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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물질문명의 눈부신 변화는 과학과 기술의 유기적 결합으로 이룩됐다. 그러나 과학의 목적은 물질세계의 원리탐구, 공학의 동기는 경제성과 유용성이라는 구별은 여전히 주목해야할 차이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transister). 방 하나를 가득메웠던 초기의 진공관컴퓨터 에니악(ENIAC)을 책상 위에 올라가는 상자 하나 크기의 개인용 컴퓨터로 대체한 것을 비롯, 인류역사에 극소전자기술(microelectronics)혁명을 몰고온 이 트랜지스터는 1948년 미국 벨연구소의 젊은 과학자 3총사가 탄생시켰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이 세사람은 1956년에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게된다.

이들 중 금년 1월에 세상을 떠난 바딘은 이후 72년에 저온초전도체에 관한 이론확립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또 한번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남들은 한번도 어려운 노벨물리학상을 두번씩이나 받았다는 점에서 누구나 그가 천재이며 옆길도 돌아보지 않고 물리학연구라는 외길만을 걸었으리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바딘의 대학시절 전공은 물리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기공학이었다. 바딘의 대학졸업이후 경력은 더 다채롭다. 대학원에서 안테나연구를 2년 쯤 한 뒤 이번에는 피츠버그의 걸프연구소로 옮겨 지구물리학도로 변신한다. 마침내 25세가 돼서야 응용보다는 기초과학연구가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 프린스턴대학 물리학과 대학원과정에 입학했다. 여기서 고체물리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얻은 뒤 37세가 된 1954년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개발팀에 합류한 것이다.

상대성이론을 정립, 현대물리학의 지평을 연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전공외에 바이올린 연주도 수준급이었다거나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가 라틴어를 비롯, 수개국어에 능통했다는 사실에 견주어 존 바딘의 다채로운 삶도 얼핏 '천재는 무엇이나 잘한다'는 통념을 확인하는 한 사례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를 과학기술자로 그려보고있는 청소년이라면 전기공학에서 지구과학 물리학으로 자신의 연구주제를 바꿔나가는 바딘의 삶을 보며 한번쯤 '기초과학과 공학연구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학자와 기술자의 삶은 판이하게 다른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어봄직하다.

대학진학을 원하는 우리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고등학교 1학년의 2학기를 맞으면 문과와 이과 중 한쪽으로 일단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물론 적성검사나 선생님과의 상담 가족 친지들의 도움말이 진로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정작 자신이 관심을 가진 학과가 무엇을 공부하는 곳인지 알려주는 조언자는 드물다.

특히 이공계학부의 경우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영역으로 치부되는 데다 산업변동이나 새로운 발견으로 인한 학문자체의 내용변화도 빨라 더욱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않다. 기껏해야 '기초과학을 전공하면 배를 곯기 쉽다'거나 '공학을 하려면 손재주가 있어야한다'는 유의 일면적인 소개에 접할 뿐이다. 이과계 학생들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갈림길, 이학계와 공학계. 출발점이 달랐던 것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일까, 아니면 가다보면 보다 큰 하나의 길로 서로 만나게 될까.

과학과 기술의 결합

이과계학생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선택하게 되는 학과는 크게 기초과학 공학 의·약학 농학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이들은 각기 이과대(혹은 자연대) 공대 의(약)대 농대 등으로 가시화되며 각 학교 사정상 이공대로 묶는다든가 해서 특정 단과대학이 없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의(약)대 농대를 제외한 이과대와 공대를 두고 흔히 기초과학 대(對) 응용과학 혹은 순수과학 대 기술로 분류하는 예를 보게 된다.

오늘날엔 '과학기술'이란 낱말이 내용상으로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단어로 이해되고 있지만 과학과 기술이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인류역사상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기초과학의 이론은 모두 공학으로 다듬어져 인간들이 실제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적 재화가 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 같지만 적어도 산업혁명을 맞기 이전까지의 과학과 기술은 각각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식됐다. 즉 과학은 우주와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나 수학자 물리학자(대개는 이 일을 겸직했다)의 몫이었으며 기술은 장인들이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전수하는 그들 고유의 노하우로만 이해된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 기술은 단순히 도제관계를 통해 축적되는 경험적 지식 이상의 과학적 방법을 필요로 하게됐고 마침내 기술이 이론으로서만 존재하는 과학의 내용을 흡수해 인간생활에 유용한 새로운 물질들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물리학에서 규명한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 전자(電磁)식전신기가 만들어진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과정에서 화학공학 전기공학 토목공학 등이 대학에서 독자적인 학문으로 강의되기 시작한다.

