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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임무에 참여하는구나!’


2019년 2월 14일 새벽, 정웅섭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은 NASA로부터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근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어x(SPHEREx·Spectro-Photometer for the History of the Universe, Epoch of Reionization, and Ices Explorer)’ 개발이 NASA의 차기 중형 프로젝트로 최종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스피어x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가 탑재체를,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볼 에어로스페이스(Ball Aerospace)가 몸체를, 그리고 한국천문연구원이 우주망원경을 올려보내기 전 지상에서 성능을 시험할 극저온 진공 챔버와 검·교정 장비를 제작하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계획됐다.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 원) 규모의 NASA 중형 탐사(MIDEX·Medium-Class Explorers) 프로그램에 한국이 NASA와 대등한 파트너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총 13개 참여 기관 중 국제협력 기관도 한국천문연구원이 유일하다.

 

NISS 개발 경험 인정받아  

 

스피어x 개발 계획이 처음 나온 건 2014년이었다. 2015년 스피어x는 NASA의 차기 소형 탐사 (SMEX·Small Explorers) 프로그램 후보로 선정돼 개념설계를 시작했다. 


정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가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선발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떨어졌다”며 “그런데 심사 측에서 오히려 예산 규모가 큰 NASA의 중형 탐사 프로그램에 다시 제안해 보라고 권했다”고 회상했다. 


NASA의 중형 탐사 프로그램은 예산이 큰 만큼 개발 기간도 10년 정도로 길어 연구자가 일생에 한 번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스피어x는 2017년 NASA의 중형 탐사 프로그램의 최종 후보 셋 중 하나로 선정됐다. 당시 X선 우주망원경 ‘아르쿠스(Arcus)’와 적외선 우주망원경 ‘피네스(FINESSE)’가 스피어x와 경합을 벌였다. 


스피어x는 광시야 적외선 영상 및 분광 관측이 동시에 가능한 우주망원경이다. 넓은 관측 영역에 대해 적외선 영상(2차원 이미지 정보)과 분광(빛의 파장에 대한 정보)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거대 우주 구조, 적외선 우주배경복사의 기원, 우리 은하 내 얼음 분자 탐사 등이 가능하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12년 ‘근적외선 영상분광기(NISS·Near infrared Imaging Spec-trometer for Star formation history)’ 개발을 시작으로 적외선을 이용한 우주 탐사 기술을 확보했다. 정 책임연구원은 “NASA가 한국천문연구원의 NISS를 비롯한 적외선 임무 개발 성과를 높이 평가했고, 이는 스피어x 참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피어x 책임자인 제임스 J. 복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수석연구원 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한국천문연구원에 스피어x 공동 개발을 요청했다. 

 

 

반사망원경에 가림판 달아 냉매 없애 


   
스피어x는 0.75~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의 적외선 파장을 관측한다. 여기에 장착된 분광 장치는 스펙트럼으로 연속된 파장 정보를 얻는다. 그 결과 우주에서 오는 빛이 파장에 따라 나뉘어 천체를 더욱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분광 장치에는 파장에 따라 다각도로 빛을 분산시키기 위한 ‘회절격자(diffraction  grating)’가 사용된다. 특정 파장만 선택적으로 관측하기 위해서다. 


반면 스피어x에는 위치에 따라 투과되는 빛의 파장이 변하는 ‘선형분광필터’ 기술로 빠르게 분광을 얻을 수 있게 설계됐다. 분석하기 복잡하지만, 넓은 범위의 영상과 넓은 파장 범위의 분광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


적외선 관측은 주로 지구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은하와 별의 생성을 연구할 때 유용하다. 정 책임연구원은 “우주가 팽창하면서 오래전에 형성된 초기 은하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멀어지는 속도도 빨라 빛의 파장이 긴 쪽으로 밀리는 적색이동이 크다”며 “적외선 파장을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이 초기 은하 연구에 유용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외선을 탐지하는 우주망원경은 수명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주로 가시광선을 관측하는 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이 30년째 우주에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면 적외선 우주망원경인 유럽우주국(ESA)의 ‘허셜(Herchel)’,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의 ‘아카리(AKARI)’ 등은 채 10년이 되지 않아 임무를 종료했다. 


수명이 짧은 이유 중 하나는 냉각 장치다. 대개 적외선 우주망원경은 적외선과 각종 우주선(고에너지 입자)을 견뎌야 해서 냉각 장치가 필수로 탑재된다. 가령 원적외선 망원경은 6K(켈빈·영하 약 267도) 의 극저온 상태로 냉각해야 한다. 


이때 헬륨 등의 냉매제를 넣은 냉각 장치가 장착되는데, 이런 냉각 장치의 수명은 보통 2~5년이다. 우주인을 보내 교체하는 비용은 새로운 우주망원경을 띄우는 것보다 더 비싸다. 결국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수명은 냉각 장치 수명에 달린 셈이다. 


