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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의학상> 세포 서바이벌 결정하는 산소농도

 

산소는 특히 동물에게 중요하다. 동물은 진화를 통해 조직과 세포에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도록 발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심혈관계다. 심장을 엔진 삼아 혈액은 평생 온몸을 일정한 방향으로 순환하며 폐에서 얻은 산소를 온몸의 조직과 세포에 전달한다. 심혈관계를 통한 산소 공급은 동물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하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1분도 안 돼 의식을 잃고 뇌세포가 손상을 입는다.

 

1930년대 노벨상
두 차례 배출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산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수백 년 전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산소가 생명체 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나마 수많은 연구를 통해 산소가 체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인 세포 호흡에 필수적이라는 사실 정도가 밝혀졌다. 


세포 호흡은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신체에 흡수된 영양소를 아데노신삼인산(ATP)이라는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만들어진 에너지원은 여러 생명 활동에 쓰인다. 세포 내 연소반응을 규명하고 세포 호흡에 산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는 193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세포 입장에서는 언제나 산소가 일정한 농도로 공급되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산소농도는 다양한 이유로 변한다. 우선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 지대에 가면 외부의 산소농도가 낮아지면서 혈액 내 산소농도도 떨어진다. 


생체 활동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신체에 필요한 산소 요구량이 급증해 혈중 산소농도가 떨어진다. 혈압이 낮아지거나 적혈구량이 감소해도 혈중 산소농도가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생체 내 산소농도가 낮아지는 경우를 저산소(hypoxia) 상태라고 한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저산소 상태에서도 신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발달했다. 많은 연구를 통해 동물은 심혈관계의 활동을 조절해 산소농도에 대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표적으로 벨기에의 생화학자 코르네유 하이만스가 밝힌 경동맥체가 있다. 경동맥체는 몸통에서 뇌로 가는 혈관 양쪽에 있는 기관으로, 혈중 산소농도를 감지해 호흡률을 조절한다. 그는 이 연구로 193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세포가 저산소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일련의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적혈구 생성인자(EPO)를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밝혀졌다. EPO는 주로 신장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인데, 골수에 작용해 적혈구 생산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저산소 상황이 되면 신장의 EPO 생산량이 증가한다. 늘어난 EPO는 골수의 적혈구 생성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산소 운반을 증가시켜 저산소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저산소 상황에서 EPO의 조절이 중요하다는 것은 20세기 초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어떻게 산소농도가 EPO의 발현을 증가시키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산소농도는 1930년대 이미 두 차례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배출할 만큼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세포가 어떻게 산소농도를 인지하는지에 관한 연구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1950년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분자생물학은 세포가 어떻게 단백질을 생성하고 조절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이런 배경에서 1990년대 3명의 과학자가 세포 속 산소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산소농도 감소하면
DNA에 결합하는 HIF

 

포문을 연 것은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다. 그는 산소농도에 따라 발현이 조절되는 인자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는 EPO 유전자가 산소농도에 의해 어떻게 발현이 조절되는지 연구하던 중 저산소 상황에서 EPO 유전자의 전사(DNA로부터 단백질을 만들 때 DNA의 유전 정보가 RNA로 옮겨지는 중간 과정)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저산소 상황이 EPO 유전자의 전사 조절을 유도한 것으로 생각한 그는 전사를 증가시키는 DNA 부위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EPO 유전자 주변에 저산소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DNA 부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서멘자 교수는 단백질이 DNA 분자에 결합하는 부위를 찾아내는 DNA 풋프린팅 기법으로 저산소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DNA 부위에 특정 단백질이 붙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후속 실험을 통해 마침내 산소농도가 감소할 때 DNA 부위에 결합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찾아냈다. 그는 이 단백질을 ‘HIF(Hypoxia-Inducible Factor)’라고 명명했다.


이후 그는 HIF 단백질 복합체를 이루는 두 단백질인 ‘HIF-1α’와 ‘ARNT’의 존재도 밝혀냈다. 저산소 상황에서 HIF가 전사인자로 작용해 적혈구 생성인자인 EPO가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적혈구 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흥미로운 건 HIF-1α 단백질의 양 자체가 산소농도에 따라 조절된다는 것이다. 현재 HIF-1α가 정상적인 산소농도에서는 유비퀴틴*이 매개하는 단백질 분해과정을 통해 제거되지만, 산소농도가 낮아지면 단백질 분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는 밝혀졌다. 이제 저산소 상황에서 어떻게 HIF-1α의 유비퀴틴화 과정이 조절되는지 알아내는 일이 남아 있었다.

