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제5차 교육과정 개정이후 컴퓨터는 정규교과목에 삽입되고 96년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16비트 컴퓨터가 보급되기로 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오진석-바쁘신 중에 여러 선생님들께서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논의할 주제는 학교컴퓨터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나름대로 찾아보는 것입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정규교과과정에 넣어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부터입니다. 이제 햇수로 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점검해 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왜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사회가 이미 눈앞에 다가왔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영역에 걸쳐 컴퓨터가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학교만 이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비디오 등과 함께 우리 문화속에 깊숙이 침투한 컴퓨터를,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컴퓨터교육에 관한 한 학교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허운나-흔히 '컴퓨터교육'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크게 나눠 세가지가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먼저 컴퓨터에 관한 교육(about computer)은 하드웨어의 구조나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함께하는 교육(with computer)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글짓기를 한다든가 프린터로 학급신문을 만든다든가 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통한 교육(through computer)은 컴퓨터를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이미 다른 어떤 교육도구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돼 있습니다.
현재 컴퓨터교육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는 프로그래밍이나 하드웨어 쪽은 분명 아닙니다. 국민학교 단계에서는 컴퓨터에 관한 흥미를 돋우고 본격적인 과정은 고등학교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학교교육에서 컴퓨터의 역할은 주로 컴퓨터와 함께 하는 교육이나 컴퓨터를 통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컴퓨터교육에 관한 개념정의가 우선돼야 하는데 현실은 혼재된 상태라는데 동의합니다. 나라마다 컴퓨터교육을 실시하게된 배경과 중시하는 측면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정보문화가 성숙된 다음에 학교컴퓨터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입니다. 정보사회가 성숙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컴퓨터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학교가 컴퓨터를 수용하는 것을 계기로 정보문화를 확산시키려는 경향이 있어요. 실제 교육현장에서 컴퓨터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드웨어 몰라도 활용 가능해
조춘호-일선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컴퓨터가 정규교과목으로 편입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컴퓨터' 하면 오락도구로만 여기다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됐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은 컴퓨터를 매우 재미있어 합니다. 특별 활동시간에 컴퓨터실 앞에는 아이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줄을 서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아이들이 컴퓨터에 친숙함을 느끼고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이라고 봅니다.
둘째로 정보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초등교육에서부터 길러줘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학교 컴퓨터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산수 자연 등 과목에 학습용 프로그램을 가끔 활용하는데 다른 시청각교육에 비해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이광형-미래 정보사회를 이끌어갈 주임무를 학교가 맡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학교의 준비태세나 조건은 한마디로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교수께서 컴퓨터교육을 여러 단계로 나눠 설명하셨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학교컴퓨터교육의 올바른 목표설정조차 어렵습니다. 컴퓨터 이용학습(CAI)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며 프로그램개발에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야 하는데 요원한 실정입니다.
컴퓨터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현재 중학교의 경우 기술 등 특정과목에 한정돼 있는데 다른 주요 과목에도 컴퓨터에 관한 내용을 추가시켜야 합니다. 한 예로 어느 학교에서 사회시간에 정보화에 관한 내용을 수업했더니 학생들이 매우 흥미있어 하더라는 겁니다.
오-국내에 컴퓨터가 들어온 것은 60년대 말입니다. 70년대부터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컴퓨터는 정규 과목으로 편성됐습니다. 국내 컴퓨터교육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당시 컴퓨터교육의 목표는 기능인력의 양성이었습니다. 80년대 PC가 대중화되면서 컴퓨터교육은 인문계 고교와 초중학교에서도 시작됐습니다. 8비트 PC 위주였는데 주로 특활시간을 통해 교육이 진행됐지요. 학교컴퓨터교육은 지난 88년 제5차 교육과정개정과 맞물리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16비트 PC로 기종이 바뀌고,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96년까지 컴퓨터가 보급되며, 교과서에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정식 교과과정에 편입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컴퓨터를 활용하는 교육, 컴퓨터 이용 학습이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정리하면 우리 컴퓨터교육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도입은 다른 나라보다 늦었지만 컴퓨터교육이 다른 나라보다 형편없이 뒤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허-학교에서 아이들이 실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베이식(BASIC) 언어를 가르치기보다 요즘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컴퓨터통신을 배워준다면 아이들이 훨씬 더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고 정보사회의 편리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컴퓨터 하드웨어를 모든 아이들이 다 알아야 한다는 발상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잘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지요. 자동차의 구조를 잘 몰라도 운전솜씨가 좋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컴퓨터교육이 학생들을 모두 일류 프로그래머나 컴퓨터공학자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잖아요. 컴퓨터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제기해주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이-그렇지만 학교교육은 여전히 언어 중심이 보편화돼 있어요.