전세계를 거미줄처럼 엮어가는 전신기의 출현은 과학과 기술의 밀월관계의 시작에 불과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과학적 성과가 기술로 구현되는 시간간격은 더욱 짧아졌고, 그 분야도 다양해졌다. 핵물리학의 성과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원자핵공학을 낳았고 고분자화학의 성과는 인견(人絹)을 밀어내는 합성섬유의 결실을 보았다. 과학이 무시하고 넘어간 조그만 성과라도 기술은 수십번의 확대재생산과정을 거쳐 당초의 발견자인 과학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산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발전과정을 이끌어 온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인 경쟁의 법칙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 이윤을 창출해내야만 재생산이 가능한 자본주의적 기업의 특성때문에 신기술 혹은 첨단기술개발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20세기초에 이미 미국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는 기업연구소가 생겨났고 기술에 비약을 가져올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도 국가와 기업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과학과 기술의 이런 결합으로 우리들은 오늘날 '과학기술'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쉽게 상품으로 연결되지 않는 연구들은 학문적으로 충분히 의의를 가졌더라도 지원받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사실 역시 지적해 두어야 한다.
 

DNA 구조 해명은 분자생물학 유전공학의 길을 열었다. 사진은 인간 염색체


원리탐구의 과학, 경제성의 공학

일제 식민지하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걷게 된 우리나라의 경우 이공계 대학교육의 성립과정만 놓고보아도 선진국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공계교육이 실시된 것은 1941년 경성제국대학에 이공학부가 생긴 것을 최초로 볼 수 있다. 이는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지 17년이나 지난 뒤의 일로 식민지에 과학기술을 전수하지 않으려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필요한 과학기술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급조한 것으로 헤아려진다.

이런 사실은 곧이은 '조선에 있어서의 전시비상배치방안'(1943년)으로 더욱 확실해 지는데 그 골자는 이공계학생의 입영연기, 보성전문 연희전문 등 문과계 사립전문학교의 이과계로의 전환 등이었다.

애당초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기술이 일본의 필요에 의해 기술 일부 분야만 기형적으로 이식된 형태였던데다가, 60년대 이후 수출산업의 성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기술의 성장은 주로 해외기술의 이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부나 기업이 모두 이미 얻어온 선진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이공계 고급교육만을 요구하다보니 자연히 기술혁신을 위한 기초과학에의 투자나 '대학과정 이상'의 공학교육은 등한시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기초 과학을 전공했던 사람들이 대학이나 중고교의 강단 이외에는 뚜렷이 자기역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나 '기초 과학을 하면 배가 고프다'는 우리사회의 통념은 과학기술이 정착해온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의 세계경제의 변화는 우리의 과학기술에 새로운 단계로의 비약을 요구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로 대표되는 경제장벽과 지적소유권 분쟁은 이제 우리가 미·일 어디로부터도 쉽게 기술을 이전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날로 심각하게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90년 이후 정부가 제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과대학을 증설한다는 정책을 발표하거나 외국제품을 분해해 복사에 급급하던 기업들이 기초과학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거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체 기술경쟁력을 기르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이나 그 전망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지만 대개의 과학기술종사자들은 최근의 '기초과학육성, 기술개발강조' 등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지금의 중고교생들이 사회로 진출할 때쯤이면 '기초과학을 하면 배가 고프다'거나 '산업현장에서 쓰일 지식은 학부과정의 공학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따위의 통념에는 필연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물질문명의 진보가 과학기술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달성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 즉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관계가 밀접하다해도 양자의 방법과 목적은 엄연한 차이를 가지므로 진로선택을 앞둔 사람은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의 유영제 교수는 공학의 특성을 '유용성과 경제성'으로 설명한다. "과학의 경우 그 목적은 물질세계의 근본질서를 찾는 것이다. 물론 그런과정에서 실생활에 유용하게 되는 어떤 발견을 이루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유용성 자체가 목적이 돼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공학은 쓸모와 경제성이란 개념에서 출발한다. 즉 어떤 원리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의 생활에 쓰임새가 닿는 것을 적은 비용으로 만드는 것이 공학의 목적이 된다. 따라서 진학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원리탐구에 더 흥미가 있는지 아니면 실생활에 응용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화학공학의 발달사를 보아도 화학과의 차이는 명백하다. 19C말~20C초에 각국에 등장한 화학공학은 화학제품의 대량생산시대를 맞아 제품생산의 공정은 물론 화학공장 전체의 설계, 설치된 장비의 운전 등을 교육 내용으로 한다. 물론 화학공학도 화학의 기본원리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화학이 그 기본원리자체에 의구심을 갖고 탐구를 계속해나가는 것이라면 화학공학은 일단 그 원리를 받아들인 위에 대량생산을 위한 공정이나 효율적인 시설운영에 더 큰 목적을 두는 것이다.

