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에 이은 제5의 힘은 과연 존재하는가?
지난 86년 말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퍼듀대학(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공과계통이 강한 대학)의 피슈바하(Eohroim Fischbach) 교수가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묵은 옛날에 실시됐던 '에트봐스'(R. Von Eötvös) 실험을 다시 정밀분석해서 우주에는 만유인력만이 아니라 척력(斥力), 즉 서로 밀어내는 힘도 약간 섞여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에트봐스의 실험이란 중력이 물질의 구성요소와는 무관하고 질량에만 비례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말한다. 1920년대에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 에트봐스가 처음 행한 실험이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당시에 피슈바하 교수의 논문은 '미국물리학회속보'(Physical Review Letters)라는 학술회지에 실렸다. 이 책은 그 선정기준이 까다로운 것으로 매우 유명한 까닭에 누구나 한번쯤은 눈여겨 보는 학술지다.
86년에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중력은 만유인력과 그 척력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피슈바하는 이 논문에서 에트봐스의 결론을 일부 동의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력은 질량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을 뿐이고 그 성분(예를 들어 철이든 금이든 질량만 같으면 그 중력도 같다)과는 무관한 힘, 즉 만유인력으로 대부분이 이뤄졌음을 동의했다. 하지만 중력=만유인력이라는 등식은 거부했다. 만유인력과는 달리 구성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극히 미약한 힘, 다시말해 척력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또 이 척력이 사실상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물리학자들은 이를 바리온수(Baryon number)라고 한다)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꽤 권위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었지만 당시 피슈바하의 이론을 믿는 사람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피슈바하는 자신이 발표한 이 척력을 제5의 힘이라고 이름 붙였다. 왜 제5의 힘이라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제1~제4의 힘과는 다른 성격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네가지 다른 종류의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일뿐만 아니라 뉴턴을 오늘날 모든 사람의 '과학영웅'이 되게 한 만유인력(萬有引力, 중력이라고도 한다)이 그 첫째 힘이다.
둘째 힘은 전자기력이다.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신 전화 텔레비전 등을 작동케하고 지식을 전달하며 아픔 뜨거움 등 모든 감각을 지배하는 힘이 바로 이 전자기적인 힘이다.
셋째로는 핵력(核力)이 있다. 이 힘은 문자 그대로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다. 핵력은 매우 강력하지만 극도로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와는 달리 중력과 전자기적인 힘은 힘이 미치는 영역이 제한돼 있지 않다.
핵력의 강도는 실로 엄청나다. 전자기적인 힘의 강도와 비교하면 그 세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한 마디로 핵력은 전자기적인 힘보다 1만배 이상 강하다. 그러나 핵력은 극히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므로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핵력의 작용 범위는 0.0000000000001cm(물리학에서는 ${10}^{-13}$cm인 이 길이를 1페르미라고 부른다)를 넘지 못한다. 이를테면 핵력은 원자핵 내에서만 작용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네번째 힘인 약력(弱力)이 있다. 이 힘은 방사선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알파 베타 및 감마선(α, β, γ)을 방출하는 원인이 되는 힘이기도 하다. 이 힘은 매우 미약해서 거의 그 존재를 느낄 수 없다.
어느 정도 약한지를 보여주는 한 예를 들어보자. 방사선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베타선은 사실상 전자선이다. 이 전자선은 몇m의 물질만 가로 놓여 있어도 통과하지 못한다. 예컨대 10m 두께의 콘크리트벽도 '만리장성'쯤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콘크리트 벽 속에 있는 원자와 베타선의 전자가 각자의 전자기적인 힘으로 인해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는 원래의 에너지를 잃게 되고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강한 힘으로 부닥치면 칠수록 에너지를 더 많이 잃게 돼 전자는 결국 멀리 가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전자기적인 힘으로 콘크리트와 맞서기 때문에 몇m도 못가서 그 에너지를 다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베타선이 나올 때 중성미자(neutrino)라고 하는 극히 가볍고(어쩌면 질량이 없을지도 모른다) 전기량이 없는 중성입자가 같이 나온다. 이 중성미자는 전기량이 없기 때문에 전자기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고 약(弱)작용만 한다. 사실 이 중성미자는 검출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 두께가 5만km인 콘크리트벽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에너지조차 변하지 않고 통과한다. 그만큼 중성미자의 약력은 약한 것이다.
