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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 전자 하나로 작동되는 트랜지스터

손바닥 만한 슈퍼컴퓨터 가능해

반도체칩 기술의 핵심은 실리콘 기판에 얼마나 많은 회로를 새길 수 있느냐다. 이 기술은 2010년 이후에는 집적화의 한계에 다다를 전망이다. 나노기술은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


1cm³크기의 각설탕에는 ${10}^{24}$개의 원자가 들어있다. 각각의 원자가 디지털 정보인 0이나 1을 갖도록 할 수 있다면 각설탕에는 ${10}^{24}$비트의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 있는 서적을 모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과 맞먹는다. 이처럼 원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면 손바닥만한 슈퍼컴퓨터는 물론 꿈의 컴퓨터인 양자컴퓨터의 실현이 가능하다. 바로 나노기술이 꿈꾸는 미래의 전자혁명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나노기술은 어떻게 성장해갈까.

대부분 기술의 성장과정은 S자 형태로 초기→성장→정체→쇠퇴 4단계를 거친다. 현재 전자산업의 기반이 되는 실리콘 반도체기술은 성장과정을 거쳐 정체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나노기술은 초기단계다. 따라서 현산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실리콘 기술이 쇠퇴기에 접어들기 전에 나노기술이 발전단계로 진입해 전자혁명을 이어갈 새로운 소자 기술을 제시해야 한다.


휴대용 기기 위한 비휘발성 메모리

그렇다면 나노기술은 앞으로 어떤 전자소자를 새롭게 등장시킬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반도체 가운데 집적화가 가장 높은 D램(Dynamic RAM)을 대체할 새로운 메모리 소자다.

D램은 실리콘기반의 공정기술 발달로 회로의 선폭이 1백여nm까지 좁혀지면서 반도체칩 중 최고의 집적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없어지는 휘발성 메모리이기 때문에 항상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각종 전자제품이 휴대용 기기로 점점 소형화되면서 고성능 비휘발성 메모리칩의 필요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비휘발성 메모리로 플래시 메모리가 있기는 하나, 고성능 휴대용 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읽고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고, 기록된 정보를 재생하는 능력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현재 나노기술이 제시하는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가 2-3년 내에 실제 상품에 적용될 전망이다. M램(Magnetic RAM)과 F램(Ferroelectric RAM)이 그것.

M램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성질을 이용하는 메모리다. 인간은 지난 세기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비디오 테이프 등의 저장 장치에 자기적 성질을 활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적 성질을 띤 물체에 대한 연구는 다른 금속이나 반도체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그 까닭은 자성체의 자기적 특성이 수nm 거리의 원자 스핀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수nm 두께의 자성박막 제조가 가능하게 되면서 나노수준의 자성체 연구가 가능해졌다. 그 결과, 기존의 자성체보다 자기저항 값이 1백배나 큰 거대자기저항(Giant Magnetoresistance, GMR) 현상이 발견됐고 오늘날에는 자성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다. 현재 나노 자성체 연구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라는 신조어를 갖는 분야를 형성해 나노전자기술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GMR 현상을 이용한 하드디스크 헤드가 1997년에 이미 상품화됐을 정도로 빠르게 응용되고 있다.
 

설탕의 원자 하나하나에 디지털 정보 0과 1을 기록할 수 있다면 1cm3 크기의 설 탕에 세계 최고 도서관이 소 장하는 책을 모두 저장할 수 있다.



2010년 D램 완전 대체

M램은 수nm의 나노박막이 갖는 GMR 현상을 이용한다. 이는 비휘발성이라는 장점은 물론 수nm의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집적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한 처리속도가 D램보다 빠르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

IBM은 M램을 2004년에 상품화할 목표로 개발중이다. 이 외에도 모토롤라,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0년에 IBM은 당시의 가장 빠른 D램보다 6배 빠른 1Kbit의 M램을 개발했고, 하니웰사는 기존의 반도체 메모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든 환경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64Kbit M램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모토롤라는 지난 6월 10일에 1Mbit의 M램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M램이 2-3년 후에 시장에 정식 출시돼 2010년쯤에 D램을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F램은 자기적 성질을 강하게 띤 물질(강유전체)을 데이터 저장에 필요한 커패시터에 사용함으로써 전원 없이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이 메모리는 198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돼 상용화가 부분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고집적화를 위한 생산공정과 나노수준의 소재물질을 개발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F램은 강유전체의 안정된 두개의 편광상태를 이용해서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는데, 실온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적당한 나노 크기의 강유전체를 연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5년 정도에 본격적으로 상품화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램트론사이고, 일본의 도시바, NEC, 히타치, 그리고 우리나라 삼성전자 등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파장 짧은 빛으로 칩 기술 업그레이드

