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가 뜨고 있는 오늘날, 과학분야에서도 예외는 없다. 과학자들이 수행해온 실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과학계에는 엽기적인 실험과 황당한 연구들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엽기적인 과학자들을 만나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엽기 바람이 불고 있다. 엉뚱하고 황당한 결말의 유머가 ‘허무 개그’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가 하면, ‘엽기’를 개성으로 내세운 가수 싸이와 자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괴한 줄거리의 혈흔이 낭자한 영화 ‘섬’과 ‘텔미섬씽’이 화제가 됐고 ‘초절정 하이코미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을 표방하고 나선 딴지일보는 엽기 발랄한 기사로 한때 네티즌들을 광분하게 만들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개봉 2주만에 2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청소년 문화에서 ‘엽기코드’를 읽어낸 제작자의 기획이 적중한 결과였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에 유난히 흥미를 느끼는 것’을 뜻했던 엽기는 이제 사전적인 의미를 벗어나 ‘엉뚱하며 황당한 것’에서부터 ‘뭔가 색다르고 참신한 것’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엽기가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 코드가 되어버린 오늘날, 과학 분야에서도 엽기의 징후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수행해온 실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엽기 문화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기 오래 전부터 과학계에는 이미 엽기적인 실험과 황당한 연구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과학자 사회에서 외면받기도 하고 ‘최악의 연구’로 선정되기도 했던 황당한 연구들. 이른바 ‘엽기적인 과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이런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연구를 유형별로 나눠 알아보자.
내몸 네몸 안가린다
엽기과학자의 첫번째 유형은 연구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 남의 몸 안아끼고 뭐든지 하는 ‘열정 과잉’형이다. 그들은 넘치는 학문적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실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다. 그 대표적인 유형의 과학자는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 연구팀이다. 그들의 연구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한점에서 시작됐다. 다빈치는 해부학에 조예가 깊어서 동물은 물론 인간에 대한 정밀한 해부도를 그리기도 했는데, 1493년에 그린 ‘성교’(copulation)라는 해부도는 남녀가 성행위를 하고 있을 때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정밀하게 데생한 그림이다.
펙 반 엔델 박사는 다빈치의 해부도가 과연 사실인지 궁금했다. 그는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하면 인체 내부에 대한 상세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실제로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7년 동안 TV 광고까지 동원해 실험에 참여해줄 부부 8쌍을 모았다.
그가 했던 실험은 듣기만 해도 엽기적이다. 발가벗은 두 남녀를 지름 50cm 밖에 안되는 원통 모양의 MRI 촬영기 속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성행위를 하게 한 뒤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MRI로 단층 촬영했다. 물론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며, 실험에 관한 모든 지시사항은 둘만 있을 수 있는 대기실에 인터컴을 설치해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쉽지 않았다. 아내들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남자들은 긴장이 돼서 도무지 성행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원제 City Slickers, 1991)에는 “남자가 섹스를 할 땐 이유는 필요치 않다. 그저 ‘장소’만 필요할 뿐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데, MRI 촬영기 안은 예외였나 보다.
다행히도 이들의 실험을 위해 신이 준 선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비아그라’가 그것이다. 8쌍의 부부 중 7쌍이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MRI 촬영기 안 좁은 공간에서 성행위에 성공했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인 산부인과 의사 윌리브로드 웨이마르 슐츠의 전언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비아그라가 필요 없었던 유일한 한쌍은 거리에서 아크로바트를 하는 곡예사 부부였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익숙했던 탓에 이 실험도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연구팀이 얻은 MRI 사진에 따르면, 다빈치의 그림은 틀렸다. 다빈치는 질 내에서 남자의 성기를 일직선 모양으로 그렸으나 실제로 촬영해보니 성행위시 음경은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있었으며,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백20°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성기 전체 길이의 1/3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들은 이 연구가 “성행위를 할 때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에 MRI 촬영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논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1999년 12월 8일자 영국의학저널에 ‘남녀 성행위시 성기 모습에 관한 MRI 영상’라는 제목으로 발표됐으며, 그 안에는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 성기의 MRI 영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 ‘성교’가 나란히 실려 있다.