요컨대 이 세상에는 중력 약력 전자기력 및 핵력이란 네가지의 다른 힘들이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을 예견할 수 있어야
'피슈바하'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중력처럼 약하지만 인력이 아닌 척력은 이 네가지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이 척력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인류에게 다섯번째로 알려진 새로운 힘이 된다. 그래서 제5의 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5의 힘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실험적으로 확고히 발견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제5의 힘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제5의 힘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들을 지난 3~4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 왔다. 어떤 이론이든 그 이론이 본질적인 위력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현상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함은 만인 주지의 사실이다. 제5의 힘을 미리 이론적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를 설명하는데는 두가지 유형의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한 부류는 현상학적 이론이며 다른 한 부류는 더 깊은 이론체계에 바탕을 두는 순수이론이다.
중성미자와 중력을 예로 들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아다시피 중력이론은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이 제시했다. 그는 시공간(時空間)이 4차원 세계이고 모든 자연법칙이 시간에 관계없이 어떤 곳에서나 같은 꼴을 하고 있다는 보편타당한 생각을 구체화해 일반 상대성이론을 내놓았다. 또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질량과 에너지의 동등함, 큰 질량을 가진 별 근처를 빛이 지나칠 때 휘어진다는 사실, 수성(Mercury)의 궤도가 조금씩 변한다는 예언을 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업적이야말로 순수이론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중성미자와 관련된 약(弱)작용이론의 초기 전개과정은(약작용 이론이란 베타선 등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기술하는 이론을 말한다) 대표적인 현상이론이다.
독일의 파울리교수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예언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약작용이론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교수가 처음으로 그에 관한 현상학적 이론을 선보였다.
페르미교수는 전자기이론을 흉내내서 약작용이론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베타선에서 나오는 전자의 에너지 스펙트럼(spectrum), 즉 에너지분포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론적인 이론은 어떤 근본적인 원리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대신 다른 현상의 유추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합리화하는 이론이다.
제5의 힘을 현상론에 입각해서 설명하려고 한 시도는 그동안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 예의 하나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니토'교수와 그 공동연구자가 제안한 이론이 있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몇가지 개념들을 머리에 담고 있어야 한다.
고전물리학은 양자물리학에 대응되는 학문인데 모든 자연현상이 필연적으로 정확히 결정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이해를 돕기위해 유사한 사례를 들어본다. 이 세상에 임신을 한 여자가 5천만명이 있다고 하자. 그중 10명의 부인을 골라서 아들을 잉태했는가를 묻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하자. 아마도 아들을 밴 엄마의 수는 0에서부터 10까지 모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10명 다 남자아이를 배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또 전부가 여자 아이를 잉태했을 확률도 거의 없다. 이 경우 5명이 남자애를 배었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가장 정답에 가깝다.
그러나 5천만명 가운데 남자애를 잉태한 부인의 숫자가 2천5백만명이라고 했을 때, 그 수가 2천5백만명에서 벗어나 3천만명이 될 확률은 거의 0이다. 이처럼 예견의 오차범위는 대상의 숫자가 커질수록 더 적어진다.
우리들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물질 속에는 적어도 1억×1억×1억(계산하면 ${10}^{24}$개가 된다)개의 원자가 있다. 따라서 이들의 평균성질의 예측에는 오차가 있을 수 없으며 확정된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 물리는 이와 같이 거시적이고 많은 대상의 평균성질을 알아내는 물리학이다. 이와는 반대로 양자물리는 미세한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확실한 값이 아니라 확률로써 얘기하게 된다.
