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교과서로 한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교육과 게임을 접목한 기능성게임이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의 대표로 주목받고 있다. 교육용 기능성 게임은 학습에 게임적 재미요소를 덧붙여 교육 효과를 이끌어 낸다. 국내의 경우 초·중등학생 위주의 게임이 대다수인 반면, 외국에서는 더 폭넓게 활용하는 추세다. 물리학의 기본개념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게임,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격훈련을 하거나 업무 과정을 익힐 수 있는 게임처럼 가상체험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교육용 콘텐츠가 개발되고 있다.
어학용 콘텐츠가 대세
국내 기능성 게임 산업은 이제 막 초보딱지를 뗐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에서 벗어나 일부 대기업이 대중을 상대로 개발을 시도하는 단계다. 에듀플로가 만들고 NHN이 서비스하는 온라인 한자 학습용 게임인‘한자마루’는 공익성과 사업성 면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자마루’에 접속한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미션을 받는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화면에선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한자가 등장한다. 게임과정을 반복하며 한자의 음과 뜻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일정 수준의 점수를 얻으면 무기 아이템을 지급해 플레이어의 학습동기를 유발시킨다.
지난 1월‘다음 키즈짱’이 오픈한 영어 학습용 기능성 게임인‘다이노키즈’는 영어 공부용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공룡 캐릭터를 선택해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며 영어로 대화하거나 게임, 채팅을 즐길 수 있다. 동영상 감상도 가능하다. 또 심부름이나 재활용품 분리, 지도 맞추기 등과 같은 교육적인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학습할 수 있다.대원미디어에서 개발한‘터치 맨투맨 기초영어’는 닌텐도DS용으로 개발된 기능성 게임이다. 영어학습의 고전인‘맨투맨’시리즈에 수록된 문법과 예문, 어휘를 전부 수록했다. 닌텐도DS의 특징 중 하나인 필기인식을 통해 맨투맨 기초영어의 모든 예문을 듣고 받아쓰는 게 가능하다. 해당 예문을 설명해주는 문법사항을‘빨간 줄긋기' 미션을 통해 학습이 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직무훈련도 게임으로?
2008년 5월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물학 공부용 비디오 게임‘면역공격(Immune Attack)’을 개발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정보가 주어지면 캡슐형‘미니 잠수함’을 타고 이동하다가 혈관 내벽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를 박멸하는 게임이다. 3차원 구조로 된 혈관 내부를 탐험하며 세포의 구조와 원리를 공부하게 된다. 면역공격의 프로그램 관리자인 미국과학자연맹의 멜라니 스테그맨 박사는“게임을 통해 학생들이 분자생물학을 비롯한 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며“게임으로 동기부여를 받은 학생이 비슷한 게임을 개발해 배포하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다국적 호텔체인인 힐튼도 직원교육용으로 기능성 게임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로 꼽힌다.‘얼티미트 팀플레이’라는 게임으로 직원교육을 실시한 결과, 교육 전과 비교해 업무 숙련도가 높아졌다. 직원들은 제한된 시간에 손님의 요청에 응대하는 가상 상황에 참여한다. 응대 여부와 분노, 인내심, 유연성 수준에 따라 손님의 반응이 달라져 현실감 있는 훈련이 가능하다.
학습효과보다‘상호작용' 중요
하지만 기능성 게임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국내의 경우 대부분 게임들이 성적향상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외국의 경우 학습효과보다 훈련(training)을 효과성 판단지수로 삼는다. KAIST 엔터테인먼트공학연구소의 우탁 선임연구원은“효과성은 콘텐츠에 따라 다르며, 사용자와 콘텐츠 간에 상호작용이 얼마나 잘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자 학습용 기능성 게임인‘한자마루’는 기획 단계부터 서울대 심리학과 연구진과 함께 게임 시 학습효과를 관찰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은 게임을 하는 동안 안구추적장비(Eye-Link Ⅱ)를 쓰고 연구자들은 그 시선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학생은 게임을 하는 동안 몬스터나 아이템은 주시했지만 공격 직후 나오는 한자에는 거의 시선이 가지 않았다. 한자가 등장해 학생을 어떤 행동으로도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토대로 꼭 필요한 요소에 학습할 자극을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학습자와 게임 콘텐츠 간에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국내 기능성 게임 전문가인 호서대 게임공학과 김경식 교수는“기능성 게임의 효과는 의학적으로 밝혀져야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기능성 게임의 신체적, 정신적 효과를 동시에 검증하려면 간호학과나 노인복지학과와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불어닥친‘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기능성 게임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SNS의 대표격인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이미 가입자를 대상으로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의 인기 게임인‘피시빌’은 연결된 친구가 많을수록 유리한 구조다. 물고기를 키우는 게임으로 키운 물고기를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다른 친구의 어장을 청소해 줄 수 있다. SNS의 특징인‘친구관리기능’이 그대로 적용됐다. 김 교수는“게임 학계에서 최근 가장 이슈인 분야가 SNG(Social Network Game)”이라며“게임 산업이 다양한 분야와 만나 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체감형 게임으로 변신 모색
앞으로는 체감형 게임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는 체감형 기능성 게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로 군사 훈련용으로 개발되고 있다. 기존 게임 방식이 PC를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체험하는 형태였다, 체감형 기능성 게임은 시뮬레이터와 연동해 촉감까지 느낄 수 있다.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개발컨퍼런스(GDC 2009)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 공군은 사격훈련과 고공낙하훈련에 시뮬레이터를 적용한 뒤 실전에 버금가는 효과를 얻었으며, 결과적으로 실제 상황에서의 사망률이 많이 감소했다고 분석됐다. 체감형 게임의 경우 신체적 움직임을 동반하기 때문에 부상문제가 이슈로 제기된다. 체감형 게임‘위’시리즈를 개발한 닌텐도의 사례를 보면,‘위 게임기용 리모컨인 위모트를 들고 게임을 조작하다 보니 다른 물체와 충돌하거나 관절에 무리가 생긴 것. 이런 피해 사례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업계 최초로 게임플레이 안정성 가이드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KAIST 엔터테인먼트공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체감형 게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소 우탁 선임연구원은“체감형 게임 연구도 일시적인 성적향상보다 기능성 게임을 통한‘학습동기부여’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업과 공동으로 연구 컨소시엄을 구성해 체감형 게임의 하드웨어, 콘텐츠, 게임플레이에 대한 품질 및 안전성 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평가모델이 개발된 온라인, 모바일 게임과 달리 체감형 게임의 경우, 관련 기준이 전무한 상태여서 향후 게임 개발과 유통 활성화에 복병으로 예상된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크리스 데드 교수는“디지털 환경에서 몰입할 수 있는 학습 환경을 만들려면 매체 유형에 따른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내용을‘사이언스’ 2009년 1월 2일자에 실었다. 논문에서 데드 교수는 스마트폰의 전자나침판 같은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체감형 게임 사례를 소개했다. 국내에 등장할 체감형 기능성 게임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