조-국민학교 과정은 4, 5학년에 '컴퓨터의 쓰임새', 6학년에 베이식언어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나와 있어요. 교사들이 컴퓨터교육에 대한 별다른 이해가 없는 경우 컴퓨터교육=베이식이란 등식이 자연히 성립합니다. 학부모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어서 가끔 설명하느라 애를 먹지요.
허-광성국교는 문교부로부터 컴퓨터교육 시범학교로 선정돼 있다던데 외부에서 많이들 보러옵니 까.
조-전국 각지에서 교사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그들 얘기를 들어보면 베이식을 기초로 정한 학교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 학교의 연구 사례를 발표하면 부럽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오-컴퓨터교육의 세계적인 추세가 변하고 있어요. 60, 70년대에는 직업교육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당연히 장래 기술자가 될 학생들에게 하는 하드웨어나 프로그래밍교육이 강조됐습니다. 80년대 들어 컴퓨터가 대중화되자 문맹탈피 차원에서 누구든지 컴퓨터를 알아야 한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어요. 80년대 중반이후 컴퓨터 교육에 관한 개념은 다시 바뀌고 있습니다. 단순한 문맹탈피 수준으로는 안되고 컴퓨터를 학습의 도구로 활용하거나, 워드프로세서 데이터베이스 스프레드시트 등 소비자로서 직접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여러 개념이 혼재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5차 교육과정개정때 이 문제도 검토됐습니다. 그런데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반영됐는데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언어 중심의 옛날 체제로 되돌아가버린 것이지요. 일선 교사들의 혼란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컴퓨터교육은 정부주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96년까지 1천3백억원을 투입해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기로 한 것은 다른 과목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일 겁니다. 그만큼 컴퓨터교육에 관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지요.
허-영국 프랑스 등이 우리와 비숫하게 정부주도로 컴퓨터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도할 경우 교육자원의 균등한 배분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획일성이나 경직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어느 정도 성숙하면 이 부분은 지방자치기관이 떠맡아야 할 거라고 봐요.
받아도 또 모르는 교사연수
오-그러면 실제 학교컴퓨터교육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지요. 먼저 컴퓨터 교육을 맡을 교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교사 연수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심각합니다. 최근 통계는 없지만 2년전까지 전체 교사의 20%가 연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8비트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어서 실제 컴퓨터교육을 맡을 교사는 매우 부족합니다. 정부는 96년까지 매년 1만명씩 교사연수를 실시해 국민학교의 경우 전체 교사의 50%, 중학교의 경우 담당교사 전원이 연수받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이-학교컴퓨터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필요이상으로 높은 것같아요. '이제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정부에서 발표한 후 학교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처럼 '기대과잉'현상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담당교사 지원체제 모두 부족합니다. 연구지정학교로 선정돼 당국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 겨울 어떤 행사에 갔더니 그 지역 교사들의 98%가 컴퓨터연수를 받았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그런데 참석한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컴퓨터교육을 맡을 수 있는 교사는 한 학교에 한두명 있을까말까 하다는 겁니다. 당국에서는 이런 수치에만 신경쓰는 것같아요. 지난 10년동안 교사연수를 해왔지만 자발성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효과가 극히 의문입니다.
조-국민학교의 경우 4, 5, 6학년 담임은 컴퓨터연수에 적극적인 반면 저학년 담임들은 별 성의를 보이지 않아요. 교과과정에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없을 뿐아니라 저학년 담임들이 대개 나이가 많아 연수를 받아도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어떤 선생님은 연수를 마치고 금방 돌아왔는데도 자판을 다룰줄 몰라요.
그런데 학교마다 몇명씩 열의를 가진 교사들이 있어서, 이들이 스스로 배우거나 학원이라도 찾아가서 컴퓨터를 익혀 교육에 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저희 학교는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교장 재량하에 오전 오후로 나눠 교사들이 컴퓨터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자발적이면 컴퓨터를 익히는 속도가 빠르지만 억지로 하는 경우에는 아이들보다 속도가 느려요.
이-연수는 끊임없이 있는데 받은 사람이 또 받아도 역시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연수내용이 대개 베이식에 관한 것인데 교사들에 동기유발이 안된다고 봐요. 가령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컴퓨터통신 같은 것을 가르쳐주면 교사들도 흥미를 느끼리라고 봅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도 학교에 컴퓨터가 없으면 하루이틀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맙니다. 차라리 컴퓨터가 보급된 학교의 교사들만 모아 연수하는 편이 효과면에서는 나을 것입니다.
오-지도자급에서 인식의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교장이 컴퓨터에 관심이 많으면 교사들이 컴퓨터교육에 신경을 기울일 여건이 마련된다고 봐요.
