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7월 각 신문 문화면은 무령왕릉 발굴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다. 능의 주인이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임을 밝힌 묘지석을 비롯한 수많은 유물이 출토돼, 문헌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1년 다시 한번 무령왕릉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관의 재질이 일본산 금송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무령왕릉의 관재에 쓰인 금송은 가공하기 전 지름 1.3m, 길이 3m, 무게 3.6t에 수령 3백년 이상의 것으로 당시의 무역규모로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 사실은 고대 한일관계사와 6세기 동북아시아의 대외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두 연구는 모두 40년째 나무와 더불어 살고 있는 박상진 교수의 작품이다.
전공은 목재조직학. 나무의 세포모양과 배열을 광학과 전자현미경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목질문화재와 관련된 그의 연구는 팔만대장경판의 수종 분석, 거북선의 재질 추정, 익산 미륵사지 출토 목질 유물의 수종 연구 등 나무로 된 것이라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문화재 연구에 목재조직학을 도입해 문화재의 원형과 실체를 밝히는데 힘써왔던 그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책을 냈다.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책 ‘궁궐의 우리 나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덕수궁의 5대 궁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에 얽힌 역사와, 나무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있다.
겨울에 줄기가 죽지 않는 식물인 나무는 남북한 통틀어 1천 종류쯤 있는데 그 중에서 약 2백50여종이 사진과 함께 등장한다. 나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의 사진 자료와 이 책을 위해 3년여에 걸쳐 다시 찍은 궁궐의 나무 사진들이 수록돼 있어, 책만 보아도 고궁산책과 식물원 구경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잘 쓰여진 ‘나무도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 책은 나무의 식생에 관한 자연과학서일 뿐만 아니라, 그 나무와 함께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문역사서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아온 나무살이를 듣고 싶고,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마다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저자의 나무에 대한 애정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결합돼 나무의 숨은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결인가 “오자마자 가래나무, 불밝혀라 등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그렇다고 치자 치자나무, 거짓없다 참나무…”하는 나무의 노래도 들려온다. 그리고 문득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지은이 소개 - 박상진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목재공학회 회장을 지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관재를 비롯해 침몰선박과, 사찰 건축재 등 주로나무로 된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문화재분석에 과학을 결합시키는데큰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