과학에서 변태(?)를 보여주마
두번째 유형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황당한 주제를 연구 테마로 잡은 ‘변태 아이디어’형이다. 이 유형에 속한 과학자들의 연구 논문은 일견 유용해보이긴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연구임엔 틀림없다.
일본 오사카에서 비밀 탐정으로 활동하는 다케시 마키노씨는 ‘남편의 부정을 감지할 수 있는 스프레이’를 개발해 한때 화제가 됐다. 그가 개발한 스프레이를 남성의 팬티에 뿌리면 팬티에 묻어있는 정액이 초록색을 띠며 나타난다. 팬티에 정액이 묻었다고 해서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제품은 기혼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아 35만원이나 하는데도 일본에서 한달에 2백개 이상 팔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 거스리 클리닉 비뇨기과 의사인 제임스 놀란 박사팀은 1990년 응급의학 저널에 ‘지퍼에 낀 남자 성기에 대한 응급 치료’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아이들이 소변을 본 후 지퍼를 올리다가 성기가 지퍼에 끼는 사고가 자주 일어남에 따라 이 경우 어떤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술한 논문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오일을 바른 후 지퍼를 열어야 하며 상처 부위에 발라야 할 약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놀란 박사는 이 논문을 발표한 후 신문과 TV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3페이지짜리 짧은 논문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술회했다.
아무도 생각치 못한 황당한 주제로 따지면 일본 요코하마 쉬세도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칸다 그룹의 실험을 따라올 연구도 흔치 않다. 그들의 연구 주제는 ‘발 냄새가 지독한 사람들의 발은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였다. 그들은 발 냄새가 지독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모집한 후 그들의 발에서 땀을 채취했다. 그리고 피험자들의 발 분비물을 원심분리기로 분리해 그 성분을 조사했다. 상상해 보시라. 발 냄새가 지독한가 안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피험자들의 발 냄새를 하나씩 맡으며 실험해야 했던 과학자들의 모습을.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 냄새가 지독한 사람의 경우 발에서 나는 땀에 짧은 고리로 이어진 지방산과 동-발레릭 산(Iso-valeric acid)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들의 연구는 ‘지독한 발냄새를 만드는 화합물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1990년 영국 피부학 저널에 발표됐다.
칸다와 그의 동료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입 냄새나 발 냄새가 입과 발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해 왔으나 그 자세한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독한 발 냄새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항균성 비누를 사용하라는 조언 외에는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칸다 팀의 연구는 발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화합물을 밝혀냄으로써 발 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연구다.
어디에 쓰는 연구인고?
세번째 유형은 ‘이런 연구는 해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엉뚱한 상상력’형이다. 영국 브리스톨대 물리학과에서 폴리머를 연구하는 렌 피셔 교수는 1998년 ‘비스켓을 커피에 찍어먹는 최적의 방법에 관한 연구’라는 엽기 발랄한 논문을 발표했다.
서양 사람들은 비스켓을 먹을 때 커피나 홍차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숍에서도 대개 커피와 함께 비스켓을 팔며, 어떤 곳에서는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비스켓을 아예 테이블 위에 놓아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왜 비스켓을 커피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 비스켓을 커피에 찍어 먹다보면 비스켓 조각들이 커피 안으로 떨어져 작은 덩어리가 되어 커피 잔 위에 떠다니거나 커피를 걸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비스켓은 설탕이라는 본드에 의해 결합돼 있는 녹말가루 덩어리다. 만약 뜨거운 액체에 비스켓을 넣으면 설탕이 녹기 때문에 녹말가루 사이의 접착력은 떨어지지만 녹말가루 자체는 팽창하면서 서로 붙으려는 성질이 강해진다. 따라서 커피 안에서 비스켓의 상태는 녹말과 설탕 분자가 커피의 점성과 표면장력, 비스켓 내부의 기포 크기와 커피에 담긴 정도 등에 따라 어떤 상태가 되느냐로 결정된다.
