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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우주에 비하면 티끌도 안 되는 작은 존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기쁨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3월 4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기자의 우문(愚問)에 질문으로 답했다. 보이지도, 쉽게 감지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암흑물질 연구에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뛰어든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었다. 암흑물질은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됐다. 우주를 설명할 더 좋은 이론이 나온다면, 암흑물질은 언제라도 폐기될 수 있다. 


“아무 보잘것없는 인간이 자연에 존재하는 숨은 리듬을 잡아 인류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어요. 바로 음악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으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가치란 인류 지성을 맨 앞에서 이끄는 일이죠. 호모사피엔스라는 작은 존재가 세상을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까요? 이 과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음악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이니까.” 


양 교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운영하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Large Hadron Collider) 뮤온압축솔레노이드(CMS) 팀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장치로 꼽히는 LHC에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95개국, 600개 이상의 대학 또는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 중 하나는 21세기 과학계의 가장 주요한 탐험과제인 암흑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입자를 만들기 위해 LHC에서는 1초에 4000만 번씩 양성자 등의 입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충돌한다. 이렇게 충돌한 입자는 수백, 수천 개의 더 작은 입자로 부서진다. 마치 폭죽처럼 퍼지는 작은 입자 중에 암흑물질이 있을 수 있다. 

 

 

양 교수는 “입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그 안에 있는 쿼크와 반쿼크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때 10번 중 1번은 글루온이, 1억 번 중 한번은 힉스입자가 생기고, 암흑물질은 그것보다 더 드물게 만들어질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다양한 암흑물질 후보 중 LHC에서 만들 수 있는 건 질량범위가 1GeV(기가 전자 볼트·1GeV는 10억 eV)~10TeV(테라 전자 볼트·1TeV는 1조 eV)인 윔프(WIMP)다.


양 교수가 연구에 활용하는 CMS는 LHC 내 입자가 충돌하는 지점을 여러 겹의 검출기가 둘러싼 형태다. 충돌 과정에서 주로 방출되는 전자나 파이온, 뮤온 등 입자는 이동하면서 검출기 속 실리콘, 수정 등과 만나 반응한다. 검출기는 이 반응을 기록해 입자의 이동 위치와 에너지를 알아낸다. 그런데 암흑물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다른 물질과 쉽게 상호작용(반응)하지 않는 점이다. 암흑물질이 지나가도 검출기는 모른다는 얘기다. 이를 ‘잃어버린 에너지 사건’이라고 부른다.


“LHC에서 입자는 직선상에서 만나 충돌해요. 만약 충돌 이후 입자의 운동에너지를 분석했을 때, 충돌 이전의 운동에너지보다 에너지가 더 작게 나타났다면 그건 주변 물질과 쉽게 상호작용하지 않는 중성미자나 암흑물질이 지나갔기 때문일 겁니다. 대학원생이 와서 검출기를 끈 게 아니라면요.” 


대학원생의 소행(?)이 아닐 경우, 잃어버린 에너지 사건이 표준모형을 기준으로 계산한 예측보다 더 자주 일어났는지를 비교한다. 잃어버린 에너지 사건을 통해 중성미자가 생성될 확률은 이미 정확히 예측돼 있다. 따라서 잃어버린 에너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빈도가 예측된 것보다 잦았다면 중성미자가 아닌 우리가 모르는 물질, 즉 암흑물질이 생성됐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2018년 12월부터 두 번째 업그레이드를 위해 휴식하던 LHC는 올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다시 가동될 예정이다. 5월부터 시작될 세 번째 가동을 앞두고 지난 3월부터는 시험 가동이 시작됐다. 이번 세 번째 가동에서는 한국 연구팀이 국내 중소기업 메카로와 함께 개발해 2020년 9월 설치 완료한 뮤온검출기 GE11도 활약한다. 


