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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친척 인류...수수께끼 속 인류 데니소바인

[인류진화의 잃어버린 퍼즐] 네 번째 퍼즐

2019년 12월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가 발표한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과학 이슈 중에는 미스터리 속에 숨겨졌던 인류의 친척, 데니소바인의 외형을 DNA 해독 결과로 추정한 연구가 1위를 차지했다. 최초의 블랙홀 그림자 관측과 40년 만에 개발된 에볼라 치료제 등 그해에 발표된 굵직한 이슈를 제친 결과다. 고인류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데니소바인의 정확한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08년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산맥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던 손가락뼈와 어금니 화석이 발견됐다. 연대는 약 3만~5만 년 전으로 추정됐다(이 연대는 2019년 5만~7만 년 전으로 수정됐다). 


2010년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팀은 여기에서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추출, 해독해 화석의 주인공이 현생인류나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새로운 호미닌, 데니소바인(Denisovan)임을 밝혔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외에 또 하나의 친척 인류가 최근까지 유라시아에 공존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해 말에는 핵 DNA까지 해독해, 데니소바인이 현생인류보다는 네안데르탈인과 조금 더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미궁에 빠진 데니소바인


하지만 이후 데니소바인에 대한 연구는 난항에 빠졌다. 연구에 필요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수십 구가 넘는 화석이 발굴됐고, 이 중 보존 상태가 양호한 화석도 많았다. 덕분에 고인류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치아나 두개골의 크기, 모양 등을 연구할 수 있었고, 네안데르탈인의 외형과 생활사 등 다양한 특징을 밝힐 수 있었다. 보존 상태가 좋은 ‘고 DNA(ancient DNA)’도 화석에서 충분히 추출할 수 있어 관련 연구도 활발히 이뤄졌다.


반면 현재까지 발견된 데니소바인의 화석은 10점이 채 되지 않고 대부분 매우 작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손가락뼈와 어금니, 팔 또는 다리뼈의 파편 등 5점의 화석이 발견됐고,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턱뼈 조각이 발견된 게 전부다. 화석이 작다 보니 DNA의 양도 적거나 오염이 심해 거의 활용할 수 없었다. 초기에 발견된 화석에서 추출한 DNA로는 호모 속에 해당하는 인류라는 점만 알 수 있었을 뿐, 이들이 가진 정확한 특징은 유추해내기 어려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데니소바인을 실체가 있는 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실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명으로 불리지 않고 있는 것이 그 근거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데니소바인이 새로운 종인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된 상태”라며 “20세기였다면 호모 속의 종으로 분류됐겠지만 지금은 이들이 실체를 가진 집단인지 화두가 전면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일단 두고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데니소바인이 남긴 궁금증


데니소바인의 정체 못지않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는 이들과 현생인류 및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유전자 교류다. 본격적인 DNA 연구가 진행되며 현생인류와 데니소바인이 유전자를 교류했다는 증거들이 발견됐다. 특히 2014년 티베트 지역의 현생인류가 고산지대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덕분이라는 연구가 있었고, 이후 2019년 티베트에서 데니소바인 화석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 화석을 분석한 결과 어머니는 네안데르탈인, 아버지는 데니소바인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고인류학자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호미닌 간의 교류가 활발했고, 이들이 더 넓은 지역에 분포했을 것이라는 증거다.


 2019년 머레이 콕스 뉴질랜드 매시대 기초과학부 교수팀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과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현생인류 유전체에서 데니소바인과 여러 차례 DNA를 교류한 흔적을 발견했다. 심지어 데니소바인이 단일 그룹이 아닌 여러 혈통으로 구성돼 있었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데니소바인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증거도 함께 발견됐다. doi: 10.1016/j.cell.2019.02.035 


특이한 것은 데니소바인의 화석이 처음 발견된 시베리아지역에서 멀어질수록 데니소바인의 DNA가 섞인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유럽 지역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현생 유럽인들에게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콕스 교수는 “현재까지는 데니소바인이 시베리아와 중국(티베트)에서만 발견됐지만, 유전자 흐름을 보면 앞으로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등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데니소바인의 정체를 밝히고 다양한 가설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화석과 DNA 등 고인류학적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배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2019년 데니소바인의 얼굴을 추정한 결과도 턱뼈와 치아, 일부 DNA 등 당시까지 밝혀진 정보만을 활용해 데니소바인의 진짜 모습이라고 보기엔 아직 제약이 많다”라며 “온전한 두개골 화석이나 많은 DNA가 발견돼야 데니소바인의 진짜 얼굴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에서는 데니소바인 화석 찾기 프로젝트인 ‘파인더(FINDER)’를 진행하고 있다. 첨단 연구방법을 동원해 아시아에서 데니소바인을 찾는 프로젝트로 2017년 시작돼 2022년까지 이어진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카테리나 도우카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데니소바인은 현대 고인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자 미지의 인류”라며 “파인더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들이 감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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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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