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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두 얼굴의 소시오패스

성공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병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상당한 매력과 평균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 침착하고 언변이 유창해 처음에는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하지만 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쳐도 미안해하지 않으며 수치심이 없다. 범행을 저지를 때는 계획적이다.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 사랑을 나눌 능력이 없고, 남을 배려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쉽게 배신한다. 자기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며 죄의식이 없다.”



1941년 미국 정신분석학자 허비 클렉클리가 저서 ‘광기의 가면’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다. 최근 국내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을 보면 전혀 ‘범인답게’ 생기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범인에 대해 인사도 잘하고 적절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한다. 평범해 보이는 이웃에 연쇄살인범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신의학계에서는 폭력적인 정신병질을 숨기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러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사이코패스는 ‘사이코’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단순한 정신장애가 아니다. 정신장애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벌하기보다는,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현실 검증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저지른 행동이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의식도 뚜렷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겁에 질렸거나 방어를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기만족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일 뿐이다.



“100명 중 4명 소시오패스”



정신의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 옆에 ‘ 소시오패스 (sociopath)’라는 단어가 함께 붙어 다닌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 달리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이들은 법이 허용하는, 또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주변이 따라주기를 바라면서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려 한다. 타인을 조종하고 고통을 주지만 미안해하거나 보상하려는 생각이 없다. 얼마 전에 종영한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한승재나 구마준, MBC 드라마 ‘동이’의 장희빈과 장희재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소시오패스다. 미국 정신의학자 마사 스타우트는 현대사회에 인구 100명당 약 4명의 소시오패스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사이코패스의 뇌파를 찍어보면 대뇌 피질의 각성도가 낮다. 일반인의 뇌는 공포를 느낄 때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판단을 하는 전두엽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뇌 활동성이 결여돼 있다. 평소 각성도가 낮기 때문에 일반인은 견디기 어려운 수준의 흉악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해야 흥분과 쾌감을 느낀다. 결국 갈수록 자극적인 행동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저지른다. 또 그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앞으로 악한 행동을 자제해야겠다는 판단도 하지 않는다.



소시오패스는 뇌가 활동하는 성향이 사이코패스와 비슷하지만 연쇄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대신 사회에서, 특히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친구나 동료를 이용해 고통을 주면서 제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이란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내가 한 번 부탁을 하면 언젠가는 내가 갚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오직 받는 것만 있고 주는 것이 없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는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병적인 자기애(pathological narcissism)’라고 불렀다. 소시오패스는 자기합리화의 명수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지만 오직 자기만 생각한다. 자기 때문에 타인이 받는 고통을 큰 목적을 위한 희생이라고 합리화하고, 자신의 책임을 철저히 부인한다. 컨버그는 역사적으로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을 소시오패스라고 꼽았다.



우리 주변에도 사회적 공생과 상호작용을 이기적으로 이용해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위조해 대중의 환심을 사거나 성공하는 사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 남이 피해를 보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나서 순진한 사람을 꾀는 사람을 모두 소시오패스라고 볼 수 있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소시오패스는 점차 늘고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도시 생활의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공동체적 농경사회에서는 제 이득만 취하는 사람은 금방 적발돼 퇴출당하거나 공동체의 징벌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한번 보고 끝나는’ 만남이 많아졌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얻고 난 뒤 은혜를 갚지 않고 관계를 단절해버려도 아무도 벌을 주지 못한다. 공동체에서 퇴출시키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오랫동안 생존하면서 능력을 키워나가고 진화해갈 수 있는 바탕이 돼버린 셈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을 변화시킬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나 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법이나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타인을 이용하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높은 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의외로 소시오패스적 특성과 비슷할 때가 있다.



기업 망치는 소시오패스



그렇지만 소시오패스들은 언젠가는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영국 베어링 은행과 프랑스 소시에테 제네럴 은행 비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베어링 은행에서 일했던 닉 리슨은 전년도 은행 수익의 50%가량을 혼자 올렸다고 조작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싱가포르 증권시장에서 일본 니케이 증권에 투기하다가 1995년 베어링 은행이 쫄딱 망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2009년 소시에테 제네럴 은행에서 일했던 제롬 케르비엘은 비밀 계좌를 해킹해 약 6조 원대 손실을 냈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에 따르면 2003년 기준 50개국 3600개 기업의 37%가 기업 내부의 사기 행위로 평균 200만 달러(약 24억 원)씩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됐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회사에서 조용히 처리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형 사기사건의 4분의 1은 회사의 고위 간부가 저질렀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이타적인 사람은 실패하고 악독한 이기주의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성공해 도리어 인정받는 아이러니가 판을 치고 있다. 양심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평소에는 의식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양심이 차지하는 범위는 매우 크다. 온갖 치사하고 거짓된 방법으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듯한 소시오패스적 엘리트보다 본인에게 주어진 능력대로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사회에서 알아줘야 한다. 그래야 비윤리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그 때문에 억울한 사람도 생기지 않는 ‘정신이 건강한’ 사회가  올 것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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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하지현 건국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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