렌 피셔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평소 폴리머 연구에 사용했던 프로그램을 이용해 비스켓을 뜨거운 액체에 잠깐 담갔다 먹으면 그냥 먹을 때보다 비스켓 자체의 향이 10배 이상 강하게 입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초콜릿이 얇게 덮인 비스켓을 커피에 담갔다가 먹을 때에는 초콜릿을 바른 면을 위쪽으로 하고 최대한 수평으로 눕힌 상태에서 비스켓을 담근 후 먹는 것이 좋다는 사실도 계산으로 알아냈다.
렌 피셔 교수팀의 연구는 사람들이 왜 커피에 비스켓을 찍어먹으며, 어떻게 찍어먹어야 가장 맛있는 비스켓을 즐길 수 있는지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여전히 렌 피셔 교수가 도대체 왜 이런 연구를 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생물 심리학을 연구하는 시게루 와타나베 교수팀은 1995년 행동 실험분석 저널에 무척 황당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논문의 주제는 ‘비둘기가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는 동료들과 함께 비둘기에게 피카소와 모네의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두 화가의 작품을 구별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피카소 그림 앞으로 날아가라고 지시했을 때 이를 정확히 수행하면 모이를 주는 식으로 훈련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아직 보여주지 않은 그들의 작품을 보여줬을 때 비둘기들이 잘 맞추는지를 알아봤다.
실험 결과 비둘기들이 두 화가의 작품을 구별하더라는 것이다. 비둘기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했기 때문에 구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두 화가의 작품에 나타난 복잡한 패턴을 구별할 수는 있었던 모양이다. 더욱 황당한 실험은 바로 다음 실험이다. 그들은 이번엔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을 거꾸로 벽에 걸어놓은 후 비둘기에게 같은 실험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피카소의 그림을 찾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모네의 그림을 정확히 맞추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피카소의 그림은 거꾸로 걸어놓아도 비둘기들이 별 차이를 못 느끼고 찾아가지만 모네의 그림은 거꾸로 걸어놓자 다른 그림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와타나베 교수팀이 도출한 결론이 걸작이다. 와타나베 교수팀은 비둘기들이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나 입체파 화가의 작품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시각적 자극으로 비둘기를 조종할 때에는 인상주의 작품을 쓰라는 것이었다. 비둘기가 인상주의 작품에 호감을 보인다니, 모네가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 자빠질 얘기다.
이 밖에도 ‘발이 큰 남자는 성기의 길이도 긴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십명의 남자들을 발가벗겼던 캐나다 토론토 소재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제랄드 베인 박사팀이나, 껌을 씹을 때 ‘껌의 향기에 따라 뇌파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 스위스 뇌-마음 연구소의 야규 박사팀도 같은 유형이라 하겠다. 야규 박사팀 연구는 씹는 행동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껌의 향기가 뇌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한 연구로서, 그 후 일본 과학자들의 추가 실험으로 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연구’임엔 틀림없다.
살신성인 과학자들
다빈치의 그림 한점을 확인하기 위해 피험자들을 좁은 MRI 촬영기 속에 집어넣고 성행위를 하게 했던 생리학자들. 연구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에 컴퓨터 칩을 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컴퓨터공학자. 발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피험자들의 발 냄새를 맡으며 실험을 해야 했던 화학자들. 성기 길이와 발 크기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수십명의 남자들을 발가벗겼던 통계학자들과 비둘기에게 피카소의 그림을 보여주며 ‘쇠귀에 경읽기’를 반복했던 행동심리학자들.
어쩌면 그들은 모두 지나친 호기심과 넘치는 학문적 열정, 그리고 엉뚱한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진정한 과학자였을 것이다. 그들의 연구는 아직 우리들에게 그저 ‘엽기’적이고 황당한 연구로만 여겨지며, 때론 동료 과학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누가 확신할 수 있으랴. 언젠가 그들의 연구가 새롭게 조명받을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 속에도 꾸준히 인간의 지적 영역을 넓혀온 ‘살신성인의 과학자들’이었다고 재평가받을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