양 교수가 국내 암흑물질 연구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인프라로 꼽은 것은 연구자들을 한곳에 모아놓을 연구소였다. 그는 “고에너지 물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세계 곳곳에 있다”며 “영국, 네덜란드 등 사례를 보면 전국의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30명 규모의 연구소에서 교수진이 학생들을 모아 교육한다”고 짚었다. 이어 “이런 시설을 구축하면 폭넓은 교육과 새롭고 혁신적인 검출기를 개발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해진다”며 다양한 연구를 아울러 할 수 있는 공립 연구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빅데이터 통계, 초정밀·초고속 과학, 초대형 컴퓨터 등 거대과학을 통해 성장하는 분야가 많습니다. CERN에서 WWW(World Wide Web)가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죠. LHC 연구팀은 이론에 있어서 가장 앞서가는 집단입니다. 이 이론을 현실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산업이 자라납니다.”

 

 

지구로부터 150만 km 떨어진 우주에는 지난해 12월 25일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있다. 암흑물질이란 개념을 처음 탄생시킨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그랬듯, JWST의 우주 관측 데이터를 통해 암흑물질의 흔적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애나 니렌버그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UC 머시드) 물리학과 교수다. 


“제 연구는 암흑물질이 작은 규모에서는 어떤 흔적을 만드는지 분석하는 겁니다. 이런 작은 흔적들은 암흑물질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크기와 모양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작은 흔적들을 분석하면 암흑물질을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을 알 수 있죠.”


니렌버그 교수의 ‘소규모에서 암흑물질 패러다임에 대한 결정적 테스트’는 JWST의 1주기(Cycle1) 관측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는 지난 3월 11일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JWST는 공간 분해능과 적외선 측정 능력이 우수하다”며 “그간 보지 못했던 영역들을 탐색해 중력렌즈 현상 등 암흑물질의 흔적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니렌버그 교수 외에도 매튜 워커 미국 카네기멜론대 물리학과 교수의 ‘왜소은하 인근 광쌍성: 아은하 단위의 암흑물질 증거 탐사’ 프로그램 또한 암흑물질이 만든 작은 흔적을 탐색할 계획이다.

 

 

 

윔프는 과학자들이 지난 30여 년간 가장 활발하게 탐색해 온 암흑물질의 주요 후보다. 3월 8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부단장은 “그동안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윔프가 존재할 질량 범위를 많이 좁혔지만, 최근들어 이론적으로 제시되는 윔프의 질량 범위가 훨씬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앞으로도 할 연구가 많다”고 했다. 


윔프 탐색은 지난 1999년 킴스(KIMS·Korea Invisible Mass Search) 실험이 그 출발점이었다. 김선기 전 서울대 교수, 김영덕 세종대 교수, 김홍주 경북대 교수가 시작한 이 실험은 현재 IBS 지하실험연구단에서 이어 진행하고 있다. 그 사이 킴스 실험은 더욱 확장돼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 연구시설(Y2L) 지하 700m에 자리잡았다. 지난 2016년부터 운영 중인 코사인(COSINE)-100 검출기 외에도 AMoRE 검출기, HPGe 검출기 등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들 검출기가 700m 지하에 자리잡은 건 그 곳이 가장 고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부단장은 “윔프를 감지하는 건 우주에 채워진 당구공 사이를 날아가다가 우연히 부딪히는 것과 같다”며 “윔프는 우주에 가만히 있고, 지구가 그 사이를 움직이며 ‘윔프의 바람’을 맞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구가 우주를 여행하는 속도, 즉 윔프의 속도는 알고 있으니 검출기 속 원자핵과 윔프가 충돌했을 때 원자핵이 받는 충격량을 계산하면 윔프의 질량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핵이 윔프 외 우주 입자와 충돌해 신호에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700m 두께의 지면이 다른 우주 입자를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정밀한 실험 결과를 위해서는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이 부단장은 “올해 9월부터는 강원도 정선의 새로운 지하실험실 예미랩(Yemilab)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실험을 더 낮은 배경 방사능 아래서 진행할 것”이라며 “지하 1000m, 실험공간만 2000m2인 이 공간에서 윔프와 중성미자를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LHC 등에 비교했을 때는 작지만, 실험설비 자체로 봤을 땐 굉장히 큰 규모의 실험입니다. 새로 생긴 이 공간에 검출기 등을 만들어 설치하려면, 연구설비뿐 아니라 엔지니어, 기술자 등 소프트 인프라를 더 많이 개발해야 할 겁니다. 좋은 시설과 거대한 규모에 걸맞게 세계 무대에 나서도 손색없는 경쟁력 있는 실험을 해 볼 계획입니다.” 