허-교대나 사대의 컴퓨터 과목 학점을 늘려야 합니다. 현재 교대에는 2학점, 사대에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3학점 정도 배정돼 있는 걸로 아는데 이 정도로 컴퓨터교육을 담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갖춰야 하지만 각종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거나 정보사회에 대한 마인드도 갖춰야 합니다.
또 컴퓨터전담교사로 흔히 전산학이나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을 쓰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산학과 컴퓨터교육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 가운데 컴퓨터지식도 있는 사람을 전문교사로 채용하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만약 하드웨어 유지보수가 문제라면 그것은 업체에 맡기거나 여러 학교에 한사람 정도 있으면 된다고 봐요.
하드웨어 활용 융통성 있어야
오-하드웨어 문제를 얘기해 봅시다. 정부가 96년까지 전국의 모든 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하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벽지 산간에 위치한 학교를 우선으로 컴퓨터를 공급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치 현시점에서 모든 학교에 컴퓨터가 공급된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학교당 16비트 컴퓨터 30대씩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대단한 수치입니다. 가령 미국의 경우 아직도 8비트가 가장 많이 보급돼 있고, 일본의 경우 고등학교와 특수학교는 우리보다 앞서 있지만 초중학교는 우리보다 낫다고 보기 힘듭니다. 미국 일본과 우리의 GNP를 감안하면 우리 여건이 결코 뒤떨어졌다고 볼 수 없어요.
조-하드웨어 때문에 고생한 얘기 한가지 할께요. 89년 시범학교로 선정되고 나서 D회사의 8비트 컴퓨터 32대가 들어왔는데 LAN(근거리통신망)이 잘 안되는 거예요. 기술자를 불러오면 당장은 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문제가 생기곤 했어요. 우리가 사용을 잘못해서 그런가 해서 나중에 기술자에게 물어봤더니 "8비트에 LAN을 설치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자신이 없지만 정부에서 시키니까 억지로 한다는 것이지요. 1년동안 고생하다가 16비트 컴퓨터가 들어오니 그 문제는 순식간에 풀리더군요. 정부에서는 비용만 아끼려 들지말고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지 검토한 후에 일선 학교에 시행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이-16비트가 교육용컴퓨터로 선정된 이후 학교에 남아있는 8비트 컴퓨터의 처리도 간단치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10만원 이상의 비품은 최소 5년간 보관해야 하는데 교사나 학생이나 8비트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그런데 현재 대다수의 학교에서 실시하는 베이식의 경우 8비트로도 충분하거든요. 16 비트로 전환하더라도 기존에 보급돼 있던 8비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제시됐어야 했습니다.
컴퓨터는 설치됐지만 운영비나 유지보수비가 함께 따라주지 않는것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습니다. 컴퓨터가 보급된 이상 그것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컴퓨터실에 고이 모셔놓고 고장날까봐 무서워 아이들에게 손도 못대게 하는 웃지못할 현상도 벌어지곤 합니다. 저희 학교에서도 교무실에 몇대 갖다놓고 교사들이라도 자유롭게 컴퓨터를 쓰자고 건의했더니 운영비와 관리상의 문제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애프터서비스만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공급업체에서 3년간 책임져야 하지만 벽지일수록 출장나오기를 기피한다고 합니다. 이런 점은 일선 학교에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정책입안자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허-컴퓨터를 컴퓨터실에 모셔두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생각해요. 호주는 학생 10명당 1대씩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 보급대수는 우리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보이는데, 교육시스템은 훨씬 융통성이 있습니다. 라운지나 복도 교무실 등에 컴퓨터를 2, 3대씩 설치해두고 교사나 학생이 시간나는 대로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필요할 경우 집에 빌려가서 사용하는 것도 허가한다고 합니다. 컴퓨터교육이란 어차피 1:30이나 1:10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 한 선생님이 컴퓨터를 만지고 있으면 다른 선생님이 와서 구경하고 자기도 따라 만지고 질문하고 하는 가운데 저절로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학생들도 한 학생이 이해하면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이해시키고… 교육적으로도 이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절대량 부족한 소프트웨어
오-소프트웨어로 화제를 돌려보지요. 사실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부족은 하드웨어 문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현재 소프트웨어개발비는 하드웨어 예산의 3.4%에 불과합니다. 이런 여건에서 질좋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허-영국에서는 국민학교의 98%가 8비트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8비트용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무궁무진해 교육용으로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도 16비트로 전환했지만 8비트에도 교육용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호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비트로 결정되니까 그때까지 쓰던 8비트 컴퓨터와 8비트용 소프트웨어가 하루아침에 사장되고… 돈없는 나라에서 이 무슨 낭비입니까. 정부가 업체들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드웨어가 계속 성능이 향상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호환성이 유지되도록 미리 못을 박아둬야 해요.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앞서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도구가 되는 저작도구(authoring tool)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교사들이 쓰기에 편리한 저작도구가 개발된다면, 교사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칠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학과 전산학을 함께 공부한 전문가집단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소프트웨어의 질을 평가하는 기관이 생겨 소비자들이 이를 믿고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시중에 소프트웨어들이 다수 나와 있지만 학교에서 이용할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질이 좀 처지더라도 우선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나와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으면 합니다. 평가기구 문제는 현단계에서 창작욕구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보급하는 것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기존에 개발된 프로그램의 카탈로그 같은 것이 나오면 일선 교사들에게 무척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서 주는 곳이 있었으면 합니다. 가령 컴퓨터 바이러스는 최근 어느 학교에서나 부딪치는 문제인데 해결방법을 몰라서 쩔쩔매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행히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교사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낭패를 봅니다.
