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주란 깊은 바다의 수면을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법칙을 탐구하는 오랜 숙명을 충실히 따라왔다.
그러나 탐구를 계속할수록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모습들이 속속 제시됐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물질의 존재를 예견했다.
인류가 가진 가장 밝은 눈으로도 보지 못하는 물질.
그래서 정체가 어둡게 가려진 ‘암흑물질’이다
‘이것’이 없는 세상에서는 은하수를 볼 수 없다. 우리은하가 나선 팔 형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별이 길게 나열된 막대 모양의 은하만 간혹 관측될 것이다. 사실 발을 디디고 밤하늘을 관측할 지구도 없다. 별이 크게 자라지 못하다 보니 암석형 행성의 재료를 만들기 전에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이것의 중력은 우주의 물질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것 없이는 성간물질이 모여 별이 되고, 은하를 이루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은하가 모인 은하단, 은하단이 모인 초은하단, 초은하단이 모인 우주 거대구조도 없다.
그러나 이것의 정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실험을 통해 관측된 모든 현상은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표준모형은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으로 구성된 세 가지 힘과 전자, 쿼크, 중성미자 등 기본 입자 17개로 구성된다. 여기에 중력을 더하면 천하무적이었다.
표준모형과 중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이 내놓은 가장 최선의 설명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주의 모습을 모두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모습 뒤에는 어떤 물질이 숨어 있을 거란 추측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빛(전자기파)을 이용해 관측할 수 없지만, 중력을 통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표준모형 밖의 새로운 물질이다. 이것을 우리는 암흑물질이라 부른다.
암흑물질, 거기에 있어야 하기에 고안됐다
1933년 스위스의 천문학자인 프리츠 츠비키는 지구로부터 3억 20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머리털 은하단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머리털 은하단에 있는 약 1000개의 은하가 회전하는 속도를 제곱해 평균을 낸 값은 초당700km로 관측됐다. 은하의 광도 질량(luminosity mass·방출하는 빛의 양으로 질량을 유추한 값)을 토대로 속도를 계산해 얻은 값보다 훨씬 빠른 수치였다. 1933AcHPh...6..110Z, doi: 10.1086/143864
은하가 예측보다 빠르게 회전한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은하의 회전 속도는 내부 물질의 중력에 비례하며, 이 중력은 은하의 질량에 비례한다. 은하의 광도 질량은 은하의 질량이 클수록 은하가 내뿜는 빛의 양이 많아지는 상관관계를 통해 추론한 질량이다. 따라서 광도 질량을 통해 예측한 은하의 회전 속도보다 실제 은하의 회전 속도가 더 빨랐다는 건, 은하 속에 빛을 내지 않으면서 질량을 가진 물질이 숨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야 은하가 예상보다 더 큰 중력을 가지고 더 빠르게 회전했을 테니까. 츠비키는 잃어버린 질량의 정체로 ‘암흑물질(dunkle materie)’이란 새로운 물질을 지목했다. 암흑물질은 표준모형의 기본 입자로 구성되지 않으면서 빛을 통해 관측할 수 없는 물질로 정의됐다.
츠비키의 계산 결과에 따르면 머리털 은하단 속 암흑물질의 질량은 은하의 광도 질량에 비해 500배 컸다. 90여 년 전 계산이니 오차는 있다. 츠비키가 계산에 활용한 허블 상수는 현대에 측정한 허블 상수보다 약 10배 크다. 이를 고려해 머리털 은하단 속 암흑물질의 질량을 다시 계산해 보면 암흑물질의 질량은 은하의 광도 질량보다 약 10배 크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암흑물질 이론은 츠비키가 발표한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를 비롯한 외부 은하나 우리은하의 회전 속도를 관측하려는 노력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접어들며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제시한 관측 결과가 암흑물질의 새로운 증거로 떠올랐다. doi: 10.1086/150317, doi: 10.1086/182804
우리은하와 같은 나선 은하에서 별은 은하 중심을 중점으로 원운동을 한다. 은하의 광도 질량 분포를 보면, 대부분 은하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질량이 모여 있는 원반 형태다. 은하의 회전 속도는 내부 물질의 중력에 비례한다. 따라서 질량이 모여 있는 은하 중심에 가까이 있는 별은 이론적으로 은하 외곽에 있는 별보다 훨씬 빠르게 회전해야 한다. 이를 뉴턴의 중력 이론으로 풀어내면, 별의 회전 속도는 은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근에 반비례해 줄어든다는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그런데 루빈의 관측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별의 회전 속도는 은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나타났다.
이 현상 또한 암흑물질로 설명할 수 있다. 암흑물질이 은하 원반을 둘러싼 구 모양으로 분포한 형태를 암흑물질 헤일로라 부른다. 암흑물질 헤일로는 원반과 함께 회전하지는 않으면서, 질량만 더해 준다. 그 덕에 은하 내부 중력이 커져 은하 중심에서 먼 별들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은 채 빠르게 회전할 수 있던 것이다. 암흑물질 헤일로는 나선 은하가 안정된 원반 형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라고도 알려져 있다. doi: 10.1086/152513
츠비키가 제안한 암흑물질이 루빈에 의해 부활한 이후로 암흑물질의 존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은하단의 질량, 나선 은하의 회전 속도와 더불어 중력 렌즈 효과, 총알 은하단 등 암흑물질의 증거가 현재까지도 계속 제시되고 있다.