세계최초로 실을 뽑지 않고 제조하는 섬유, '아라미드펄프'를 개발해낸 KIST 윤한식 박사(섬유 고분자연구실)는 자신의 연구과정을 예로 과학자와 공학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아라미드펄프는 처음부터 예견해서 만들어진 개발품이 아니다. 원래는 고강력섬유인 아라미드섬유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실험과정에서 뜻하지 않았던 덩어리(아라미드펄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라미드펄프는 우리 연구팀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미 아라미드섬유를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던 미국의 듀폰사도 이 덩어리를 경험하고 있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경제성을 추구하는 공학자답게 어떻게하면 이 쓸모없는 덩어리를 없앨 수 있을까에만 고심한 반면 우리 연구팀은 그 덩어리 자체에 의문을 갖고 탐구를 시작했다는데 있다." 만약 자신도 공학자 입장에서 쓸모없는 덩어리에 관심을 두지않고 아라미드섬유만을 좇았다면 아라미드 펄프를 합성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박사는 또 "관계당국의 정책수행자조차도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물론 과학과 기술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처럼 서로가 상대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나 과학적 성과가 곧바로 기술을 통해 어떤 산물이 돼 나올 것이라고 섣부른 기대를 할수는 없다. 과학적인 원리를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 어느정도 축적돼 있으면 곧 실용화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좋은 아이디어라해도 사장되는 예가 적지않다.

그러나 당장 응용성이 희박한 과학은 모두 쓸모없다는 식의 사고는 기초 과학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꼬집는다.

KIST의 박종오박사(로봇공학)는 이에 더해 "공학에서의 진보가 기존의 모방과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자연과학에서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의 창조를 통해 획득된다"고 비유한다. 또 제분야가 포괄돼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나가야하는 현대공학의 성격상 공학도는 다른 사람들과의 팀워크(teamwork)를 다져나갈 수 있는 협동심을 덕목으로 갖춰야한다고 강조한다.
 

인류에 양자역학을 선물한 막스 플랑크. 그의 이론은 공학자들에 의해 소화돼 그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전자공학의 혁명을 몰고왔다.


학부과정에선 기초지식 섭렵해야

과학자와 공학자의 연구목적이 다르다는 사실이 양자간의 교류를 막지는 않는다. 특히 출발점이 기초과학이었다하더라도 중도에 공학도나 사업가로 변신한다거나 공학자에서 과학자로 변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아라미드펄프를 개발한 윤한식 박사의 전공은 섬유공학. 그러나 그는 아라미드펄프개발을 계기로 공학적 이용보다는 이론규명 쪽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고 밝힌다. 현재 기술적인 장애로 아라미드펄프의 상품화는 더뎌지고 있지만 그의 이론은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Nature)'에 실리는 등 학계에선 섬유뿐만 아니라 생체생성의 비밀을 캐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에 정밀측정기기인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제작회사를 차린 한국인 P박사의 예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것이다. 원래 IBM 취리히 연구소의 비닉 등이 개발한 STM은 최신 물리학 연구의 실험기재로 대상표면의 원자모양을 볼 수 있는 초정밀측정기기다. P박사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물리학박사학위를 밟으며 이 기기를 이용한 경험을 살려 STM을 다양한 용도로 개조, 세계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현재 P박사의 회사는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학제(學制) 자체가 이런 자기변신에 융통성을 더한다. 즉 학부과정은 세분화하지않고 기초가 되는 여러 강의를 섭렵하게 한 뒤 대학원과정에서 자신의 구체적인 진로를 설정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학과 공학의 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만큼 세분화된 과도 없다. 존 바딘과 같은 인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학과 졸업생인가'로 그 사람의 능력을 예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무엇을 연구했는가를 더 중요한 판단근거로 삼는 구미의 독특한 체제덕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우리의 경우 대학의 재정확충과 교수인원확보를 위해 학문 내적인 요구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과들이 생겨나는 예가 적지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이 실험적으로 무학년무학과제도를 도입, 학생이 자신의 학과에만 구애되지 않고 각 학과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학과제 운영하에서는 사실상 전과(轉科)가 자유로이 허용되는 셈이며 과목별 이수내용(학점취득수)에 따라 졸업장에 최종적으로 전공이 표시된다.

