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인류는 늘 이동하고 섞였다...동아시아인의 복잡한 형성

[인류진화의 잃어버린 퍼즐] 다섯 번째 퍼즐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형성

‘우리’의 기원을 묻는 것은 어느 수준에서 정의하는가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진다. 고인류 연구는 주로 현대인 모두에게 공통인 인류 보편적인 진화사를 연구한다. 그렇다면 현대인 기원 이후의 더 가까운 과거로 관심을 돌려보면 어떨까. 인류 진화사의 마지막 퍼즐 조각에서는 한국인이 속한 동아시아인의 형성 과정을 최신 유전학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살펴봤다.

 

동아시아인의 유전적 다양성과 형성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후반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 등 비교적 해독과 분석이 쉬운 대상을 통해 이뤄졌다. 각각 단 하나의 유전자 계통수와 그 가지를 뜻하는 하플로그룹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런 분자인류학 연구로 현대인이 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두 경로를 통해 이주해왔고, 이것이 ‘북방계’와 ‘남방계’ 동아시아인의 기원이라는 가설이 탄생했다. 인도 안다만 제도, 일본 등에는 특이한 하플로그룹이 존재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북·남방계 동아시아인보다 먼저 남쪽 해안 경로를 따라 이주했던 집단이 있었고, 이들로부터 현대 호주와 뉴기니 원주민 및 ‘네그리토(negrito)’라 불리는 동남아시아 수렵채집인이 구성됐다는 ‘이른 남방 확산’ 혹은 ‘해안 이주’ 가설도 제시됐다.

 


전장유전체 연구의 중요성


단일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한 집단을 이루는 사람이 모두 같은 하플로그룹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반드시 다른 하플로그룹을 갖지 않는다. 하플로그룹은 집단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가 알고 싶은 집단 간의 유전적 유사도와 분기 시점, 인구 변화, 혼합 등 집단 계통수는 유전자 계통수와 다르다. 가령 같은 하플로그룹에 속하는 한국인과 북미 나바호 원주민은 다른 하플로그룹에 속하는 한국인보다 서로 더 가까운 모계 조상을 갖는다. 하지만 한국인이 나바호 원주민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과 나바호 원주민이 갖는 하플로그룹의 공통 조상은 두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약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두 계통수가 다른 이유는 우리가 관찰한 염기서열이 진화를 거슬러 올라갈 때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 수렴하는 과정이 확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집단 계통수를 주사위라고 하면 유전자 계통수는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값이다. 주사위에 어떤 값이 있는지, 이들이 나올 확률을 알려면 여러 번 던져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단일유전자 연구의 한계와 수십만 번 던지는 전장유전체(whole-genome) 연구의 유용성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마이크로어레이, 2010년대 초반 차세대염기서열해독기술(NGS)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전장유전체 연구는 인류유전학의 핵심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고유전체 연구로 본 동아시아인의 주요 계통


201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해진 현대인에 대한 고유전체 연구는 동아시아인 진화사의 핵심 요소를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 베이징 인근의 톈위안 동굴에서 발견된 약 4만 년 전 인류의 유전체는 현대 동아시아인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이미 이 시기 서유라시아인 계통과 뚜렷하게 나뉘었음을 증명한다. 한편 바이칼 호수에서 북극권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3만 1000년에서 1만 60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서유라시아인 계통에 속해 있었다. 흔히 ‘옛 북유라시아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유럽 구석기 수렵채집인과 가까운 집단으로, 한랭건조한 빙하기 기후 탓에 지금의 북방침엽수림이 자라는 지역에 살던 매머드나 털코뿔소 같은 대형동물들을 사냥했다.


연해주와 만주, 몽골, 바이칼 호수 등에 이르는 지역에서 출토된 유전체는 동아시아인 계통에 포함된다. ‘옛 동북아시아인’으로 불리는 이 계통은 최소 7000년 전에는 바이칼 호수 인근으로 확산해 옛 북유라시아인 관련 집단을 대체한 것으로 보이며, 흔히 북방민족으로 부르는 퉁구스·몽골·터키어 계열 집단들에 유전적으로 기여했다. 전통 가설에서 북방계 동아시아인에 해당하는 것이 옛 동북아시아인 계통이다.