조-CAI프로그램이 양적으로 너무 적다는데 공감합니다. 그리고 시중에 판매하는 일부 프로그램을 보면 교과서나 참고서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도 있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교육개발원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경우 여러 학년이 한꺼번에 수업을 해야할 때가 있어요. 컴퓨터실은 하나 뿐인데 이럴 때는 매우 곤란합니다. 학년에 따라 다른 시기에 컴퓨터학습을 할 수 있도록 과정을 분산시켰으면 좋겠어요.
오-조선생님 지적은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관한 정보부재에도 동감입니다. 저희 센터에서도 올해 역점사업으로 교육용 소프트웨어 목록을 만들어 각급 학교에 나눠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하드웨어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 구입에는 엄청난 예산을 책정해놓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예산만 확보되면 프로그램을 개발할 업체는 얼마든지 나타날 겁니다. 다만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이 나와서는 안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나 제3의 기관에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보증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도 최근 문부성이 학습소프트웨어연구 정보센터에 위촉해 심의평가기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교과서가 시시하다」
조-현행 교육과정을 보면 어차피 베이식 언어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교육과정이 개편된다면 베이식보다는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짓기나 컴퓨터활용 쪽이 들어가야 할 겁니다. 요즘 저학년 아이들도 컴퓨터학원에 많이 다니는데 이들이 5, 6학년에 올라와 컴퓨터에 관한 내용을 배울 때 쯤이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시시하다는 반응이에요. 반면 시골에서는 이러한 내용조차 소화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무튼 앞으로 현행 교육과정보다는 시간수도 늘어나야 한다고 봐요.
이-중학교의 경우 실업과목에 컴퓨터과정이 들어있는데,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교과목에 컴퓨터에 관련한 내용이 삽입돼야 합니다. 사회에는 정보화에 관한 내용, 국어에는 워드프로세싱, 과학이나 실업에는 컴퓨터 반도체 등 첨단 과학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합니다.
오-현행 교육과정은 컴퓨터문맹 탈피를 목표로 하면서도 실제 교과서는 전산 일반과 프로그래밍 중심으로 돼 있습니다. 제6차 교육과정개편때 이 부분은 시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컴퓨터가 독립 교과목으로 채택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다른 교과목에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많이 삽입되는 것이 학교컴퓨터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와 학원의 차이는 학원이 특수기술자를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학교는 전인교육을 하는데 있습니다. 학교에서 음악 미술을 가르치는 것은 예술가를 길러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시키자는 것입니다. 학교컴퓨터교육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정보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능력을 길러주고 컴퓨터를 교육도구로 활융해 다른 과목의 수업에 대한 이해를 돕자는 것입니다.
조-컴퓨터는 '만능'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아이에게 컴퓨터를 사주면 머리가 좋아질 것으로 믿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서로 만지려고 다투지만 어른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 모두 컴퓨터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쓸모있는'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있고 컴퓨터 교육을 맡은 교사들이 저녁 8, 9시까지 남아 애쓰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컴퓨터교육의 장래는 밝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교육'은 곧 '실천'이라는 생각입니다. 컴퓨터교육도 시작은 정부주도로 됐지만 교육이 끌려만 다녀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봅니다. '정보사회'라는 것이 창의성과 자발성이 없으면 우선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충분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교육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오-학교교육에 컴퓨터를 도입한 것은 매우 일천합니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정착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일선 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맡고있는 교사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컴퓨터교육의 승패가 향후 국력을 가름하는 관건이라고 보고 경쟁적으로 이 부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른 나라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나라가 현재 뒤졌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학교컴퓨터교육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제기와 비판은 그만큼 국민들의 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이해하고 우리 담당자들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