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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자동차산업에서 많은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왔다. 자동차는 제품 가격이 비싸고 개발비용이 많이 들며 상품 수명이 비교적 긴데 비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동차는 한동안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보다는 이동 속도를 높이거나 운전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전을 하게 돕는 등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을 250~350개의 부품기업으로부터 공급받아 제작된다. 많은 부품과 소재가 차례로 투입되는 등 공정간 협력과 조화가 필요하다. 기능이 각기 다른 부품 사이의 유기적 연계도 중요하다. 자동차를 ‘기계공학의 정수’ ‘기계공학의 꽃’이라고 하는 이유다. 


자동차기업이 일정 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유지하려면 제품 설계, 제조, 생산관리 측면에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산업 전반적으로 보수적 분위기가 강하고, 혁신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간 자동차산업에서 신생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지 않고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어온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연결, 자율주행, 공유, 전동화… 자동차산업의 변화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보수적이던 자동차산업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각국이 환경과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에 의한 환경오염이 늘어나고 교통사고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비용에 각국 정부가 부담을 느끼는 탓이다.
게다가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산업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구조적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 등 신흥 자동차 생산국을 견제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유도해 자국 자동차산업에 활력을 주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현재 자동차산업은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지원이 이뤄진데다, 정보기술(IT)과 접목되면서 혁신이 유래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변화는 연결(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ing), 전동화(electrification)라는 네 단어로 정리된다. 


연결은 통신 모듈을 통해 자동차 내외부가 연결된다는 뜻이다. 자동차 자체가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 자율주행은 센서, 알고리즘 등 IT를 이용해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비자동화(레벨0), 운전자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부분적인 자율주행(레벨1)부터 운전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완전자율주행(레벨5)까지 구분된다. 주요 완성차 기업에서는 2025년 레벨5 수준까지 상용화할 것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공유화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도 개인의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가치관에서 공유하는 가치관으로 전환함으로써 승차 공유와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확산될 수 있다. 자동차의 이용 거래 방식이 차량을 거래하는 것에서 시간 및 이동 거리를 거래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동화는 기존 내연기관차의 배출가스 및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 자동차의 동력원을 배터리나 수소연료전지 등으로 대체하는 기술변화를 의미한다.

 


자동차산업 새 동력 전기차·수소차

 

이 중 전기차와 수소차 등 전기동력차 시장은 성장이 정체된 기존 자동차 시장과 달리 장기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자동차산업 발전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동력차의 수요에 대해서는 기관마다 다소 다르게 예측하고 있지만, 대체로 배터리 성능 개선과 가격 인하에 힘입어 2025년부터 시장규모가 커지고 2030년에는 판매되는 신차의 약 30%가 전기동력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1년 3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보고서 ‘2020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 변화’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44.6% 증가한 약 290만 대에 달했다. 전체 신차 판매량의 3.6%다. 2020년 자동차 시장규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년보다 침체된 것을 고려할 때,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 것은 유럽연합(EU)이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수요 진작을 위해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는 등 세계 시장선점 경쟁이 본격화한 덕분이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은 강화된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신규 모델 출시를 늘렸고,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기차 모델의 수가 늘어난 것도 전기차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의 부상은 자동차산업의 큰 변화를 이끈 방아쇠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다. 테슬라는 2012년 프리미엄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산업에 진입했다. IT를 활용한 배터리 관리시스템으로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고 슈퍼차저 (supercharger)라는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으로 주행거리를 보완해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이후 가격을 크게 낮춘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하고 딥러닝을 활용한 오토파일럿이라는 반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하는 등 혁신성을 앞세워 기존 자동차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테슬라는 2020년 약 45만대를 판매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20.8%를 차지했다. 2018년 이후 세계 1위 전기차기업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비야디(BYD)도 전기차로 새롭게 자동차산업에 진입했다. BYD는 배터리 제조기업으로 시작해 2003년 중국의 국영기업인 친추안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 배터리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BYD는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2018년과 2019년 모두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판매실적 2위를 기록했다.


2018년 전후로 전통적인 완성차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자동차 생산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면서 그간 구축된 브랜드와 판매망을 활용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폭스바겐과 현대기아차, 토요타 등이다. 이들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한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전기차 제조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기동력차 시장의 확대는 부품산업에도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흡기계, 배기계, 냉각계 등 많은 기계 관련 장치, 부품이 불필요해진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2만여 개의 부품 중 30~40%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내연기관에서도 부품으로 사용됐지만, 전동화로 전환되면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부품들도 있다. 배터리, 모터, 인버터 등 전기동력 구동 부품과 공조시스템, 경량화 소재, 센서 등이다. 이를 생산하는 부품기업들은 성장성과 수익성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연기관에서 전기동력차로 업계 흐름이 넘어가며 단순히 완성차기업의 재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자동차 공급사슬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분야와 기업 넘은 합종연횡 늘어나

 

자율주행 시스템의 성장은 기존 자동차기업들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많은 전장 기술과 부품을 사용하면서 차량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자동차기업의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청신호다. 만약 자동차기업이 독자적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한다면 기존에 구축된 브랜드 경쟁력 덕분에 IT 기업보다 자율주행 시스템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IT 기업에 관련 핵심 기술이 종속된다면 자동차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이들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소프트웨어 사용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면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IT 기업이 설계하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하도급 기업으로 지위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장 부품의 중요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자동차산업에서 IT 기업과 소프트웨어 기업의 참여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과거 자동차산업이 기계 부품 위주의 제조 산업이었다면 현재는 첨단 과학기술이 융합된 첨단 산업으로 돌입하고 있다. 그렇기에 소프트웨어와 전자, 네트워크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이 서로 다른 부품 공급 구조를 형성하면서, 기존 기계 부품 중심의 부품 공급 구조도 대폭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모듈이나 시스템 형태로 부품을 완성차기업에 공급하던 하드웨어 중심의 부품기업과 함께 전동화 및 자율주행 시스템과 관련된 대형 IT 기업,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등이 새롭게 자동차산업 공급사슬에 중요한 참여자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자율주행, 전동화 관련 신기술과 모빌리티 서비스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자동차산업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완성차기업들과 경쟁 또는 협업할 것이다. 


다양한 영역의 기업이 부품 공급 구조를 형성하면서 기업 간의 합종연횡과 산업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기술력을 지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이 증가하고 있다. 기술제휴도 늘고 있다. 과거 경쟁 관계에 있던 완성차 기업들이 신흥 전기차 기업과 IT 기업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전기차 플랫폼, 자율주행 등 핵심 기술에 대해 공동연구를 하며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새로운 생태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전동화와 자율주행화는 소비자들의 자동차 소비방식을 바꾸고 기존 자동차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고 있다. 매출 성장 가능성이 작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자동차기업들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자동차 소비방식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공유경제 활성화다. 자동차기업들은 자동차를 제조해 판매하는 방식 대신 시간과 이동 거리를 사고파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고 있다. 생산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이런 변화는 우버, 리프트, 디디추싱 등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고 있지만, GM, 포드, 다임러 등 주요 완성차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공유형 모빌리티 서비스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일정 기간 차량을 독점할 수 있는 리스, 구독 서비스 형태의 공유 서비스는 이용이 증가할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변화를 겪어온 호수와 같다. 넓고 깊은 호수 속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존재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해 왔으며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로의 진화가 일으킨 물결은 자동차산업이라는 호수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마치 변화에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자연처럼 미래 모빌리티라는 패러다임 변화는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변화와 진화를 촉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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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유 산업연구원 시스템산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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