전통 가설의 남방계 동아시아인에 해당하는 남중국과 동남아시아 집단의 유전적 유사성 역시 확인됐다. 남방계 집단과 옛 동북아시아인 집단은 북중국 일대에서 다양한 비율로 혼합돼 유전자 경사(genetic cline)를 형성했다. 북중국 여러 지역의 고유전체 연구는 두 계통의 혼합 비율이 지역에 따라, 한 지역 안에서도 시기에 따라 변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 한국인 유전자 풀(생물 종이나 개체 속에 있는 고유의 대립형질의 총량)의 형성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될 것으로 생각되는 요하 일대에서는 농경 의존도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남방계 혈통의 비율이 증가했고, 목축 의존도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옛 동북아시아인 혈통의 비율이 증가했던 것이 확인됐다. 요하 일대는 다양한 집단의 접경지대로 작용했던 만큼, 시공간에 따른 유전적 변화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넓은 지역과 시기에 걸쳐 촘촘하게 시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해안 이주 가설과 동아시아인의 초기 이주사


해안 이주 가설 검증은 유전체학 시대를 맞아 이들 집단의 공통 기원 여부를 검정하는 것 위주로 진행됐다. 즉, 남방계와 옛 동북아시아인 계통을 포괄하는 집단(대륙 동아시아인)과 더 이른 시기에 갈라진 것으로 생각되는 호주·뉴기니 원주민, 안다만 제도 원주민, 동남아시아의 현대 수렵채집인들, 호아빈 문화로 대표되는 농경 이전의 동남아시아 수렵채집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만약 이들이 모두 이른 남방 확산 집단의 후손이라면 대륙 동아시아인과는 구분되는 계통으로 이들을 묶을 수 있다.


해당 집단에 대한 유전체학 연구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안다만 제도 원주민과 옛 호아빈 문화 수렵채집인들이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것과, 호아빈 문화 수렵채집인들이 남중국에서 확산한 농경민과 혼합한 것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신석기 수렵채집인인 조몬인에 대한 유전체 연구는 호아빈 수렵채집인 계통이 조몬인에게도 부분적으로 기여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이 계통과 호주·뉴기니 원주민 계통의 공통기원 여부, 특이한 하플로그룹을 높은 빈도로 갖는 티베트인과의 연결고리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 집단에 대한 연구는 단일 계통의 이른 남방 확산보다는 동아시아로 확산하던 초기에 현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계통으로 분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아시아인 진화사 연구 무엇을 말하나


동아시아인의 여러 초기 계통 사이의 관계는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초기 동아시아인 계통에 속하는 새로운 고유전체 자료를 얻을 때마다 동아시아인 초기 진화사의 모형은 크게 바뀔 것이다.


한 예로 약 4만 5000년 전 불가리아의 바초 키로 동굴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최신 고유전체 분석 결과는 놀랍게도 이들이 동아시아인 계통에 속해 있었으며, 톈위안 계통이 바초 키로 계통과 구석기 유럽인 계통의 혼합임을 나타냈다. 바초 키로 집단을 포함한 초기 동아시아인 계통 사이 관계의 재분석이 기대된다.


집단 혹은 민족의 기원과 뿌리에 대한 연구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점은 흔히 조상과 자손 집단 사이에 일대일 대응 관계를 가정한다. 하지만 유전체학을 통해 추론한 인류 진화사는 이동과 혼합이야말로 진화사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중국의 사례처럼 한 자손 집단의 유전적 조성이 여러 조상 집단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적 혼합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바초 키로의 후기 구석기 사람들은 동서 유라시아인 계통의 지리적 분포가 현재와는 사뭇 달랐고, 구석기 인류 집단들에서조차 장기간에 걸친 이주가 활발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더 좁은 의미의 ‘우리’, 이를테면 현대 한국인의 유전적 기원에 대한 연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우리의 독자성, 우리와 다른 집단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연구인 동시에 혼합과 공유의 역사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정충원 유전체를 바탕으로 고대 인류의 이동과 다양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과 그룹리더를 지냈고, 현재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cwjeong@snu.ac.kr

 

202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진로 추천

  • 문화인류학
  • 역사·고고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