스피어x는 적외선 우주망원경이지만 냉각 장치를 달지 않고, 전체 망원경을 80K(영하 193도)까지 복사 냉각(태양, 지구에서 오는 에너지를 방출해 온도를 낮추는 방식)할 수 있는 구조로 반사망원경을 설계했다. 반사망원경에 가림판을 달아 복사 냉각을 이용하도록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2021년 발사 예정인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처럼 지상 발사 전에는 거울이접혀 있다가, 우주로 올라가면 가림판이 펼쳐진다.  


냉각장치가 달려있지 않으니 냉매가 닳을 걱정이 없다. 본래 계획된 탐사가 2년이지만 그 이후에도 임무 기간을 연장해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가 80K로 냉각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지상에서 먼저 테스트해야 한다”며 “한국천문연구원이 이를 테스트할 극저온 진공 챔버와 검·교정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2년 간 전체 우주 4차례 훑어

 

스피어x의 또 다른 특징은 지구 저궤도에 오른 뒤 단 6개월 만에 전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 우주, 약 14억 개의 천체에 대한 분광 정보를 얻는 게 스피어x의 목표다. 


전 우주 천체의 분광 정보를 파악하겠다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임무는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됐다. 많은 천문학자가 우주를 ‘깊게’ 보기 위해 열중해 있을 때 우주를 ‘넓게’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깊게 보면 한 영역, 혹은 한 천체를 매우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지만, 우주 전체를 관측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피어x는 우주를 넓게 보도록 설계됐다. 빠르게 전체 하늘을 훑으며 흥미로운 천체를 찾는 것이다. 스피어x가 새로운 천체나 특이해 보이는 성질의 천체를 찾으면, 허블우주망원경, 제임스웹우주망원경 등이 그 천제를 뼛속까지 깊이 관측하며 천문학 연구의 합작이 이뤄진다.


정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는 일부가 아닌 전체 우주에 대한 정보를 탐색해 약 14억 개 천체들의 개별적인 분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초기 우주 팽창과 은하의 형성 및 진화 등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피어x 발사는 2023년 말로 예정돼 있다. 우주로 나가 2년 동안 탐사를 총 4차례 수행할 계획이다. 같은 영역을 적어도 4번씩 관측한다는 뜻이다. 한 번 관측으로는 중요한 천체를 누락시키거나, 잘못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 전체 관측 시도는 스피어x가 처음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9년 NASA에서 발사한 광역 적외선 탐사 우주망원경 ‘와이즈(WISE)’도 전 우주를 촬영하는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전 우주의 분광 정보를 관측한 우주망원경은 아직 없다. 스피어x가 우주로 올라가면 처음이 된다. 정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로 전 우주의 분광 정보를 얻으면, 천문학자들은 이전 자료와 조합해 우주의 형성과 진화에 대해 훨씬 세밀하고 방대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 보내기 전 챔버에서 모의 테스트

 

한국천문연구원 스피어x팀은 30여 명으로 이뤄졌다. 과학 연구, 기기 개발, 운영, 연구 자료처리 등 스피어x 연구 대부분에 관여하고 있다. 


지금은 5월 초에 진행될 극저온 진공 챔버와 검·교정 장비의 예비설계 심사를 앞두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제작할 만큼 완벽히 설계됐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NASA측이 직접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사태로 화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단계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챔버 제작에 돌입한다. 정 책임연구원은 “NISS 개발 당시 극저온 진공 챔버를 만든 경험을 토대로 챔버를 설계했다”며 “스피어x를 우주로 보내기 전에 이 챔버에 넣어 설계대로 만들어졌는지, 우주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할지 스피어x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시험한다”고 설명했다.  

 

스피어x의 과학 연구를 담당하는 양유진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가 탐사를 마치면 그동안 연구했던 천체들의 새로운 측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은하에 있는 천체 연구뿐 아니라 우주의 거대 구조를 밝히고, 행성의 물 존재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가 천체들을 어떤 감도로 관측할 수 있는지 사전에 시뮬레이션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6년 스피어x가 탐사를 마치면 천문학자들은 크게 3가지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다. 먼저 우주 거대 구조를 밝힐 수 있다. 기존에는 제한된 영역만 관측했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쉽지 않았다. 전 우주에 대한 자료를 얻으면 우주론적 수수께끼를 푸는 연구가 가능해진다. 
얼음 입자를 가진 천체의 성분을 관측해 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외계 행성의 특성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태양계의 소행성과 혜성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도 가능하다. 정 책임연구원은 “스피어x는 이제껏 없던 탐사 방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방대한 자료를 축적해 천문학자들의 다양한 후속 연구를 도울 것”이라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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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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