 

 

산소 결핍 조절 유전자 통제해 
암 발생 조절

 

이에 대한 해답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왔다. 이를 주도한 윌리엄 케일린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유전질환 중 하나인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을 연구하는 의학자였다. 이 질환은 VHL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VHL 단백질의 기능이 망가져 발생하며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케일린 교수는 망가진 VHL 유전자를 갖고 있는 신장암 세포에 정상 VHL 유전자를 다시 발현시켰을 때 암세포의 성장이 감소하며, 이로써 VHL 유전자가 암 억제 유전자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그는 신장암 세포에서 VHL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 살펴봤다. 그리고 1996년 HIF에 의해 조절되는 유전자들이 VHL 유전자가 망가진 세포에서 유독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케일린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VHL 단백질이 유비퀴틴화를 유도하는 E3 유비퀴틴 연결효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서 피터 랫클리프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가 VHL 단백질과 HIF-1α가 정상적인 산소농도에서는 결합하며, 이때 HIF-1α의 유비퀴틴화가 VHL에 의해 유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랫클리프 교수는 케일린 교수와 함께 VHL과 HIF-1α가 어떻게 산소농도를 인식해 결합하는지 연구했다. 그들은 산소농도가 정상일 때 HIF-1α에 존재하는 아미노산 중 하나인 프롤린에 하이드록시(-OH)화가 일어나며, 저산소 상황에서는 프롤린의 하이드록시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상 산소농도에서 HIF-1α의 하이드록시화는 VHL이 HIF-1α를 인식해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표지 역할을 하며, VHL은 HIF-1α에 결합한 뒤 유비퀴틴화를 유도해 분해가 진행되는 것이다. ‘세포가 어떻게 산소농도를 인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비로소 완성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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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부터 빈혈까지, 
신약 개발의 열쇠

 

HIF가 세상에 알려진 뒤 약 30년 동안 저산소 상황의 조절 기전 연구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HIF가 많은 생리 현상 및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만큼 그 기전을 연구하는 것은 신약 개발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암세포에서 HIF-1α의 발현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산소 소비량이 훨씬 많다. 또 좁은 공간에서 높은 밀도로 증식하므로 저산소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때 HIF가 증가하면서 세포의 산소 이용 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세포 주변의 새로운 혈관 생성도 유도한다. 이 때문에 HIF-1α의 농도가 높은 암세포는 다른 암세포보다도 저산소 상황에서 더 잘 버티며, 치료하기도 어렵다. HIF가 발견된 뒤 이를 억제하는 암 치료제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편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도 있다. 빈혈의 경우 적혈구 수가 감소하거나 헤모글로빈 농도가 부족해 혈중 산소농도가 낮아지면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며, 신장에 손상이 생긴 만성 신부전 환자도 신장세포에서 생성되는 EPO가 감소해 빈혈에 걸리기 쉽다. 


이밖에도 뇌에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뇌졸중, 심장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심근경색 등 많은 질병이 저산소 및 산소 공급과 관련돼 있다. 이런 질병들 역시 저산소 상황의 세포 기전을 이용한 치료 약물이 효과적일 것이다. 

 

내가 만난 노벨상 수상자 

일면식 없던 내게 기꺼이 항체 보내줘

 

 

사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필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수상자 명단에 서멘자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그동안 서멘자 교수팀과 수차례 공동 연구를 진행해왔고, 당연히 친분이 깊었다. 친한 친구가 큰 상을 받는다면 내 일처럼 기쁘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 상이 과학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노벨상이라니. 


필자가 서멘자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렙틴 단백질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산소농도와 관련이 있다. 저산소 상황에서 렙틴이 암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렙틴은 저산소 상황에서 G9a라는 메틸화 효소에 의해 메틸화된다. 메틸화된 렙틴은 HIF-1α의 기능을 억제해 암의 진행과 전이를 막는다. 렙틴을 이용해 암의 진행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연구는 향후 렙틴의 메틸화를 암의 진행과 전이를 진단하는 표지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국제학술지 ‘몰레큘러 셀’ 2010년 7월 9일자 표지논문으로 채택됐다. doi:10.1016/j.molcel.2010.06.008


원래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렙틴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했다. 하지만 저산소 상황에서 신호 전달과 HIF-1α 단백질에 관한 연구 경험은 전혀 없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했던 2008년, 일면식도 없던 서멘자 교수에게 무작정 e메일을 보내 연구에 필요한 HIF-1α의 항체를 보내줄 수 있냐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필자는 서멘자 교수에게 이 연구가 왜 중요하며, 서멘자 교수의 도움이 왜 필요한지 자세히 적어 다시 한번 e메일을 보냈다. 이후 서멘자 교수는 항체를 보내주면서, 이듬해 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서멘자 교수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동안 필자와 서멘자 교수는 공동연구자로서 10년 넘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왔다. 단순히 온라인에서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서멘자 교수의 연구팀과 필자의 연구팀이 함께 랩 미팅을 진행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마침 운이 좋게도 12월 2~3일 필자의 연구팀에서 주최하는 학회에 서멘자 교수가 참석하기로 했다. 노벨상 시상식 전에 직접 얼굴을 보고 축하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다분히 이론적인 연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산소농도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우리 삶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핵심 분야가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주제를 평생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자에게 있어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서멘자 교수 그리고 케일린 교수와 랫클리프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백성희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유전자 발현 조절 및 후성유전학에 관한 연구와 암 발생 및 전이 조절 메커니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sbaek@snu.ac.kr

 

 

용어정리

*유비퀴틴 (ubiquitin)
76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작은 단백질 분자. 다른 단백질에 결합해 단백질의 분해를 유도하는 표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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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백성희
  • 에디터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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