수학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니토 교수의 이론을 이해해 보자. 그는 고전적 중력이론(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양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제5의 힘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니토교수의 이론에는 다소의 무리가 있다. 현재의 중력이론을 인위적으로 수정해야 비로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업은 정통적인 물리학자들에게 별로 달갑게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론적인 접근 중에는 국내 학자의 이론도 있다. 한국과학원의 김재관교수(물리학과)와 그의 공동연구자가 아인슈타인이론에 인위적인 변수를 도입하면 제5의 힘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밖에도 현상론적인 '유카와 항'(일본의 유카와박사가 주장한 중간자 교환항을 만한다)을 도입한 비슷한 시도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론적 이론의 대부분은 제5의 힘의 작용범위를 수m에서 수십m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는 별 관계가 없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5의 힘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무관한 존재라는 얘기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조용민 교수의 이론은 현상론적 이론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조교수는 이와 관련된 업적으로 지난 해 대한민국 과학상을 받았는데 그의 주장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조교수는 대칭성원리를 활용, 고차원의 축소문제를 훨씬 깔끔하게 해결해 냈다. 그 원리는 이렇다. 예컨대 누군가가 구대칭(球對稱, 완전한 구형이라면 어떻게 회전시키더라도 그 위치와 모양은 변하지 않는다)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물리적인 (양(量)들은 매우 간단해질 것이다. 가령 자신의 현위치를 파악하려고 할 때에도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만이 관계될 뿐이고 위도나 경도와는 아예 무관하게 된다. 아무 굴곡도 없는 완전한 공위를 기어가는 개미를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질 것이다. 여기서 개미가 바로 구대칭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구(球)는 분명히 3차원이지만 물리량은 1차원으로 표기된다. 실제로 그러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는 자기가 3차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아이소메트리'(isometry)라고 불리는 이 개념을 사용, 조교수는 고차원 세계의 차원을 축소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중력상수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시공간의 함수가 된다. 또 제5의 전하에 해당되는 양이 +냐 -냐에 따라 인력도 생기고 척력도 생긴다. 일반적으로 전기량은 +나 - 전하중 하나를 띠는데 여기서 말하는 전기량은 둘 모두를 띨수 있는 초전기량을 뜻한다.
조교수가 주장하는 제5의 힘은 이 우주의 구조와 발달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이론은 현상론적인 이론과는 전적으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한다.
'딜라톤'(Delaton)이라고 알려진 이 이론속의 물리량이 어쩌면 우주의 질량결핍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질량결핍문제는 우리 우주에서 관측된 물질의 질량만으로는 현재의 우주팽창속도를 설명할 수 없는 데서 처음 제기됐다.
물질이 작으면 서로 잡아당기는 힘(만유인력)이 작아지므로 더 빨리 팽창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은하계의 외곽에 있는 성간물질의 운동을 관측하면 의문은 더욱 배가된다. 현재 알려져 있는 물질의 질량을 모두 계산해 봐도 궁금증이 쌓이기는 마찬가지다. 너무 빨리 우주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이러한 물질이 없다면 현재의 우주구조를 설명하기에는 질량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바로 질량결핍문제다.
그 알 수 없는 물질은 전자기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전자기적인 성질을 가진 물체라면 전자파인 빛을 흡수하거나 산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을 관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두운 물질 또는 결핍질량이라고 불리는 이 미지의 물질의 실체는 무엇일까. 확실치는 않지만 약(弱)작용만 하는 중성미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물리학자가 많은데 조교수의 이론은 이 주장들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있다.
갈릴레오의 실험을 재현하기도
그러나 아무리 타당한 이론이라도 실험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정말로 제5의 힘은 발견될 것인가. 현재까지 진행된 실험결과들을 모아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 또 그 결과들이 뒤죽박죽이다. 제5의 힘이 있다는 측과 없다는 측이 뒤섞인 상태인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여러나라의 13팀이 제5의 힘 발견에 나서고 있다(필자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렇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한 실험을 좀 더 정확히 되풀이한 것부터 레이저 등 온갖 첨단기술을 동원한 실험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이 매우 다채롭다. 그리고 미국 소련 일본 중국이 참여하는 등 실험팀의 국적 역시 다양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 제5의 힘은 찾아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찾는 대상이 극도로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검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구의 구조, 주위 암반의 구성등을 알아야 한다. 또 극도의 정밀도를 요하는 실험이기 때문에 그 결론은 100%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실험에 참여한 13팀중 4팀은 제5의 힘을 관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4팀은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나머지 다섯 팀은 아직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실험기술의 정밀도를 개량하지 않는 한 제5의 힘의 존재여부는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최소한 몇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미해결 사건의 범인체포와 그 숨은 전모를 기다리는 것 역시 일종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