 저감 기술을 설명했다. 길쭉한 기체가 충격파가 서로 합쳐지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의 기체 여기저기서 충격파가 생기는데, 이 충격파들이 합쳐져 만드는 소음은 각 충격파가 따로 만드는 소음보다 훨씬 더 크다. 기체가 길면 기체 여기저기서 생기는 충격파가 서로 멀어지면서 합쳐질 확률이 낮아진다. 또한 비행기 겉면을 타고 흐르는 공기의 속도를 제어해 충격파들이 비슷한 각도로 만들어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충격파끼리 서로 합쳐질 가능성이 작다.
여기에 더해 김형진 교수는 X-59에 적용된 또 다른 소음 저감 기술도 소개했다. “X-59는 비행기가 뜨는 힘인 ‘양력’을 만드는 ‘양력면(lifting surface)’, 즉 날개가 크게 4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는 양력을 4개의 날개가 나눠 만들면서 충격파도 4개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초음속 상태에서 양력이 생기려면 충격파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주 날개 하나에서 양력을 만들면 충격파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다. X-59는 4개의 양력면에서 작은 충격파 4개를 만들어, 하나의 큰 충격음 대신 자잘한 충격음 여러 개를 만드는 전략을 선택했다.
초음속기의 다른 문제들,
경제성과 환경
소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애쓰다 보니, X-59에선 희생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조종석 앞쪽이 매우 길고 좁아서 조종사는 앞을 볼 수 없다(!). 그래서 X-59에는 ‘외부 비전 시스템(XVS)’이라는 장치가 설치됐다. 비행기 앞쪽에 장착된 카메라를 사용해, 전방 시야를 증강현실로 보여주는 장치다.
콩코드에 비해 최고 속도도 줄었다. 콩코드는 시속 2000km가 넘었지만, X-59의 순항 속도는 마하 1.4인 시속 1489km다. 75dB이라는 자체 소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속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도 떨어진다. 김규홍 교수는 “초음속기의 엔진 효율은 아음속기보다 떨어져 훨씬 많은 연료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이 낮은 또 하나의 이유는 수송 인원이다. 초음속기는 충격파에 의한 기체의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유선형의 좁은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승객을 적게 실을 수밖에 없고, 승객 당 연료 소비량도 훨씬 많아진다.
연료 많이 먹는 비행기는 자연스레 환경 문제도 불러온다. 연료를 많이 먹는 만큼 뱉어내는 온실가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콩코드가 하늘을 날던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문제다. 김규홍 교수는 “초음속 여객기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밝혔다.
오래된 미래, 초음속 여객기
돌아올 수 있을까
“저소음 초음속기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는 6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들이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지금에서야 빛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NASA에서 직접 초음속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김형진 교수는 X-59를 포함한 최근의 초음속기 연구에 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오래전부터 마련돼 있던 소음을 줄일 이론적 아이디어가, 1990년대 들어 전산 유체역학(CFD勩omputational fluid dynamics)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테스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해 저소음 초음속 비행 기술을 저렴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됐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컴퓨터의 성능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됐다. X-59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X-59는 2024년 하반기 미국에서의 시험 비행을 앞두고 있다. 미국 전역의 도시 위를 날며 시민들의 설문 조사를 받아 초음속기 소음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상업용 육상 초음속 비행을 금지하는 연방항공청의 법률도 개정할 계획이다. 초음속 여객기가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필수 조건, 저소음 비행 기술과 규정 개선을 X-59가 맡은 것이다.
이런 노력이 초음속 여객기의 시대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 미국의 공공 정책 연구 기관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가 발표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초음속 여객기 제조업체들은 2035년까지 2000대의 초음속 여객기를 판매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5년이면 당장 10년 뒤의 일이다.
김규홍 교수는 “초음속 여객기는 만들어진다면 비싼 가격으로 소수의 부자나 사업가가 사용하는 틈새시장을 노리게 될 것”이라 추측했다. 김형진 교수는 “지금 바로 새로운 초음속 여객기 설계를 시작해도 10~15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럼에도 초음속 여객기 연구는 이어지리라 전망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는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이잖아요? 섣불리 예측하긴 어렵지만, 앞으로도 누군가는 꾸준히 초음속기를 연구하고 만들 겁니다.”
*마하. 속도의 단위. 음속에 대한 운동 물체의 속도비로 나타낸다. 마하 1은 약 초속 340m다. 실제로는 고도에 따라음속이달라지기때문에,항상마하1이초속 340m인 것은 아니다. 본문에 소개된 기체의 속도는 기체를 개발한 기업의 소개 자료를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