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01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와 플랫폼이 격돌한 자리였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 기업 아우디와 미국 콘텐츠 기업 월트디즈니는 차량에서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술을 공동 개발해 이 자리에서 공개했다. 두 기업은 차량에서 즐길 수 있는 VR 게임을 개발해 차량을 하나의 달리는 게임방으로 변화시켰다. 탑승객은 VR 장치를 착용한 채 게임 속 달리는 차 안에서 가상의 적을 무찔렀다. 


미국의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와 일본의 소니 등도 자동차 제조기업에 콘텐츠를 제공할 뜻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모빌리티라는 플랫폼의 특징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해 CES가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대전’을 방불케 했다고 평했다.


운전자를 위해 정보 및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기술이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포테인먼트는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함께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를 IVI(In Vehicle Infotainment)라고 부른다. IVI는 탑승자의 안전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운전자와 동승자가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다양한 편의 서비스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모빌리티 타고 진화하는 인포테인먼트

 

자동차의 이 같은 발전은 2010년대에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사례와 비교될 수 있다. 수십 년간 단순히 전화와 문자메시지(SMS) 전송 등 이동통신 기능을 수행하던 휴대전화는 통신기술과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며 음악과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됐다. 자동차 역시 단순 이동체에서 정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의미가 변하고 있다.


고전적인 IVI 시스템은 이미 차량 안에 들어와 있다. 실시간 운행 정보를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이나 운전 중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게 해주는 라디오, DMB 등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기기와 연동되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차량 자체에 통신기능을 탑재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표시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고 있다.


완벽한 자율주행 시대가 찾아온다면 IVI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운전자가 필요 없어진 상황에서 모빌리티 탑승자들은 탑승 시간을 다양한 활동에 활용할 것이다. 모빌리티는 거대한 콘텐츠 체험의 장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내연기관에서 배터리,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모터로 구동계가 변화한 것도 IVI 기술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내연기관은 엔진에서 만들어진 동력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를 이용해 자동차에 필요한 전장 부품에 전력을 공급한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화석연료의 화학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화학에너지(배터리)로 바꿔 저장했다 다시 전기로 활용한다. 여러 과정을 거치는 만큼 효율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사용하면 차량 안의 에너지전환 과정이 생략돼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이 없다. IVI를 활용할 때에도 불필요한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모빌리티로 완성되는 VR/AR

 

모빌리티는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으로서도 장점이 많다.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컴퓨터 등 기존의 플랫폼은 휴대성, 편의성 등에서 장점이 있지만, 작은 크기 때문에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모빌리티는 컴퓨터, 스마트폰에 비해 크고 성능이 좋은 하드웨어 플랫폼을 갖출 수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결합할 경우 큰 데이터가 필요한 3차원(3D) 영상이나 실시간 상호작용 콘텐츠 등 그간 모바일 기기를 통해 구현하기 어려웠던 콘텐츠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다.


기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는 충분히 체험하기 힘들었던 사용자경험(UX)도 대중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부터 VR/AR을 구현할 수 있는 장치가 속속 출시되면서 차세대 콘텐츠 기술로 주목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큰 성과를 이뤄내지는 못하고 있다. 기존 기술보다 즐길 콘텐츠가 다양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통신기술과 영상을 처리할 장치의 성능이 떨어졌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소형화에 따른 성능 제약 때문이었다.


모빌리티는 이런 VR/AR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최적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거대한 차체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가득 채울 수 있고, 자율주행에 필요한 안정적인 통신 성능과 데이터 처리 속도도 확보했다. 전면 유리창을 콘텐츠 표시를 위한 모니터로 사용하는 등 모빌리티 내부의 다양한 장비를 활용할 수도 있다. 개인을 위한 이동형 영화관이나 게임방처럼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 제조 기업과 콘텐츠 기업의 협업은 이미 시작됐다. 아우디와 디즈니가 독자적인 인포테인먼트용 VR 게임을 2019년 CES에서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도 차량 내에서 업무, 스포츠, 교육, 쇼핑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IVI 시스템을 공개했다. 사용자가 스포츠를 선택하면 차량 전면 유리의 모니터를 보고 조정경기 게임을 통해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상당수 IVI 게임 콘텐츠는 레이싱과 연계돼 있다. 차량에 탑승했기 때문에 보다 실감나는 레이싱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서다. 기존 VR/AR 시스템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멀미도 줄일 수 있다. 기존에는 사용자가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VR/AR 화면 속 배경만 움직여 멀미가 일어났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즐거움

 

미국의 정신의학자 윌리엄 글래서는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를 설명하며 그중 하나로 ‘즐거움에 대한 욕구’를 꼽았다. 놀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기는 것이 인간이 가진 본질이라는 의미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즐거움을 찾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영화관과 공연장, 전시장 등 오프라인 공간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간단한 정보라도 얻고자 전문가의 강연을 찾아 듣거나 도서관 서고를 헤매야 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은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뒤바꿔놨다.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됐고, 관심 있는 콘텐츠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즐거움 역시 다양한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그간 이동을 위한 공간, 자동차에서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
미래 모빌리티는 이동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일상 속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워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다시 한번 뛰어넘어 우리를 또다른 즐거움의 세계로 인도할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전자공학
  • 문화콘텐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