차가운 암흑물질이 뭉친 곳을 따라 별이 모였다
우주는 어떤 한 점에서 벌어진 대폭발로부터 시작했다. 이를 빅뱅(Bigbang)이라고 부른다. 빅뱅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138억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벌어진 우주의 팽창과 물질의 성장을 설명하는 학문이 우주론이다. 우주의 출발점은 모든 물질이 녹아 융합된 뜨거운 플라스마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빅뱅 직후다. 이 시기 우주는 온도와 밀도가 너무 높아 입자들이 뭉쳐 원자를 형성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후 우주는 단열 팽창하며 식기 시작한다. 아주 높은 온도를 가지던 한 점이 외부와 열에너지를 교환하지 않고 부피만 늘어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이 팽창해 생긴 우주 공간의 열에너지 분포는 위치에 상관없이 균일해야 한다.
균일한 열에너지 분포는 우주배경복사의 형태로 남는다.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는 1948년 조지 가모프에 의해 예견됐다가, 1965년 아노 앨런 펜지어스와 로버트 우즈로 윌슨이 라디오 안테나의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발견한다. 이를 더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 미국은 1989년 우주배경복사 탐사 위성 코비(COBE)를 쏘아 올렸다. 코비가 보내온 데이터를 종합하면 우주배경복사는 절대온도 2.7K인 흑체복사의 분포를 따르고, 관측의 위치와 방향에 상관없이 거의 일정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이라 부른다.
여기서 ‘거의 일정하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점묘화를 멀리서 볼 때 초록색으로 보이던 부분은 가까이에서 보면 노란색 점과 파란색 점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주배경복사는 큰 규모에서는 균일하게 분포하지만, 미세한 규모에서는 균일하지 않다(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2001년엔 더블유맵(WMAP) 위성이, 2009년엔 플랑크(Planck) 위성이 발사돼 우주배경복사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한 결과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이 밝혀졌다. 현재는 우주배경복사가 측정 방향에 따라서 전체 면적의 10만 분의 1 정도로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은 초기 우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주배경복사가 불균일하다는 건, 우주의 온도 분포가 불균일하다는 뜻이다. 중력의 도플러 효과에 따르면 온도 분포가 불균일하다는 것을 중력 분포가 불균일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중력 분포가 불균일하다는 것은 물질의 분포가 불균일하다는 뜻이 된다. 물질의 불균일한 분포는 은하와 우주 거대구조의 형성에 씨앗이 된다. 물질이 더 많이 모인 곳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중력이 크다. 이 중력에 의해 더 많은 물질이 모이면서 별이 생기고, 은하가 생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모형의 입자들로는 물질의 불균일한 분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주 초기에 물질과 빛은 만원 버스 속 승객들처럼 붙어 있었다. 친구들과 만원 버스를 함께 탄다고 가정하자. 친구들과 뭉쳐서 이야기하고 싶어도 승객들이 너무 많아 밀리다 보면 뿔뿔이 흩어지기 일쑤다. 이처럼 우주 초기엔 빛의 압력 때문에 물질끼리 모이지 못한다.
승객 사이를 마치 유령처럼 통과해 지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 암흑물질은 빛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물질이다. 그래서 빛의 압력이 강할 때에도 모여 중력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 중력장에 다른 물질들이 모여들며 우주 거대구조가 차츰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빅뱅 이후 암흑물질과 물질이 우주 거대구조를 형성하는 과정,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이 생겨나고 전파된 과정 등 우주의 진화를 기술하는 이론을 우주론의 표준모형(ΛCDM·람다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이라고 한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물을 종합해 계산하면 우주의 질량-에너지 분포에서 27%는 암흑물질이, 68%는 암흑 에너지가 차지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물질은 단 5%에 불과하다.
수정뉴턴역학과 은하의 회전속도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암흑물질 또한 우주를 설명하는 한 가지 학설일 뿐이다. 암흑물질을 도입하지 않고 나선 은하의 회전 속도를 설명할 방법도 꾸준히 연구돼 왔다. 1983년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모르더하이 밀그롬은 뉴턴 역학을 수정해 별의 가속도가 충분히 작은 경우에 대한 가정을 내놓았다. 이를 수정 뉴턴 역학(MOND·Modified Newtonian Dynamics)이라고 한다. 수정 뉴턴 역학을 적용하면 나선 은하 위의 별이 회전하는 속도가 중심으로부터 거리에 상관없이 일정한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수정 뉴턴 역학은 질량이 무거운 은하에서 관측된 은하 질량과 회전 속도의 관계식(Baryonic Tully-Fisher Relation)를 쉽게 만족시킨다. doi: 10.1086/161130, doi: 10.12942/lrr-2012-10
그러나 수정 뉴턴 역학만으로는 암흑물질의 다양한 증거들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은하단의 질량 문제, 왜소 은하(dwarf galaxy)의 회전 속도 곡선, 총알 은하단, 우주의 거시구조, 우주배경복사 등 수정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암흑물질과 수정 뉴턴 역학을 합쳐 초유체 암흑물질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이론이 제기된 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이를 증명하는 과정은 때로는 수백~수십 년이 걸린다. 블랙홀의 개념이 탄생한 건 1783년 일이다. 그리고 블랙홀을 처음으로 관측해낸 건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2019년이었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힉스 보손의 개념을 도입한 건 1964년, 실제로 힉스 입자가 관측된 건 2013년 일이다.
암흑물질이 정말로 존재할지. 혹은 수정 뉴턴 역학이 답일지, 또 다른 답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우주를 밝혀내는 일은 전체 그림을 모르는 상태에서 퍼즐을 맞추는 과정과 같다. 비어 있는 공간에 알맞은 퍼즐 조각을 상상하고, 찾는다. 이 과정을 통해 인류 과학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