물론 기존의 반도체기술도 당분간 집적화가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반도체칩은 선폭이 1백nm가 최고 수준이다. 이를 좀더 줄이기 위해 현재의 반도체 리소그래피 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노력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칩에 회로를 그리는 방법은 사진현상과 비슷하다. 반도체 기판 위에 필름을 가까이 놓고 그 위에서 빛을 비추면 빛이 통과하는 기판부분이 화학적으로 변한다. 이를 통해 기판에 만들고자 하는 패턴을 형성할 수 있다. 이때 사용하는 빛이 현재는 자외선이다. 이를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이나 X선, 또는 전자빔이나 이온빔으로 전환해 1백nm 이하의 집적도를 얻으려고 한다. 회로의 선폭은 빛의 파장과 관련돼 있는데, 파장이 짧을수록 더욱 가는 선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가 전체 나노장비 관련 회사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5년 후쯤 이 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한 선폭이 1백nm 이하의 반도체칩이 일반 제품에 쓰일 전망이다.

지난 40여년 간 반도체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착실히 집적도를 높여왔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창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 발견한 법칙으로, 반도체칩의 집적도가 12-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의 반도체기술을 업그레이드한 1백nm 이하 집적도 기술은 이론적으로 10nm 보다 가는 회로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35nm 이하로는 발전하기 어렵다. 반도체 소자의 크기가 20-30nm 정도가 되면 소자는 양자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돼 기존에 적용했던 회로의 설계법칙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작 비용도 증폭돼 상업화에 무리가 따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반도체 집적도 방식은 2010년이면 한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노기술은 2010년 이후에도 무어의 법칙을 계속 실현시키기 위해 원자나 분자를 하나하나 조작해 소자를 만드는 전자혁명을 꿈꾼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기판에 회로를 새겨넣는 기존의 제조방식인 ‘탑-다운’(top-down)이 아니라 원자나 분자를 벽돌처럼 쌓듯이 조합해서 새로운 나노구조물을 만드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필요로 한다.
 

반도체 기술에서 회로를 새기는 조각칼 역할을 빛이 한다. 현재의 반도체칩 기술로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자외선에 서 극자외선이나 X선과 같은 좀더 파장이 짧은 빛으로 전 환하고 있다.



무어 법칙 이어갈 벽돌 쌓기

바텀-업 방식은 원자나 분자가 스스로 물질을 형성하는 자기조합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원자나 분자를 조작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자소자를 분자 크기로 만들 수 있어서, 테라비트급(${10}^{12}$bits/㎠)의 고집적도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처리속도가 높아지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

현재 바톰-업 방식으로 개발중인 전자소자로는 단전자 트랜지스터, 탄소나노튜브 소자가 대표적이다.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현상인 터널링 효과를 이용한다. 터널링 효과는 전자가 넘지 못하는 벽을 순간적으로 공간이동한 것처럼 위치에너지 벽을 뚫고 지나가는 마술 같은 현상이다. 이 현상은 양자역학의 세계인 나노미터 영역에서 일어난다. 전자 한개의 터널링 효과로 트랜지스터가 작동되는 것이 바로 ‘단전자 트랜지스터’다.

기존의 트랜지스터는 수백만개의 전자들이 흐를 때 작동된다. 이때 전자들이 밀집된 공간을 서로 밀치며 이동하기 때문에 상당한 열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두 전극 사이를 하나의 전자만이 이동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트랜지스터의 소형화에 문제가 됐던 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수mK(밀리캘빈)의 극저온에서 구동되고 있다. 단전자 트랜지스터가 상업화에 성공하려면 실온에서 작동가능하도록 발전돼야 한다. 이외에도 해결해야 문제가 산재해 있다.


나노 전자혁명 주도권 경쟁

또다른 대표적인 나노소자인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는 1-10nm 두께의 대롱모양인 탄소나노튜브를 전자의 이동통로로 이용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는 가벼우면서도 결합력이 매우 높고, 지름에 따라 도체가 되기도 하고 반도체가 되기도 하는 전형적인 반도체의 성질을 갖고 있다. 또한 열전도율과 전기전도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면 기존의 실리콘반도체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집적, 고성능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가 반도체소자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렬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이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로는 탄소나노튜브를 하나하나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못하다. 또한 크기에 따라 도체나 반도체가 되기 때문에 동일한 특성을 지닌 탄소나노튜브를 대량으로 제조하는 일이 관건이다.

실리콘 기술의 한계를 궁극적으로 극복할 바텀-업 방식의 소자들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개 초보단계는 대학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지지만, 나노전자소자는대학뿐 아니라 현재의 반도체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분야에서 누가 먼저 상업화를 이루느냐가 21세기 나노 전자혁명의 주도권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나노전자소자의 실용화 시기가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여기서 비롯된다.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원봉 삼성종합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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