첨단과학기술은 분과의 벽 넘어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는 각 분과학문이 서로 협동해 하나의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학제(學際, interdisciplinary)간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소위 첨단과학기술분야라고 일컬어지는 연구주제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20C에 기계공학으로부터 분리된 항공공학은 공학의 거의 전 분야가 망라되는 대표적인 예. 한국항공기술연구소의 홍용식소장은 "흔히 항공기를 만드는 일은 항공공학과가 전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비행기 한대를 만드는데 항공공학의 몫은 기체의 외형설계라는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물론 이 작업이 비행기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것이기는 하나 전체 작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다. 오히려 부품설계등 구조설계를 담당하는 기계공학, 기체의 재료를 연구하는 재료 공학, 연료와 관계되는 화학공학, 전자장비를 담당하는 전자공학 등이 차지하는 몫이 더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최대의 항공사인 노드롭사를 보아도 엔지니어 중 가장 많은 수를 점한 것은 전자과 출신이고 그 다음으로 기계 재료 항공공학 전공자 순이었다고 밝힌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비행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제작하지 못해 주로 외형설계만을 하다보니 항공공학과 출신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것.

메카트로닉스의 총아로 각광받는 로봇공학도 학제간 연구의 산물이다. KIST의 박종오박사는 "로봇공학을 하려면 최소한 기계 전기전자 컴퓨터공학 세 분야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과정에서 관련학과의 강의를 폭넓게 듣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신경회로망연구회의 일원으로 차세대 컴퓨터인 뉴로컴퓨터(신경회로망 컴퓨터)개발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임지순교수(서울대 물리학과)는 단순히 기존의 산물을 보완·개선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내려면 타 전공자로부터 뜻밖의 아이디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신경회로망컴퓨터연구는 초기에 컴퓨터 공학과 뇌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이 중심이 돼 상호지식을 교류했지만 뇌구조해명의 어려움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80년대들어 인간이 정보를 인지하는 병렬처리 방식이 물리학의 한 모델(스핀 동역학)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를 원용해 연구가 활기를 띠고있다"는 것. 임교수는 아울러 타분야와의 적극적인 교류가 물리학과의 강의내용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을 밝혔다. 반도체물리학이나 광학 뉴로컴퓨터와 관련되는 통계역학 등은 모두 지난 20년 사이에 새로이 추가된 강의들이다.

사정은 공과대의 화학공학과도 마찬가지다. 최근 각 대학 화공과에 새로이 자리잡고 있는 반도체공정이나 생물공학 환경화공 심지어 자동화에 관계되는 연구는 각각 컴퓨터공학 유전공학 환경공학 메카트로닉스 등 타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학제간 연구의 강조는 앞으로의 과학기술자들이 가져야할 몇가지 자세를 제기한다.

우선 학생시절 특히 학부과정에서는 전공에만 시야를 좁히지말고 과학기술지식의 기초적인 내용을 골고루 섭취해야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고학년이나 대학원과정을 거치며 구체적인 세부전공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학부과정에서 섭취한 기초 지식은 넓은 안목을 갖는 기반이 된다. 특히 일선공학자들은 "경험적인 사례를 보면 기초과학을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기술적인 내용만을 습득한 경우 모방이나 개선은 할 수 있어도 혁신적인 창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학과 공학,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라는 이분법의 벽이 점차 허물어져가고 있음도 명백하다. 공학자와 과학자가 각각 경제적 동기와 순수한 지적 욕구추구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근본적인 차이로 남아있지만 각자의 발전은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킨다.

17세기에 현미경이라는 기기의 발명이 세포의 발견을 불러와 생물학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듯이 과학은 기술에 원용돼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이 발명품은 다시 한차원높은 과학연구를 위해 사용된다. 양자역학에 근거해 만들어진 레이저가 오늘날 물리학의 숙제인 핵융합발전의 중요한 기기가 되고 있는 것처럼.

특히 과학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했던 현재까지의 우리의 관행은 기술자립의 강조로 인해 앞으로 빠르게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에의 지원강화와 공학분야의 전문성 강화, 즉 석박사인력의 수요급증이 그 주요한 내용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진로선택을 앞둔 청소년들도 '보다 안정된 직장을 위해 공학을 선택한다'든가 '기초과학은 비현실적'이라는 막연한 고정관념은 바꾸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진로선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과학탐구의 근본이 되는 지적 호기심만 있다면 과학기술자로서 평생을 종사할 수 있는 길은 어디로든 열려있기 때문이다.
 

메가트로닉스의 총아 로봇은 기계전기전자 컴퓨터공학등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199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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