한편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인 비활성 중성미자를 찾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 사례가 원자력발전소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근거리에서 감지한 네오스(NEOS) 실험이다. 이를 위해 2015년, 전남 영광 한빛 원자력 발전소 5호기로부터 20m 떨어진 곳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했다. 이 실험으로 하루 약 2000개의 중성미자 신호를 검출해냈다. 이 부단장은 “비활성 중성미자는 원자로에서 생성된 뒤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전자·뮤온·타우 중성미자 등으로 변환된다”며 “원자로 인근에서 실험하는 것이 핵심인데, 원전 20m 거리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한 사례는 네오스가 세계 최초”라고 했다. 

 

 

지구 가장 남쪽에는 사방이 얼음뿐인 사막이 있다. 이곳에는 비도, 눈도 오지 않는다. 여름이 돼도 기온이 영하 25~50℃인 곳. 과학자들은 이곳에 우주를 스쳐온 암흑물질의 지도를 그릴 거대한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IceCube)’를 지었다. 관측소의 재료는 남극의 순수한 얼음이다. 


3월 9일 오전 9시, 카르스텐 로트 미국 유타대 물리천문학과 교수(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시작했다. 로트 교수는 지난 2005년 아이스큐브를 설립할 때부터 참여해 현재는 아이스큐브 출판위원회와 연사위원회 회원으로 있다. 


“아이스큐브의 목적은 거대한 중성미자 망원경을 통해 우주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찾는 겁니다. 이 중 일부는 암흑물질이 충돌하며 생겼을 수도 있죠.” 


아이스큐브는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의 종류, 충돌 각도 등을 검출할 수 있는 장치다. 검출된 데이터를 분석해 중성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계산한다. 이를 통해 우주 전역에 펼쳐진 중성미자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이스큐브의 주된 목적이다. 우주에서 암흑물질이 충돌하며 생긴 고에너지 중성미자나 암흑물질의 후보로 꼽히는 비활성 중성미자 또한 아이스큐브에서 포착할 수 있다. 로트 교수는 “암흑물질은 은하 중심에 뭉쳐 있거나, 태양에 흡수된 뒤 태양 중심에 뭉쳐 있을 것”이라며 “이런 곳에서 온 중성미자에 주목하면 암흑물질의 간접적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왜 하필 남극에 중성미자 관측소를 세웠을까. 로트 교수는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일반 입자와 상호작용하면 뮤온이나 전자 등 입자가 발생해 자외선 영역에 가까운 푸른빛이 난다”며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쉽게 상호작용하지 않는 만큼, 중성미자 신호를 잘 잡기 위해선 거대한 탐지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우수한 광학적 성능을 가진 물질은 이 탐지기의 필수요소”라며 “남극의 순수한 얼음이 여기에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1km3 크기의 순수한 얼음을 구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로 남극이라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법이다. 


이후 관측소를 건설하기 위해 전 세계 12개국 53개 연구기관에서 온 과학자 300여 명이 아이스큐브 팀을 결성했다. 그리고 2010년, 남극점 인근 아문센 스콧 연구소 지하 1450~2450m에 관측소를 설립했다. 관측소 그 자체인 순수한 얼음에는 총 86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 전자 광학 모듈을 각각 60개씩 줄에 묶어 설치했다. 이렇게 설치된 전자 광학 모듈의 개수만 총 5160개에 달한다. 로트 교수는 연구팀의 일원으로 남극 빙하에 구멍을 뚫고, 전자 광학 모듈을 설치하는 작업부터 직접 참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우주의 구성요소에 빈칸이 있습니다.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우리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필요하죠. 입자물리학에서는 이런 순수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많은 협업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유토피아 같아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동료 과학자들의 노력에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도 세계를 알고 싶다는 꿈은 확고했다. 암흑물질 연구를 꿈꾸는 한국의 과학자 지망생들에게 “아인슈타인도 고등학생 때 반에서 가장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며 “나는 지금 꿈꾸던 연구 분야에 몸담고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전했다. 

202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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