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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전지는 충전이 가능하고 작은 부피에 에너지를 고밀도로 저장할 수 있어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전기차의 배터리로도 쓰인다. 리튬이온전지의 개발은 무선기기 시장을 열었고, 화석연료가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음극에 리튬 금속
양극에 이황화티타늄

 

1970년대 석유회사들은 화석연료 고갈과 이산화탄소(CO₂)을 사용한 리튬이온전지를 구현했다. 첫 리튬이온전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휘팅엄 교수가 만든 리튬이온전지는 리튬 금속에 있는 리튬이온이 양극의 고체물질(TiS₂)로 이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원리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다 사용하고 나면 전지를 충전한다. 이황화티타늄쪽에 있던 리튬이온을 다시 음극(리튬 금속)으로 이동시켜 전기를 저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음극에 저장된 리튬이온을 다시 양극으로 보내면 전기를 쓸 수 있다. 기존의 납축전지나 니켈-카드뮴 전지보다 크기는 작고 에너지 밀도는 훨씬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이라면 전지전압이 2.3V 미만으로 낮다는 것이었다.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전압을 높이기 위해 리튬전지의 양극에 이황화티타늄 대신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₂)을 쓸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전압을 4V 이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이후 리튬망간산화물(LiMn₂O₄) 등 다양한 산화물이 양극 물질로 개발됐고, 이는 현재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에도 활용되고 있다.

 


휘팅엄 교수가 개발한 리튬이온전지는 불안전성 문제도 있었다. 이는 폭발 위험이 있어 상용화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1988년 캐나다의 몰리에너지는 리튬이온전지인 ‘몰리셀’을 출시하며 상용화를 시도했지만, 거듭된 폭발사고로 결국 파산했다.


리튬이온전지가 폭발하는 이유는 리튬을 금속 상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충전 시 리튬이온이 음극의 리튬 금속으로 이동하면 수지상(dendrite)을 형성한다. 즉, 리튬이 전지에 골고루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점에서 바늘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길어진 수지상이 양극에 닿으면 결국 전지가 폭발한다.


요시노 아키라 일본 메이조대 교수는 리튬 금속 대신 흑연 성분의 석유코크스를 음극으로 사용해 수지상의 형성을 최소화하고 리튬이온전지의 안전성을 높였다. 그는 1986년 자신이 만든 리튬이온전지 위에 무거운 철 조각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해 전지의 안전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리튬이온전지는 충격을 받는 순간 폭발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의 전지는 충격에도 폭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하는 많은 회사들이 그의 시험법을 기반으로 전지의 안전성을 측정하고 있다.

 

 

가볍고 작아도 효율높은

유일한 원소, 리튬

 

좋은 전지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해야 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친환경적이고,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 리튬이온전지는 기존의 전지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저장 효율과 지속성 면에서 뛰어났다.


물론 처음 리튬이온전지가 개발됐을 때는 수요처가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좋은 전지가 개발된다고 해서 바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능이 좋은 배터리를 사용하려면 제품의 전압을 바꿔야 하고, 회로도 다시 구성해야 한다. 안전성 검증도 필요하다.


하지만 휴대용 전자기기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리튬이온전지의 장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가령 전자기기를 작동시키는 데 니켈-금속수소 전지가 약 3개 필요했다면, 리튬이온전지는 1개만 있어도 충분했다. 부피를 줄여 휴대성을 극대화하려는 경쟁이 심해질수록 리튬이온전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휴대용 기기뿐만 아니라 전기차에도 리튬이온전지가 쓰인다. 또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시스템에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도 리튬이온전지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리튬이온전지가 비싸고 충분히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리튬이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과 코발트 등은 희귀금속이다. 지구에 극소량만 묻혀 있는 금속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채광 활동이 필요하고, 이를 다시 고순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환경이 파괴되기도 한다. 또 이미 사용된 리튬폐전지가 장기간 방치될 경우 유해물질을 배출할 수도 있다.


때문에 리튬이온전지에 사용되는 희귀금속을 대체할 물질을 찾거나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기술적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 현존하는 원소 중에서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그럼에도 높은 효율을 내는 것은 리튬뿐이다. 가벼워야 하는 휴대용 기기나 연비가 중요한 전기차에 리튬이온전지가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ESS 등 휴대성이 강조되지 않는 분야에서는 대체 금속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폐전지 재활용이나 리튬을 대체할 금속을 찾는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노벨상 수상자 

연구자의 자세 가르쳐준 진짜 스승

 

 

필자는 2006~2010년 구디너프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내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2006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을 준비하면서 약 100군데에 지원했는데, 당시에는 인기가 없던 전고체전지(Solid-state battery) 분야를 전공해서인지 연락이 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구디너프 교수의 연구실에도 지원서를 보냈다. 당시 구디너프 교수가 84세라는 점을 고려해 이력서와 논문을 책자로 만들어 소포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 인터뷰나 면접도 없이 말이다. 사실상 지원서를 보낸 100군데 중에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었다. 


텍사스대에서 구디너프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내 전공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학을 전공했는가?”라고 묻길래 “아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물리학을 전공했는가?”라고 물어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고 했더니, “그럼, 아무것도 아니군(Then, you are nothing)”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중에 왜 뽑았는지 물어보니 소포가 인상적이었다고. 소포로 보낸 지원서에 ‘평범한 자의 간절함’이 느껴져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당시 구디너프 교수는 80세를 넘긴 고령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 칠 때보다 오히려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때 상기된 표정으로 “Please, educate me(나에게 가르쳐주세요)”라고 외치곤 했다. 


한 번은 필자가 준비한 연구 결과 내용을 화이트보드에 정리하면서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스로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지우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구디너프 교수는 본인을 ‘경계에 선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시카고대 물리학과는 전 세계 이론물리학 연구를 이끌던 ‘천재’들이 많이 다니던 곳이었다. 


그는 ‘제너 다이오드’로 잘 알려진 클래런스 제너 교수의 지도를 받거나, ‘페르미 준위’로 유명한 엔리코 페르미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얘기를 가끔씩 꺼냈다. 당시 페르미 교수의 수업은 많은 학생들이 어려워하기로 유명했는데, 질문할 때마다 답을 하는 2명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2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구디너프 교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런 천재적인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평범한 본인이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이론물리학계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화학실험 분야를 선택했다. 화학물질 실험 결과를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경계에서 양쪽을 소통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 덕분에 올해 노벨 물리학상이 아닌 노벨 화학상을 받게됐다.

 


필자가 진로 고민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구디너프 교수는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찾아 최선을 다해보라고. 그게 지금은 뭔지 몰라도 미래에 하려고 하는 일과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당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실험과 논문 집필뿐이었는데, 놀랍게도 지금 하는 일과 관련돼 있다. 구디너프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낸 4년은 지식을 쌓은 것 외에도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자세와 방법을 배운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영식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교수다. 2014년 바닷물 속 나트륨을 활용한 해수전지를 개발했고,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6~2010년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영식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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